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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CoverStory] 여자 야구단 ‘선라이즈’ 야구 9단, 여인구단

중앙일보 2007.08.23 14:59 주말섹션 1면 지면보기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헤쳐 이만큼 왔다. 새로운 길은 멀고 험했다. 힘들어 지치고 외로워 울었다. 그러나, 나는 희망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 조금씩 자라는 희망을. 그리고 알았다. 꿈은 내가 버릴 뿐 스스로 달아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 가야 하는 저 길, 걷고 뛰고 굴러왔는데 아직도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다.


 그날, 조금은 비장한 표정으로 동대문운동장 마운드에 올라서던 소녀의 앙다문 입술을 기억하시는지요. 1999년 4월 30일 대통령배 고교야구대회 4강전에서 당시 덕수정보산업고(전 덕수상고) 소속 안향미 선수가 선발투수로 마운드를 밟습니다. 한국 야구 역사상 최초로 여자 선수가 공식 대회에 출전한 날이었죠. 경기 전 별다른 예고가 없었던 때문인지 취재 나온 기자들도 별로 없었답니다. 1번 타자를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낸 뒤 바로 강판된 소녀 투수 역시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한참을 경기장 구석 벤치에서 가슴만 쓸어내렸다지요.

은행원·주부·고시생·공연기획자·트랜스젠더… 야구공이 묶은 인연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그날을 기억하건 말건 안향미는 여전히 야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대학선수도, 프로선수도 되지 못했지만 여성 야구팀 ‘선라이즈(Sunrise)’의 총감독이라는, 조금 거창한 타이틀까지 달게 되었답니다. 당시 안향미 선수의 등판 소식에 흥분했던 것은 한국야구위원회(KBO) 관계자들도, 수많은 고교야구 팬도 아니었습니다. 야구를 하고 싶었지만 당최 방법을 몰랐던, 전국의 수많은 ‘야구소녀’였습니다. 그들의 가슴에 불이 붙고 만 것이죠. 그리고 드디어 2004년 당시 안향미 선수가 주축이 된 ‘비밀리에’를 시작으로 여자야구팀은 봇물 터지듯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지난 3월에는 전국 16개 팀이 모여 한국여자야구연맹을 발족했고, 6월에는 18개 팀이 참가한 KBO총재배 전국 여자야구선수권대회까지 열렸습니다.



 ‘여자가 무슨 야구냐’고 비웃건 말건, 그들은 즐겁게 달립니다. “이 유니폼 너무 뚱뚱해 보이죠?”라면서도 샛노란 야구복을 입고 당당히 지하철을 탑니다. 그들의 야구, 수준급이라고 하기엔 어려울지 모릅니다. 땀 때문에 손이 미끄러져 방망이는 헛돌고, 외야로 내치려던 공은 자꾸 허공으로 치솟기만 합니다. 허나 그러면 또 어떻습니까. ‘그래도 야구가 있어 살맛이 난다’는 이 여인네들, 이번 주 Week&은 땀내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송구합니다.





글=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기자 <shotgun@joongang.co.kr>









언니들, 야구를 만나다



 “정은 언니, 결혼준비는 잘 돼가요?” “연습 때문에 ‘시커먼스’가 돼서 드레스 입으면 웃기지 않을까 걱정이야.” 늦여름 더위가 절정에 이르렀던 지난 토요일, ‘선라이즈’ 여자야구팀은 여름 합숙훈련 및 MT를 위해 용인의 한 은행 수련원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10월에 결혼을 앞두고 있는 이정은(28) 선수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피부관리법’에 대한 수다가 이어진다. “그러게 더워도 야구 티 안에 긴 팔을 꼭 받쳐 입어야 된다니까” “연습 중에도 선 블록을 자주 덧발라줘야 된대요. 3~4시간 지나면 효과가 없어진다는데.” 강미선(27) 선수는 “주말마다 운동을 하니 평소 아무리 ‘미백 마사지’를 해도 소용이 없다”고 투덜대면서도 즐거운 표정이다. “그럼요. 비 와서 야구 못할까 봐 얼마나 걱정했는데.”



