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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부처님 오신 날과 광우병 파동

중앙일보 2008.05.12 00:12 종합 23면 지면보기
이성(理性)은 인간의 가장 큰 힘이다. 이성은 찬 머리(순수이성, 사실판단력)와 더운 가슴(실천이성, 가치판단력)의 합이라 볼 수 있다. 인간이 지구상의 모든 동물을 제압하고 물질문명을 발전시켜온 것은 영리한 머리 덕분이다.

그러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찬 머리가 아니라 더운 가슴이다. 머리만 좋고 더운 가슴이 없는 사람은 영리한 동물에 불과하다. 역사를 발전시켜온 원동력도 더운 가슴이다.

근대 자유주의 국가가 건설되기 전에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신분·인종·성·종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사람을 차별함을 당연시해 왔다. 인권이란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다. 이런 오랜 악습을 타파하고 평등과 자유를 확대해온 것이 인류 역사의 가장 중요한 발전이다.

모든 인간은 기본 인권과 인격에서 완전히 평등하다는 ‘만인평등’의 명제는 근대성의 핵심이다. 만인평등은 그 자체로 자명하여 이유와 증명이 필요 없으며, 모든 사회현상에 관한 가치판단의 으뜸 기준인 ‘사회적 공리(公理)’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자유도 만인평등으로부터 도출된다. 모두가 평등하므로 아무도 다른 사람을 강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역사 발전에서 사회의 잘못된 점을 인식하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더운 가슴이고 이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을 찾는 것이 찬 머리의 몫이다.

만인평등이 옳다는 것은 우리의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옳고 그른 것을 판별할 줄 아는 가슴을 가진 덕에 사람들은 역사를 발전시켜올 수 있었다.

현대사회에서 만인평등은 자명한 상식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비록 속으로는 이를 부인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공개적으로 이를 부인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사람이 아닌 다른 동물을 이루 말할 수 없이 차별하고 있다. 개·고양이·소·말·새 등 동물을 키워본 사람들은 이들도 사람들과 똑같이 희로애락과 고통을 느끼며 서로 양보할 줄도 안다는 것을 안다. 단지 그들이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함부로 죽여도 좋은가? 현재 우리나라와 대부분의 선진국이 동물보호법을 만들어 동물학대를 금지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잘 이행되지 않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이 여전히 동물들을 마구 대하고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이 갖고 있지 못한 엄청난 힘을 혼자만 갖고 있다면 그 힘으로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모두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그 사람의 의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다른 모든 동물과 함께 잘 살 수 있는 지구를 만드는 것이 동물들보다 압도적인 힘을 가진 인간의 의무일 것이다. 다른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이 가슴이듯이 다른 생명체도 소중하다는 것은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는 것이다.

불교의 가르침처럼 살생을 하지 않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가려서 살생하고, 이슬람의 가르침처럼 살아있을 때 잘 보살펴 키운 다음 미안하고 감사하다는 예배를 드리고 고통 없이 도축해야 하지 않을까? 생명유지를 위해 고기와 생선을 먹고, 생업을 위해 고기와 생선을 잡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맛이나 멋, 재미를 위해 살생하는 것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낚시의 맛은 손맛이라고 하는데 그 손맛이 생선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당신의 입천장이 쇠꼬챙이에 뚫려 있다고 상상해 보라.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에 나와 있는 것처럼 “동물을 사육·관리 또는 보호함에 있어서는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인식하고 그 동물이 본래의 습성과 신체의 원형을 유지하면서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모든 인간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으로 대하라고 말했던 칸트가 다시 살아 돌아와서 동물들이 마구 죽임을 당하는 오늘을 보면 모든 생명을 목적으로 대하라고 말하지 않을까?

인간의 원죄는 에덴동산의 사과를 따 먹은 것이 아니라 다른 생명들을 마구 죽이는 것이 아닐까? 모든 생명을 소중히 대하는 날이 올 때 비로소 인간 세상에도 참평화가 실현될 수 있을 것 같다.

전국이 광우병 걱정으로 뒤숭숭하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소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이근식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경실련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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