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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백’서 ‘사오정’까지 불안한 고용

중앙선데이 2007.11.17 23:33 36호 5면 지면보기
외환위기는 직장인과 청년들에게 직격탄이 됐다. 종신고용의 환상에 젖어있던 근로자들은 언제 퇴사할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살아야 했다. 근로자들이 회사에서 나가는 마당에 일자리를 구하려던 청년들은 갈 곳을 찾지 못했다. 이렇게 되면서 ‘중도하차’의 위험이 없는 공기업이나 공무원이 최고의 직업으로 각광받게 됐다. 전공이나 포부는 접어두고 일단 안정적인 직장을 찾는 풍속도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외환위기가 남긴 상처-노동

‘체온퇴직’ 등 신조어 양산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2월 노사정위원회는 최초의 노사정 합의문을 내놨다. 핵심은 ‘정리해고’의 도입이었다. 경영사정이 나빠지면 기업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노조로서도 회사가 살아야 다음을 기약할 수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정리해고가 공식화되자 위력은 모든 기업으로 퍼져나갔다. 현대자동차가 30여 명을 정리해고한 것을 시작으로 대기업·중소기업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기업이 이를 채택했다. 이후 구조조정은 일상화됐다. 최근 은행권에서 때아닌 희망퇴직 바람이 불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고용 불안에 대한 직장인들의 신세한탄은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45세는 민간 사기업의 정년퇴직 나이라는 ‘사오정’, 여기서 더 낮아져 38세면 퇴직한다는 ‘삼팔선’, 삼팔선에서 퇴직연령이 체온인 36.5세로 내려왔다는 ‘체온퇴직’, 이런 사정도 모르고 민간 기업에서 56세까지 다니면 도둑놈이라는 ‘오륙도’까지.

‘꿈’보다 ‘안정’이 우선
민간 기업에서 구조조정 한파가 몰아치자 취업 희망자는 물론 직장인까지 고용이 안정된 직장을 찾아 눈을 돌렸다. 그 답이 ‘신이 내린 직장’ ‘신도 다니고 싶어 하는 직장’으로 불리는 공무원·공기업이었다.

올해 20명의 신입사원을 뽑는 코트라에는 석·박사 학위 소지자 615명이 몰리는 등 168대 1의 경쟁력을 보였고, 3명을 뽑는 경력사원 경쟁률은 118대 1을 기록했다. 건강보험공단 159대 1, 한국전기안전공사 129대 1 등 웬만한 공기업은 모두 100대 1 이상의 높은 경쟁률을 보였다. 심지어 지방자치단체의 환경미화원을 뽑는 데 석사학위를 가진 사람까지 응시할 정도다. 올해 삼성그룹의 신입사원 경쟁률은 9.9대 1, 하반기 공채기업의 평균 경쟁률은 51대 1이었다.

이처럼 청년들의 일자리 구하기가 어렵다 보니 20대 사이에선 이런 유행어가 생겼다. ‘A매치데이(금감원, 한국은행, 공기업 등의 시험이 겹친 날)’ ‘낙바생(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갈 정도로 어려운 입사시험을 뚫고 합격한 사람)’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 ‘이구백(20대 90%가 백수)’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가 될 것을 생각해야 한다)’ ‘삼일절(31세까지 취업 못하면 길이 없다)’ ‘토폐인(토익만 공부했다 취업도 못하고 폐인이 된 사람)’ ‘취업 5종 세트(어학연수, 공모전 수상경력, 인턴경력, 봉사활동, 자격증)’ ‘3대 입시 클러스터(고교 때는 대치동 학원가, 대학에선 신림동 고시촌, 졸업하면 노량진 공무원 학원가)’.

올 들어 청년 실업률은 98년 당시 12%보다 낮은 7.9%로 떨어졌지만 지난해 실업률 3.5%보다는 여전히 두 배를 웃돌고 있다.

규제할수록 늘어나는 비정규직
2001년 8월 363만 명이던 비정규직은 올해 8월 861만 명(한국노동사회연구소 통계청 조사 분석 자료)으로 급증했다. 전체 임금근로자의 54%에 해당한다. 이들의 임금은 정규직 근로자의 65% 정도다. 4대 보험 혜택을 받는 비정규직은 30%대다.

이렇게 되자 정부는 비정규직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보호법안을 만들었다. 하지만 노동시장에선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 올해 8월 통계청 조사에서는 기간제 근로자가 크게 줄어든 반면 도급과 용역 근로자가 급증했다. 2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한 법규가 기업으로 하여금 도급시장에 눈을 돌리게 한 것이다.

대책 비웃는 실업 증가세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정부는 실업률을 낮추고, 고용률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김대중 정부에선 98년부터 2001년까지 20조원을 투입했다. 덕분에 2001년 실업률은 4%대로 낮아졌다. 그러나 실제론 허수가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나라당 한선교 의원에 따르면 현 정부 들어와서도 지금까지 12조원이 투입됐다. 그러나 실업자는 2002년 75만2000명에서 지난해 82만7000명으로 10% 늘었다. 거액을 들이고도 얼어붙은 노동시장을 녹이지 못한 것이다.

성신여대 박기성(경제학) 교수는 “외환위기 직후의 심각한 실업상황에서는 정부의 실업대책이 제한적인 효과를 발휘했을지 모르지만 일정 궤도에 오르면 결국 기업이 활황세를 누리느냐 못 누리느냐에 따라 실업대책의 성패가 좌우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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