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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 크기의 100분의 1…구조 단순해 변이 쉬워

중앙선데이 2008.05.18 00:59 62호 6면 지면보기
전염병이라고 하면 흔히 ‘나쁜 균’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하면 전염병의 원인은 두 종류다. 세균(박테리아)이냐, 바이러스냐. 중세 유럽인을 몰살한 페스트(흑사병)는 예르시니아 페스티스 박테리아가, 영국 런던을 공포의 도시로 만들었던 콜레라는 비브리오 콜레라 박테리아가 일으켰다. 21세기 전염병은 바이러스의 강세다. 2003년 9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사스를 비롯해 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 조류 인플루엔자(AI) 등은 모두 바이러스성이다. 그렇다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어떻게 다른 걸까.

바이러스가 세균과 다른 점은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둘 다 자손(?)을 퍼뜨릴 수 있는 유전물질을 갖고 있고 매우 작은 ‘미생물’이라는 점은 같다. 하지만 크기만 해도 바이러스는 박테리아의 50분의 1에서 10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세균여과기에 분리되지 않을 뿐 아니라, 광학현미경으로는 보이지 않아 반드시 전자현미경을 이용해야 한다.

구조도 바이러스가 더 간단하다. 박테리아는 핵과 인지질(지방질), 세포 소기관이 있는 반면 바이러스는 유전물질인 핵산과 이를 둘러싼 단백질 껍질이 전부다. 박테리아가 노트북이라면 바이러스는 컴퓨터 본체 없이 메모리칩만 있는 셈이랄까. 혼자선 아무런 역할을 못하지만 일단 컴퓨터에 장착하면 기억된 정보를 쏟아내는 메모리칩처럼, 바이러스는 숙주 없이는 무생물과 다름없지만 일단 숙주에 정학하면 쉽게 증식한다. 그래서 박테리아는 완전한 생명체로 보지만 바이러스는 무생물과 생물의 중간단계로 본다(광우병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프리온’ 단백질은 바이러스보다 한 술 더 떠 핵산조차 없는데도 증식을 한다는 점 때문에 연구 대상이 된다). 구조가 단순하다 보니 핵산의 구성염기들이 조금만 위치를 바꿔도 바이러스의 특성 자체가 변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보다 오래됐을 바이러스의 존재가 확인된 건 1892년(담배모자이크 바이러스)이다. 전자현미경 사진으로 실제 모습이 드러난 건 그러고도 40여 년 뒤다. 한국전쟁 때 비무장지대 부근에서 미군 등 2000여 명에게서 발병, 세균전 의혹을 일으켰던 유행성 출혈열의 병원체도 20여 년이 지난 1976년 고려대 의대 이호왕 박사가 처음 들쥐에게서 분리해냈다. 그는 이 병원체에 한탄강의 이름을 따 ‘한탄 바이러스’(한타 바이러스의 일종)라고 명명했다. 바이러스의 이름 중엔 이렇게 처음 발견된 지명을 딴 것이 많다. ‘에볼라 바이러스’도 아프리카 자이르의 에볼라 강에서 유래됐다.

바이러스가 인류에게 ‘독’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사실 바이러스도 숙주를 죽이기까지 해서 좋은 건 없다. 동물이나 식물에 공생하는 바이러스 중에 숙주에 거의 해를 끼치지 않는 것으로 밝혀진 경우도 많다. 또 소의 전염병(우두) 바이러스를 이용한 백신 덕분에 인류는 오랜 적이었던 천연두를 퇴치할 수 있었다. 최근엔 바이러스를 전달체로 이용하는 유전자 치료법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다. 경북대 미생물학과 이재열 교수는 “우리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바이러스는 인류의 역사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왔다”며 “적이냐 친구냐 따지기보다 바이러스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이해하면서 공생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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