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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기회' 남과 다른 길을 갔다

중앙선데이 2007.11.18 14:45
중앙SUNDAY


외환위기로 뜬 사람들





1997년 6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은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조그마한 빌딩에 사무실을 얻어 미래에셋창업투자를 설립했다. 미래에셋창투의 출발은 미약했고 때도 좋지 못했다. 당시 경제상황은 태풍 전야(前夜)와 같았다. 한보와 진로의 부도에 이어 기아자동차도 흔들렸다. 모두들 “박 회장이 창업시기를 잘못 선택했다”고 수군거렸다.



정확히 6개월 뒤 외환위기가 닥쳤다. 코스피지수는 300선까지 떨어졌고 시중 금리는 연 30%까지 치솟았다. 경제가 끝장났다는 분위기가 한국 사회를 지배했다. 그러나 박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박 회장은 시중 금리가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다고 믿고 운용자금의 95%를 채권에, 나머지 5%는 선물에 투자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이어 박 회장은 수익금 전액을 주식에 투자했다. 주가지수 300은 있을 수 없는 지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외환위기라 해도 철강과 조선, 반도체 등 세계적인 제조업 기반이 있는 한국의 주가지수가 300이라니. 도저히 이런 상황을 인정할 수 없었다.”





박 회장이 이때 마련한 자금은 ‘미래에셋 신화’의 초석을 놓는 데 활용됐다. 정확히 창업 10년 만에 미래에셋은 한국 금융시장의 강자로 성장했다. 주식형 펀드 시장의 30%를 미래에셋이 차지하고 있다.



제조업 부문에서 남다른 길을 걸어 성공한 인물은 STX그룹 강덕수 회장을 꼽을 수 있다. 쌍용양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강 회장은 입사 초년병 시절부터 돈 보는 눈이 남달랐다. 외환위기로 기업의 가치가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는 헐값에 부실 기업들을 사들여 알짜 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남다른 수완을 발휘했다.



외환위기 전 쌍용중공업(현 STX)의 임원이던 그는 2000년 말 스톡옵션과 사재 20억원을 동원해 외국인 주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이듬해인 2001년 강 회장은 STX가 받아둔 엔진 선수금과 매출 채권을 담보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해 마련한 자금 1000억원으로 대동조선(STX조선)을 인수했다. 현재 STX조선은 세계 5위의 조선사로 성장했다. 또 범양상선(현 STX팬오션)을 인수한 뒤 주식을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해 인수자금을 회수했다.



그의 안목은 산업단지관리공단이 내놓은 열병합발전소(STX에너지)를 500억원에 인수할 때도 빛났다. 열병합발전소는 돈이 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 때문에 세 차례 유찰됐던 회사. 그러나 강 회장은 인수했다. STX에너지는 해마다 200억원이 넘는 순이익을 내고 있다. 그는 “셈법이 같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면 돈 벌 기회가 적다”며 “남과 다른 길을 갔더니 돈이 따라오더라”고 투자 비법을 털어놓았다. 올해 STX그룹은 국내에서만 17개 계열사에서 매출 11조원, 경상이익 1조원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했다. 두산그룹이 그랬다. 두산은 1990년대 중반 50여 년간 지배해왔던 맥주시장을 하이트맥주에 내줬다.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퍼졌다. 1996년 매킨지가 작성한 컨설팅 보고서는 ‘모든 것을 다 바꿔야 한다’는 게 요지였다. 보고서를 읽은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부회장은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는 즉각 움직였다. 두산은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인 96년부터 97년 상반기까지 한국 3M·코닥·네슬레·코카콜라 등 합작회사 지분을 처분했다. 모두 알짜 기업이었다.



일찍 찾아온 위기는 97년 하반기 전화위복이 됐다. 외환위기로 원-달러 환율이 치솟자 매각자금을 달러로 갖고 있던 두산은 엄청난 환차익을 봤다. 이어 98년에는 그룹의 간판기업이었던 OB맥주와 두산음료 경영권까지 넘겼다.



현금을 확보한 두산은 2001년 두산중공업(옛 한국중공업) 인수를 시작으로 7년간에 걸쳐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와 잉거솔랜드 등 국내외 기업을 대거 인수했다. 모두 중공업과 건설 관련 업체다. 매출구조가 바뀐 것은 물론이다. 95년 63%였던 소비재·서비스 비중이 지난해 12%로 준 대신 중공업과 건설 비중이 88%로 늘었다. 박 부회장은 공·사석에서 “여전히 배가 고프다”며 “대우조선해양과 현대건설 인수에도 관심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제일·조흥·상업·한일·서울은행 등은 외환위기로 간판을 내린 은행이다. 이들에 비하면 신설 은행에 지나지 않던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은 오히려 강해졌다. 신한은 국내 최초의 은행인 조흥은행을 인수했고, 하나은행은 보람은행과의 합병에 이어 서울은행을 가져갔다.



간판을 내린 은행과 신한·하나은행의 차이점 중 하나는 오너 못잖은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은행장의 존재였다. 정부가 임명권을 갖고 있던 다른 시중 은행장과 달리, 신한지주 라응찬 회장과 하나지주 김승유 회장은 자력으로 은행장에 오른 인물이다. 이들은 정부의 입김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웠다.



은행장들이 모여 부실 기업에 대한 구제금융을 논의할 때마다 신한과 하나는 완강히 버티었고 이 덕분에 관치금융의 피해를 덜 볼 수 있었다. 한 금융계 인사는 “은행장이 바뀔 때마다 안팎에서 권력다툼을 하던 은행과 달리 신한과 하나는 리더십이 확고해 경영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희성 기자 budd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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