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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북녘동포>4.外貨벌이에 하루가 간다

중앙일보 1995.01.24 00:00 종합 8면 지면보기
북한은 고려청자.청동불상.조선백자.서화등 문화재급 골동품을 수집,주로 일본에 팔고있다.

백도라지재배라고 위장한 양귀비 전문농장이 양강도의 운흥.갑산.보천.백암과 함남의 장진.단천에 대규모로 조성돼 아편을 생산하고 있다.밀반출을 위한 정책적 사업이다.

이같은 당국의 외화벌이 장려는 소련.동구권의 몰락에 따라 대외경협상대를 잃고 경화(硬貨)결제의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기관.기업 모두가 외화벌이에 나서 무역기관과 연계를 가지면서 수출거리를 찾는게 오늘의 북한이다.정무원산하 무역회 사의 대외사업지도원 김동만(43.가명)씨의 증언.

『소련.동구권 몰락후 정무원산하의 각 부.위원회가 무역회사를만들어 외화벌이에 나서면서 무역관리 체계가 엉망으로 바뀌었다.

무역부산하의 대성무역회사는 외화벌이 업체들로부터 합법적 커미션을 5~10%씩 받는 무역대행업체로 변신하고 있다 .

국가안전보위부는 「대양」,사회안전부는 「동흥」,인민무력부는 「매봉」등의 무역회사를 독자 설치했다.각 군단(軍團)도 별도로외화벌이에 나선다.』 지난 10년간의 외화벌이는 북한사회에 무시못할 변화의 동력이 되고 있다.외화벌이 일꾼과 거간꾼이 전역을 누비면서 수출거리를 찾고 주민들은 생필품 부족을 조금이나마해소하려고 외화벌이에 기를 쓴다고 김대호(金大虎.36.원자력공업부 남천화학연합기업소 외화벌이 일꾼)씨는 전한다.

▲농수산물위주의 수출품=주요 수출품은 명란젓.성게알.해삼.생복(전복).실뱀장어등 수산물과 송이버섯.도라지.고사리.잣.콩등농토산물이다.송이버섯은 김일성(金日成)의 지시에 따라 당중앙 39호실(김일성.金正日자금관리실)에서 전부 수거 해 수출한다.

청진광산금속대학생 윤웅(尹雄.29)씨 증언.

『요령좋은 사람들은 송이버섯을 한 배낭(7㎏쯤)씩 따오는데 국가에 팔면 북한돈으로 7백~8백원을 받는다.거간꾼에게 비싸게팔려는 주민들이 송이버섯을 소금에 절여 숨기기도 한다.안전원들은 송이버섯을 국가재산이라며 은닉자를 잡으러 다니 는 것도 흔한 풍경이다.』 김일성이 『송이버섯을 가로채는 행위는 내 호주머니를 터는 것과 같다』며 송이버섯의 국가관리를 강조했다는 것. 북송동포2세로 외화벌이 사업에 뛰어든 진광호(27)씨 증언. 『내가 소속된 인민군 보위대학은 온천군에 수산기지를 꾸려놓고 신의주에서 중국 상인들과 거래했다.군의 정치장교를 양성하는 이 대학이 학생들을 동원해 조개잡이를 시켰다.물량확보가 급할 때는 학생 1천여명이 한달간 조개잡이에 동원된 일도 있었다.』 자강도에서는 중국에 사금을 파는 외화벌이가 활발하다.

『자강도의 어느 강변이나 사금이 약간씩은 있다.낭림군에는 개인이 금을 채취하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일부 금광이나 제련소에서 금을 빼돌려 중국에 파는 일도 있다.』(조명순씨.34.여.가명) 김대호씨는『주부가 조개 10㎏을 바치면 나일론 양말 1켤레.사탕 1㎏을 받기 때문에 잡은 조개로 국 끓여 먹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외화벌이 일꾼과 거간꾼 백태=「외화벌이 일꾼」은 무역회사 혹은 기관.기업소.단체 등의 외화벌이 부문에 소속돼 일하는 사람들이다.이들은 외화벌이 원천을 마련하고 직교역을 하거나 무역회사에 위탁한다.「거간꾼」은 무역.외화벌이 일꾼들 에게 수출품을 넘기는 중간상인으로 당간부.보위부원.안전원들도 나서고 있다. 군수업체인 만경대 보석가공공장 무역지도원 김명철씨의 증언.

『서해안의 해주시.온천군.용천군등 4곳에,동해안의 화대.금야.통천군등 5곳에 수산기지를 차렸다.우리 회사가 제2경제위원회(군수산업전담)산하여서 황해도 행정위원회에「장정노력 몇명을 보내달라」고 공문만 보내면 쉽게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김동만씨의 증언은 외화벌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무역회사들은 수출품을 구하는 과정에서 수산사업소 책임자들을끼고 사업한다.이들에게 기름.채소.경공업제품을 제공해 수출원천을 확보한다.그밖에 군당 조직비서에게 기름.사탕수수.경공업제품을 주고 사업할 때가 있고 아예 각 군에 별도의 회사를 차려 운영하는 경우도 있다.』 무역과정에 뒷거래도 무성하다.

