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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명품에 주눅들지 않는 단순美

중앙선데이 2007.09.29 16:59 29호 31면 지면보기
손목시계도 모자라 휴대전화로 수시로 시간을 확인한다. 시간에 매여 사는 현대인의 불안한 습속일 게다. 집과 작업실 ‘비원’ 안에도 시계는 몇 개나 걸려 있다. 수시로 시간을 확인해야 안심이 되는 강박은 눈치 보며 살 필요가 없는 프리랜서조차 예외가 아니다. 산다는 것은 시간 속에 비집고 들어가 세상과 다투는 일이다.

윤광준의 생활 명품 이야기-‘포커시스’ 벽시계

정상인으로 살아간다면 시계를 보지 않고 살 방법은 없다. 세상을 살아내기 위한 빽빽한 일정과 약속에서 밥이 생기지 않던가. 해 뜨면 일어나고 배고프면 밥 먹는 자연친화적 삶, 난 시계가 필요 없는 몽골 유목민을 볼 때마다 진심으로 부러워하곤 했다.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거부할 수 없다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정신건강에 좋다. 우선 시간과 친근해질 필요가 있다. 시간에 매여 있지 말고 시간을 부리며 사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잠을 줄여서라도 가용 시간을 늘려 자신만의 내용물을 쌓는 행동 말고 무엇이 있을까.

즐거운 시간쓰기의 출발은 멋진 시계를 곁에 두는 일이다. 속박이 아닌 필요를 즐거움으로 바꾸어주는 시계들. 기발한 아이디어를 담은 재미있는 디자인의 시계에서부터 존재감 넘치는 명품시계가 끝없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수긍한다. 넘쳐나는 시계도 모자라 뭔가 새로운 개성을 지닌 물건을 또 사들이는 컬렉터들의 행동엔 충분한 이유가 있다.

나는 디지털보다 아날로그 방식의 시계를 좋아한다. 인정머리 없이 시각만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한눈에 시간대를 조망케 하는 매력 때문이다. 마음에 드는 IWC 손목시계는 돈이 없어 사지 못했다. 대신 벽시계로 눈을 돌린다. 생활의 소품으로 눈을 즐겁게 하고 시간을 친숙하게 받아들이기 위한 대치의 몸부림이다.

벽시계라고 다 똑같지 않다. 단순한 문자판과 시침·분침·초침만으로 이루어진 시계 디자인은 의외로 어렵다. 디자이너인 친구의 고민도 다르지 않다. 단순함을 잘 마무리하는 재주가 디자이너의 빼어난 능력이란 사실을 공감한다. 몇 개의 시계를 갈아치운 후에야 마음에 드는 벽시계를 하나 찾아냈다.

‘포커시스(FOCUSIS)’란 국산 브랜드 제품이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몸체에 담긴 흰색 문자판엔 아라비아 숫자와 온·습도계가 함께 담겨 있다. 강하게 눈을 끄는 숫자와 두 개의 원, 세 개의 주황색 지침, 비어 있는 공간의 조화로운 동거를 이끌어내는 인상이다.

혼잡한 K매장에 놓인 ‘포커시스’는 내로라하는 유명 외제 브랜드의 시계 속에 섞여 있지만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기계식 롤렉스 시계처럼 무단계 이동하는 초침의 움직임은 째깍대는 소리가 없다. 작은 소리에도 날카로워지는 집중의 순간을 해치지 않음은 물론이다. 자신이 겪었던 불편을 사용자에게 반복시키지 않으려는 디자이너의 세심한 배려를 고마워한다.

움직이지 않으면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시간 역시 살아 움직이는 생명과 다름없다. 시간의 흐름을 일깨워주는 ‘포커시스’ 시계를 지금도 들여다본다. 의미의 시간이 많이 쌓여야 행복한 사람이다.



윤광준씨는 사진가이자 오디오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체험과 취향에 관한 지식을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 에세이로 바꿔 이름난 명품 마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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