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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커피를 가는 즐거움

중앙선데이 2008.01.19 20:27 45호 39면 지면보기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뭉그적거리는 시간이 많다. 이때 커피는 필수품이다. 작업의 긴장을 풀고 휴식하기 위해 드립 방식으로 일일이 커피를 내려 마신다.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다. 자처한 번거로움은 놀이로 바뀐다. 노는 동안 피곤은 풀리고 의식의 환기는 저절로 이뤄진다. 몸을 움직이는 일은 이상하게도 마음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윤광준의 생활명품 이야기-작센하우스

단순하게 보이는 일일수록 외려 고도의 감각을 동원한 숙련이 필요하다. 운전이 그렇고 커피 내려 마시는 일이 그렇다. 감각의 습득이란 끝없는 반복의 행동과 시간의 소비로 완성되지 않던가. 고급한 감각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길러진다. 세련의 정도는 연마의 성적표다. 맛있는 커피는 기호에 따라 원두를 잘 가는 일로부터 출발한다. 시작이 좋아야 끝도 좋다. 좋은 도구 선택은 매우 중요하다.

커피 핸드 밀(분쇄기)의 명품이라 할 독일의 작센하우스는 130여 년 동안 그라인더만을 만들어 온 명가다. 나는 편리한 전동 분쇄기를 마다하고 수동식 작센하우스를 더 즐겨 쓴다. 커피 맛도 좋아지고 단순한 손놀림이 유희의 즐거움으로 바뀌는 매력 때문이다. 취향을 합리로 재단하는 사람은 감각의 디테일을 말할 자격이 없다.

핵심 부품인 커팅 기어는 독일의 최상급 철강으로 만든다. 대를 물려 사용해도 날이 무뎌지지 않는 비밀이 숨어 있다. 분쇄 도중 발생하는 열을 분산시키는 기어 설계는 더 좋은 향과 커피 맛을 내준다. 돔형의 뚜껑과 어우러진 굵기 조절 나사의 정밀함은 경험과 전통의 산물이다.

몸체는 독일의 상징이라 할 울창한 숲에서 채취된 너도밤나무 재질을 쓴다. 손때 묻어 더해진 광택은 시간의 오염을 아름다움으로 바꾸어 놓는다. 작센하우스를 한번 사면 평생 함께하는 지기가 되는 이유다.

귀찮지만 손으로 돌려 커피를 간다. 도중 떠오르는 추억과 사건들은 커피 향과 함께 복원되는 나의 역사와 행복의 실체다. 커피 한 잔으로 더 살갑게 다가왔던 사람과 시간은 소중한 재산이 돼 남았다. 커피란 놀이는 단순 반복의 행위를 풍요로 바꾸어 놓는다.

선택한 놀이에 각별한 의미가 더해지면 의식이 된다. 의식은 대치시킬 수 없는 형식을 더해야 틀이 갖춰진다. 여기에 나만의 규칙과 사치를 곁들여야 완성이다. 작센하우스는 빼놓을 수 없는 제기가 되어 소리와 감촉을 봉헌한다. 별것 아닌 커피 핸드 밀 하나를 놓고 침 튀기는 한심함을 측은하게 바라보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윤광준씨는 사진가이자 오디오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체험과 취향에 관한 지식을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 에세이로 바꿔 이름난 명품 마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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