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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관료들, 법무·회계법인 고문 진출 붐

중앙일보 2005.04.25 05:28 종합 6면 지면보기
법무.회계 법인의 관료 출신 고문의 면면은 화려하다.


외국 고객 유치에 큰 역할
사람따라 일감 옮겨가 논란도

한덕수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과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김&장 법률사무소 고문을 지냈다. 이근영.이용근.이정재 전 금융감독위원장도 전.현직 법무법인 고문이다. 고문은 재경부나 금감위, 건설교통부 등을 거친 경제관료 출신이 가장 많고 국세청.관세청 출신 세무 관료도 적지 않다. 옛 은행감독원이나 국책은행을 거친 금융인도 여럿 있다.







◆ 고문 영입 붐=전직 관료를 고문으로 본격 영입하기 시작한 곳은 김&장이다. 이후 다른 법무법인도 지명도 높은 전직 고위관료나 세무관료, 금융인을 앞다퉈 고문으로 영입하기 시작했다. 최근엔 회계법인도 가세했다. 삼일과 하나안진이 대표적이다. 삼정회계법인도 지난해 서정법무법인에 몸담고 있던 진념 전 경제부총리를 영입했다.



산하 연구소 원장으로 전직 관료나 금융인을 영입해 고문 역할을 함께 맡기는 사례도 있다. 서정법무법인은 산하 서정경제연구원에 박상배 전 산업은행 부총재를, 서정조세연구원에 손영래 전 국세청장을 원장으로 영입했다.



◆ 무슨 일 하나=말 그대로 경영자문이 주된 업무라는 게 법무.회계 법인 측 설명이다. 회사 경영전략을 짜거나 대형 프로젝트를 맡을 때 고문의 전문지식을 활용한다는 얘기다. 법무.회계 법인의 업무가 종합 컨설팅으로 발전하고 있는 것도 관료나 금융인 출신 고문을 영입하는 이유다.



"최근엔 고객에게 회계감리만 해줘선 경쟁력이 없다. 경영.세무 자문에서부터 노사관계 조언은 물론 경제 문제에 대한 깊이있는 설명 등 고객의 요구가 다양한데 이런 일을 모두 회계사에게만 맡기라는 건 현실에 맞지 않다. 그래서 경제관료 출신 고문이 필요하다." A회계법인 관계자의 설명이다. 실제 청와대 경제수석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를 지낸 김&장의 구본영 고문 등은 외국 고객에게 한국 경제 상황을 잘 설명하는 등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내부 평가를 받고 있다.



일거리를 따오는 데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받는 것도 사실이다. B법인은 올 초 새 고문을 영입한 뒤 소속 직원들에게 "고문들의 전문지식과 인적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라"며 고문의 경력자료를 돌리기도 했다. 사실상 수임 활동에 활용하라는 지침이었다.



고문 스스로 일거리를 따오는 데 관여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얼마 전 한 대기업이 회계법인을 바꾸면서 논란이 빚어진 게 대표적 예다. 고객을 잃은 회계법인이 경쟁 회계법인의 고위관료 출신 고문 입김설을 주장하고 나섰기 때문이었다. 금융계 고위간부 출신의 한 고문은 "적지 않은 일감을 따와 밥값은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공기업이나 정부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금융회사의 소송 또는 회계감리를 따오는 데 관료 출신 고문의 보이지 않는 입김이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 관계자는 "비슷한 조건이라면 선배가 있는 회사 쪽으로 일거리를 주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말했다.



고문의 보수는 베일에 가려 있다. 다만 2003년 3월 이헌재 전 부총리가 재산을 공개하면서 김&장 고문과 경제연구기관인 KorEI 이사회 의장을 2년여 기간 역임해 12억원을 벌었고, 이 중 4억원을 세금으로 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장관급 이상 전직 관료의 연봉은 수억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 모호한 신분=현행법상 법무.회계 법인은 변호사.회계사의 공동출자 회사다. 이 때문에 법무.회계 법인은 변호사.회계사 외에는 사무직원밖에 둘 수 없다. 그러나 사무직원으로 등록된 고문은 없다. 변호사.회계사 자격이 없는 관료 출신 고문은 사무직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회사 공동주주도 아닌 어정쩡한 신분이란 얘기다.



고문이 경영.세무 자문을 하거나 고객에게 경제 전반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정도는 문제 될 게 별로 없다. 지명도 높은 전직 관료를 홍보에 활용하는 것도 법적으론 문제 삼기 어렵다.



그러나 변호사.회계사가 하는 일에 고문이 참여하거나 개입하는 것은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일거리 수임을 돕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다. 회계법인은 자체 윤리강령으로 이를 규제하고 있지만, 법무법인의 경우엔 변호사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모호한 법적 지위로 인해 어디에서도 감독 받지 않는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관료 출신 고문을 제한해야 한다는 시민단체나 개인 변호사 등의 주장도 이에 근거한 것이다.



