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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의사 안철수는 바이러스 먹은 컴퓨터 앞에서 날밤을 새웠다

중앙일보 2008.06.02 00:22 경제 4면 지면보기
안철수 의장<左>과 부인 김미경씨. 이들 부부는 최근 나란히 KAIST 석좌교수와 부교수가 돼 화제를 모았다. [중앙포토]
우리나라의 대표적 안티바이러스 소프트웨어인 ‘V3’가 탄생 20주년을 맞았다. ㈜안철수연구소는 “그간 판매한 V3 포장상자를 세로로 쌓으면 에베레스트산 높이의 798배에 이른다”며 “국내 PC 중 1500만 대에 V3가 깔려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리고 뭔가를 만들어냈다
팔린 포장상자 쌓으면 에베레스트 높이 798배
토종 백신 ‘어른’됐다

이 프로그램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88년 6월이다. 서울대 의대 박사과정에 있던 청년 안철수(당시 26세)는 자신의 디스켓이 말로만 듣던 ‘컴퓨터 바이러스’에 감염됐음을 알았다. 한참 컴퓨터 기계어 공부에 빠져 있던 그는 곧바로 문제 분석에 들어갔다. 하룻밤 만에 치료법을 개발해 거기 ‘백신(VACCINE)’이란 이름을 붙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안티바이러스 소프트웨어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20년. 의대 연구실 한쪽에서 만들어진 이 소프트웨어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악성코드 진단·치료 프로그램으로 발전했다. ‘백신’은 안티바이러스 프로그램을 통칭하는 보통명사가 됐다. 최초의 ‘VACCINE’은 ‘V1’ ‘V2’를 거쳐 1991년부터 ‘V3’로 불리고 있다. 1995년 창업한 ㈜안철수연구소가 생산한다. 이 제품의 국내 보안 소프트웨어 시장 점유율은 50%에 이른다. 제품군에 속한 프로그램만 20종이다. 무료 배포가 많은 개인PC용보다 기업용 시장에서 높은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의 박준오 차장은 “V3 덕분에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정보보호 솔루션 개발국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며 “1999년 CIH 바이러스 대란, 2003년 1.25 인터넷 대란 등 국가적 위기 때도 V3가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20년이 흐르는 동안 컴퓨터 사용환경을 위협하는 악성코드의 성격도 크게 바뀌었다. 과거엔 바이러스가 최대 적이었다면 요즘은 스파이웨어·트로이목마 등이 기승을 부리는 상황. 특히 초고속 통신망의 발달로 국내외 컴퓨터가 사실상 하나로 연결되면서 정보보호의 중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V3 제품 또한 PC용을 넘어 서버용, 모바일 기기용, 네트워크 보안장비 등으로 적용 범위가 계속 넓어지고 있다. 안철수연구소의 매출과 순이익도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 회사와 V3의 미래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이들도 적지 않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는 V3 제품의 성능을 비판하는 네티즌들의 글이 제법 많이 올라와 있다.



이에 대해 안철수연구소의 황미경 차장은 “일반인들이 많이 쓰는 옛날 버전의 V3는 바이러스 퇴치가 주목적이라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스파이웨어 치료 성능이 떨어진다”며 “스파이웨어를 치료하려면 ‘스파이제로’ 등의 새 프로그램을 써야 하는데 이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부족한 듯하다”고 말했다.



최근 네이버·다음 등 포털사이트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무료 백신을 배포하고 있는 것도 경영상의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다.



안 의장은 “그럼에도 아직 많은 이가 V3를 ‘기본 백신’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무료 백신의 성능을 뛰어넘는 고품질 제품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머지않아 전기밥솥까지 인터넷으로 제어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그때도 V3가 컴퓨터 지킴이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기술개발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이나리 기자

일러스트 박용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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