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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시시각각] 지방의회를 포격하라

중앙일보 2007.11.08 20:52 종합 34면 지면보기
1966년 8월 5일, 마오쩌둥(毛澤東)은 ‘사령부를 포격하라’는 유명한 대자보를 발표했다. 대자보는 문화대혁명의 불씨에 기름을 확 끼얹는 역할을 했다. 그로부터 10년간 중국은 지식인과 정적에 대한 테러·학살·추방 등으로 유례없는 혼란을 겪게 된다.



 지방의회 의원들의 파렴치한 연봉 인상 퍼레이드에 분이 치솟다 보니 엉뚱하게도 마오의 대자보 제목이 떠올랐다. ‘지방의회를 포격하라’고 말이다. 문화혁명은 중국 사회를 수십 년 후퇴시키는 역작용을 했지만 전 국민이 나서서 자기 고장 지방의회를 포격하면 우리나라 지방자치는 수십 년 발전이 앞당겨진다고 나는 믿는다.



 뒤늦게 낮추겠다고 생색내긴 했지만 전북 무주군 의회는 내년 연봉을 올해의 두 배인 4200만원으로 책정했었다. 무주군의 재정자립도는 겨우 12%다. 서울 강남구는 내년도 구의원 연봉을 6096만원으로 올리려다 비판이 일자 4236만원으로 낮췄다. 강원도 삼척은 81.3%, 충북 옥천은 65% 인상안을 확정했다. 세금 퍼먹기 행진에 시·도 교육위원도 끼어들었다. 경북도 교육위는 교육위원들의 내년 의정비를 24.5% 올린 5095만원으로 정했다. 충북도 교육위원은 3240만원에서 4020만원으로 오른다. 분통이 터지지 않는 게 이상하다.



 ‘지방의회 포격’에 성공한 사례가 이웃 일본에서는 심심치 않게 있다. 최근 화제가 된 곳은 후쿠오카(福岡)현 이즈카(飯塚)시. 석탄산지인 이즈카는 산탄(産炭) 지역 활성화 기금 등 중앙정부의 풍족한 지원을 받아 왔다. 그런데 기금 지원이 올해부터 끊겨 시민들의 위기감도 고조됐다.



 지난해 3월, 이즈카시는 주변 4개 소도시와의 합병을 단행했다. 시너지 효과를 위해서였다. 5개 지방의회도 자동적으로 합쳐지게 됐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됐다. 지방의원들이 특례 규정을 만들어 기존 지방의원 87명 전원이 유임되도록 의결한 것이었다. 인구 14만 명의 작은 도시에 무려 87명의 거대 지방의회. 적자 재정에 걱정이 태산이던 시민들이 분노했다.



 의회 포격의 신호탄은 평범한 여성, 그것도 할머니가 쏘아 올렸다. 전업주부 시바타 미네요(71)였다. 시바타는 TV 뉴스를 보다 분이 치솟아 이웃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한국과 달리 일본엔 주민이 지방의회를 해산하는 ‘리콜’ 제도가 있다. 시바타 할머니는 ‘이즈카시 의회 해산을 요구하는 모임’이란 시민단체를 만들었다. 먼저 의회 의장에게 자진 해산을 요구했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주민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이즈카 의회 의원의 연봉은 552만 엔(약 4420만원) 수준. 의원 수를 확 줄여 어려운 재정에 보태자고 열변을 토했다. 해산 여부 투표 실시에 필요한 서명자 수(유권자의 3분의 1)를 훨씬 넘는 4만5000명이 기꺼이 펜을 들었다. 올해 2월 4일, 마침내 투·개표가 진행됐다. 해산 찬성 4만5768표(92.34%), 반대 3445표(6.95%). 압도적인 표차였다. 시바타 할머니는 개표장의 자원봉사자들에게 100송이의 붉은 튤립을 보내 승리를 자축했다. 의회 의장은 쫓겨나면서 “솔직히 말해 시민들을 너무 얕봤다”고 고백했다. 이즈카시는 의원 정수를 34명으로 확 줄여 올해 3월 새로 선거를 치렀다.



 우리 지방자치법에는 의회해산 제도가 없는 대신 주민소환·주민소송 그리고 감사청구가 보장돼 있다. 행정자치부 주민참여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중 가장 강력한 주민소환을 그동안 8곳에서 시도했다고 한다. 소환 동기의 옳고 그름을 떠나 5곳은 서명자 수를 채우지 못해 무산됐고, 전주시와 경남 함양군에서는 주민 서명을 받다가 대통령 선거 기간에는 서명 작업을 금지한 관련법에 따라 잠시 멈춘 상태다. 유일하게 경기도 하남시만 소환 절차가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지방의회든 자치단체든 조금이라도 방만하게 굴면 유권자가 나서서 따끔하게 혼내야 한다. 안 그래도 우리 지자체와 지방의회는 같은 정당, 특히 한나라당 당원들이 끼리끼리 해먹는 곳이 유난히 많다. 포격까지는 안 하더라도, 항상 조준경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내가 낸 세금이 줄줄 새지 않는다.



노재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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