관료 출신 고문이 없는 법무법인 광장의 관계자는 "고위 공직자를 영입하는 것은 자문을 받기 위해서라기보다 이들을 통해 큰 사건을 수임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법적인 문제는 없나



현행 공직자윤리법은 4급 이상 공무원과 유관 단체의 임직원이 퇴직일로부터 2년 이내에 자본금 50억원 이상, 매출액 150억원 이상인 영리목적의 사기업에 취업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예외도 ▶면직당한 경우▶정부가 출자한 회사에 취직할 때▶변호사나 회계사 등 자격증이 있는 경우 등 여섯 가지로 제한된다. 공직자가 직무와 관련한 정보를 이용하거나 민간 기업과 유착하지 못하도록 막자는 취지다.



그러나 법무.회계 법인이 전직 관료를 고문이란 직함으로 영입할 경우엔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법무.회계법인은 행정자치부가 고시하는 사기업 범위에 들지 않는 데다 고문은 정규 직원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변호사법이나 법무.회계 법인의 자율 규제에는 걸릴 소지가 있다. 우선 변호사법에 따르면 변호사는 변호사 이외의 사람과 동업할 수 없고 사무를 보조하는 사무직원만 둘 수 있다. 변호사협회 회칙에도 변호사 자격이 없는 사람은 직위와 관계없이 사무직원으로 등록하도록 규정돼 있다.



대한변협은 지난해 10월 '변호사 사무직원 규칙 개정안'을 마련해 법무법인에 소속된 고문들이 월급 이외에 별도의 성과급을 받을 수 없도록 하기도 했다. 이에 비춰보면 관료 출신 고문은 법이나 회칙 등에 규정되지 않은 모호한 신분이다.



공인회계사법에서도 회계사는 회계사가 아닌 사람과는 동업하지 못하게 제한한다. 한국공인회계사회는 한걸음 더 나아가 자체 윤리규정으로 회계사가 아닌 사람에게 회장.부회장 등 회계법인의 대표로 오인될 수 있는 직함을 줄 수 없도록 못 박아 놓고 있다. 회계사가 아닌 사람에게 수수료를 주고 사건 수임을 의뢰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계법인은 전직 관료를 '부회장'이란 직함으로 영입하고 있다.



한 대형 법무법인 관계자는 "사무직원이라는 개념은 과거에 변호사가 비서나 사무장을 고용하면 이들을 등록하라고 한 것"이라며 "고문을 사무직원으로 보기는 어려운 만큼 법무법인 등에 '자문직'을 둘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직 관료 출신의 한 고문은 "민간인은 공직사회에 아무 제한 없이 발탁되는데 공직자는 민간 기업에 마음대로 가지 못하게 한 규정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직무와 관련한 정보 등을 이용할 수 없도록 하되 전문 지식이나 경험은 활용할 수 있도록 취업 제한을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미국선 어떻게 하나



미국계 사모펀드인 칼라일그룹은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 제임스 베이커 전 미국 국무장관, 아서 레빗 전 미 연방증권거래위원장 등 화려한 고문진을 자랑한다. 이들을 앞세워 미 정가는 물론 세계 각국 정부를 상대로 로비를 한다.



로비스트가 합법화돼 있는 미국에선 이처럼 전직 대통령이나 관료의 민간기업 취업에 제한이 별로 없다. 법무.회계법인에도 관료 출신 고문이 흔하다. 미국도 법무.회계법인은 변호사나 회계사끼리만 동업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미국 회계법인에는 '프린시펄(principal)'이라는 직책이 있다. 퇴임한 관료나 금융인 등 변호사나 회계사 자격증이 없는 외부 영입인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전직 관료가 아예 로비스트로 나서는 경우도 많다. 이 경우엔 로비공개법으로 규제하고 있다. 1971년 창립된 미국총기협회는 연간 1억 달러의 예산을 들여 총기 판매나 사용을 규제하려는 의회의 입법 움직임을 봉쇄해 왔다. 이 협회에는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을 비롯한 7명의 로비스트가 활동하고 있다.



미국은 로비활동을 법적으로 보장해 주되 '누구를 위해, 어떤 자금으로' 활동하는지 등 로비활동을 공개하도록 94년 로비공개법을 제정했다. 로비스트가 되려는 전직 관료는 이름, 주소, 주된 사업장소, 사업 활동 등을 등록하면 활동에 별다른 제약을 받지 않는다. 6개월간 로비활동에 대해 의회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지는 정도다. 캐나다를 비롯한 북미 국가와 유럽의 대부분 국가들도 비슷하다. 국내에서도 현재 열린우리당 이은영 의원 등이 '로비 제한법(가칭)'의 입법을 추진 중이다. 로비스트들을 등록시키고, 로비 활동 및 이에 수반되는 각종 예산을 정기적으로 국회 또는 감독당국에 보고토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이 법에서도 퇴임 관료 등이 법무법인이나 회계법인, 은행, 민간기업 등에 고문이란 직함으로 취업하는데 대해선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들을 로비스트로 부르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특별취재팀=정경민.김종윤.허귀식.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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