『외화벌이에 검열이 심한 편이지만 대개는 뇌물로 넘어간다.당중앙위원회의 지시로 중앙인민위원회.사회안전부.중앙검찰소.지방검찰소.지방인민위원회의 검열이 잇따른 적도 있다.

대외사업 지도원을 맡으면 대개 생활형편이 핀다.대외사업 지도원이 수출가격을 작성하기 때문이다.보위지도원은 이에 수표(서명)만 하게 돼있다.대개 일본인.재일동포와 협상할 때 국가가격제정위원회의 책정가격보다 더 부르면 눈치빠른 상대방 이 통역 몰래 뇌물을 준다.그제서야 못이기는 척 국가가격으로 계약에 응한다.』(김동만씨) 외화벌이는 부작용때문에 몇차례 굴곡을 겪지만김정일이 93년에 인민무력부산하의 여단급까지 독자적으로 외화벌이를 하도록 지시해 더 활발해졌다(진광호씨).

3대혁명소조원으로 외화벌이에 나선 김광욱(27)씨 증언.

『나는 리붕합영회사 과장.평성시 보위부원.순천시 군부대 물자인수원 등과 한조로 장사에 나섰다.이들은 직장에서 뇌물을 고이고 자유시간을 얻어 외화벌이에 나선 경우다.』 진광호씨가 거간꾼의 분위기를 잘 알고 있었다.

『한 거간꾼은 여러 무역회사를 상대한다.전국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큰손은 수십명 정도다.거간꾼들은 대개 출신성분이 별로이기 때문에 고위간부의 자제를 끼고 활동한다.

중앙사로청 조직간부과 지도원인 백영일은 사회안전부장 백학림(白鶴林)의 아들로 거간꾼들의 뒤를 봐주고 돈벌이를 했다.前인민무력부장 최현(崔賢)의 아들이 거간꾼들과 어울려 문제를 일으킨적이 있고 前부수상 김책(金策)의 손자 김문일도 그런 패다.』외화벌이는 상호경쟁.관리부실 속에 밀수라는 부작용이 터져나왔다. 『89년께 인민군 보위대학이 외화벌이사건으로 학장.정치부장.조직부장.후방부학장.교무부학장 등이 물러나는 회오리를 겪었다.대학 보위부장외의 모든 간부가 연루됐다.공해상에서 밀수를 시도하다 걸렸던 것이다.

또 91년에 시범케이스로 30대 후반의 유명한 거간꾼들이 남포에서 체포됐다.대남연락소 계통의 금강관리국 지도원 황치훈,5.19해상연락소 외화벌이 지도원 김창환,호위총국 남포지사장 김문일등이 1인당 13만7천달러를 먹다 걸려 사형. 징역형을 구형받았다.

93년6월에야 사건이 종결됐는데 1백여명이 연루돼 전국 거간꾼들이 다 잡혔다고 할 정도였다.사건에는 김정일의 동생 김경희(金敬姬)중앙당 경제부장의 장남까지 연루되어 시끄러웠다.나중에무죄로 끝나자 남포시 안전국 부국장이 책임을 지 고 파면당했다.』(진광호씨) ▲양귀비재배의 실상=당국이 외화벌이를 위해 「백도라지」(양귀비의 위장명칭)재배를 본격화한 것도 북한 90년대의 초상이다.

양강도에서 직접 양귀비를 재배했던 익명을 요구한 한 귀순자의실태증언.

『내가 근무하던 공장에서 93년에 아편 8㎏을 생산했다.공장근처의 1정보에서 수확한 양인데 뒤로 빼돌린 것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이것은 김일성이 91년에 「양강도에 백도라지밭을 대대적으로 조성하라」고 지시한데 따른 것이다.

당시 각급 기관.기업소.협동농장들이 모두 백도라지밭 조성에 동원됐다.양강도일부 지역은 92년부터 아편을 생산하기 시작했고우리 회사는 93년에 처음 생산했다.92년에 양강도 운흥군의 채종농장과 협동농장을 합쳐 양귀비전문농장을 만들 었는데 엄청난규모다.양강도에는 운흥 외에도 갑산.보천.백암 등 4개의 양귀비 전문농장이 있다.

운흥군 양귀비전문농장에서는 아편채취에 2만여명이 동원됐다.독일산 종자를 수입해 심어 기르는 것은 농장원으로도 충분하지만 아편채취는 8월 한달간 이뤄져야 하므로 인력을 대규모로 동원했다.도 전체가 나서다시피 했는데 우리 공장에서도 1백여명이 갔다. 우리 공장은 탈북때까지도 아편을 처리하지 못해 창고에 보관했다.』 『평남개천군 생약관리소가 개천군 수화저수지 옆 1정보의 땅에 양귀비를 심었다.』(김형만씨) 『함남에서는 도당 책임비서가 기관.기업소의 책임자들이 모인 비밀회의에서 「백도라지를 전군중적으로 재배」하도록 지시했다.

함남도는 장진군에 대규모 양귀비농장을 조성,수확기에 함흥시.

북청.홍원군등의 인력을 동원했다.비밀유지를 위해 처녀들만 수확에 참가시키고 양복지를 지급했다.』(여금주씨.21.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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