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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관료들, 법무·회계법인 고문 취업 … 두 갈래 시각

중앙일보 2005.04.25 05:39 종합 1면 지면보기
전직 고위 관료와 금융감독원 출신 금융인이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의 고문으로 취업하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 4월 15일 현재 국내 10대 법무법인과 회계사 100명 이상 회계법인에 변호사.회계사 자격 없이 고문 직함으로 몸담고 있는 전직 관료.금융인은 33명이다. 거쳐간 사람까지 합하면 70여 명에 이른다. 그러나 본지 조사 결과 국내 10대 법무법인 가운데 관료 출신 고문을 변호사협회에 등록한 곳은 하나도 없다. 금융감독원에 사업보고서를 제출해야 하는 회계법인도 고문의 명단이나 보수 등은 신고하지 않고 있다. 관료 출신 고문은 최고 수억원의 연봉을 받지만 공직자의 민간기업 취업을 제한하고 있는 공직자윤리법 적용도 받지 않는다.


경영자문 "공직시절 경험·지식 활용"
로비스트 "일감 따기 개입 … 논란 소지"

시민단체나 개인 변호사 등은 법무.회계법인이 전직 관료를 로비스트로 활용하고 있다며 이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직 관료의 지식과 경험을 사장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에 따라 미국 등 선진국처럼 공직자가 법무.회계법인에 법 규정에 따라 취업할 수 있는 길을 터주되, 소득과 업무를 감독당국에 신고토록 해 부당한 청탁이나 불공정 거래의 소지를 미리 방지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 고문 영입 왜 늘어나나=법무.회계법인 입장에선 화려한 고문진이 일거리를 따오는 데 도움이 된다. 전직 관료로서도 자신의 지식.경험을 살리면서 상당한 연봉도 받을 수 있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A법무법인 임원은 "누구 누구가 우리 회사 고문이라고만 해도 고객의 마음을 끌 수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부 관료 출신 고문은 '밥값'을 하기 위해 자신의 영향력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일거리를 따오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러나 이 경우 변호사법 위반 소지가 있다.



법무.회계법인의 일이 단순 법률자문이나 회계감리에서 벗어나 종합컨설팅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도 전직 고위 관료나 세무관료의 몸값을 높이고 있다.



김&장 법률사무소 관계자는 "이제는 외국 로펌과도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며 "외국인 고객에게 한국 경제 전반에 대한 브리핑을 해주는 일은 변호사보다는 경제관료 출신 고문이 적격"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유명 법무법인에는 유창한 영어로 한국의 정치.경제 상황을 자세히 브리핑해 외국 고객을 유치하는 데 도움을 주는 고문이 많다.



◆ 신분 제도화 필요=서울지방변호사회는 2003년 7월 변호사가 아닌 사람은 직위와 관계없이 모두 사무직원으로 등록해야 한다는 공문을 소속 법무법인에 보냈다. 그러나 고문을 사무직원으로 등록한 곳은 아직 없다. 업무가 사무직이 아닌 데다 격에도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회계법인도 마찬가지다.



반면 미국의 법무.회계법인은 고위 관료 출신을 임원으로 영입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들을 변호사.회계사를 지칭하는 '파트너(partner)'와 구별해 '프린시펄(principal)'로 부른다. 전직 관료라도 업무와 소득만 감독당국에 신고하면 활동에 대한 제약은 거의 없다.



C법무법인 관계자는 "관료 출신 고문은 사무직원으로 볼 수 없고, 그렇다고 변호사도 아니어서 협회에 등록하기 곤란하다. 고문이든 자문역이든 둘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별취재팀=정경민.김종윤.허귀식.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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