 한국여자야구연맹 서울지부 소속 ‘선라이즈’ 여자야구단. 지난 여름 열린 제1회 선수권 대회에서 18개 팀 중 3위를 차지한 여자 야구계의 ‘강팀’이다. 2004년 한국 최초로 여자야구팀 ‘비밀리에’를 만들었던 안향미 총감독을 비롯해 25명의 선수들이 정규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프로팀도 실업팀도 아닌, 지원금도 전용구장도 없는 ‘그저 야구가 좋을 뿐인’ 사람들의 모임. 은행원부터 학생, 공연기획자, 고시생, 세무공무원까지 직업도 각양각색이다. 대부분 20대~30대 미혼 여성들이지만 아이를 둔 주부도 있고, 일본인이 2명, 지금은 바빠서 나오지 않고 있지만 트랜스젠더 멤버도 한 명 있다.



 “어릴 적부터 ‘짬뽕(혼자 던지고 혼자 때리기)’을 유난히 잘했고, 집 앞 배팅연습장에서 홈런(?)도 많이 날렸죠. 제가 가르치고 있는 학생한테 우연히 여자야구단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거다’ 싶더라고요.” 직업학교에서 웹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는 전순아(32) 선수는 지난해 7월에 제자를 따라 팀에 합류했다. 포천에서 회사에 다니고 있는 채송화(23) 선수는 어릴 적부터 프로야구팀 LG의 광팬이었다. “거의 매주 야구장을 다녔는데 그러다 보니 직접 해보고 싶어졌어요.” 주말마다 야구를 위해 서울에 오는 그에게 ‘미쳤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좋아하던 선수들의 플레이를 조금씩 익혀간다는 것”이 무척 재미있단다. 선수들 대부분이 국내는 물론 일본·미국 프로야구의 열성 팬인 탓에 이승엽의 예전 등 번호였던 36번, 박찬호 등 번호인 61번 등은 팀 창단 초기부터 서로 갖겠다며 경쟁이 치열했다.





안향미, 그리고 한국 여자야구



 다들 야구를 좋아했지만 팀에 들어오기 전까지 공 한번, 배트 한번 만져본 적 없는 ‘초짜’들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초등학교에도, 중·고등학교에도 야구를 하는 여자아이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들에게 ‘한국 최초 여자 야구선수’인 안향미라는 존재는 어쩌면 절대적이었다. “거짓말 안 보태고 정말 TV 보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니까요. 아, 한국에도 여자 야구선수가 있구나. 그때부터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하더라고요.” 주장 강효선(23) 선수는 3년 전 TV를 통해 안향미 감독의 이야기를 알게 된 후 바로 야구에 뛰어들었다.



 야구 특기생으로 경원중과 야구명문인 덕수정보산업고를 다니면서 남자선수들과 똑같은 훈련을 받았고, 결국 한국야구위원회 규약에서 ‘의학상 남자가 아닌 자, 부적당한 신체 또는 형태를 가진 자는 선수가 될 수 없다’는 차별조항을 삭제하도록 만든 장본인이 바로 안향미다. 대통령배 4강전에 선발투수로 출전해(흑백사진) 진학 및 프로 진출 자격을 갖췄지만 프로팀은 실력 부족을 이유로, 대학팀은 합숙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그를 거절했다. 결국 60년의 여자야구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으로 진출, 도쿄 여자야구팀 ‘드림윙스’에서 투수 겸 3루수로 활약했던 그는 결국 자기 손으로 한국에 여자야구팀을 만들었다. “고등학교 때만 해도 졸업하면 한국에 여자야구팀이 생기겠거니 했어요. 근데 그게 안 되니까 내가 만들 수밖에요..” 이름만 감독이지 주중에는 어머니가 일하는 호텔 매점에서 일을 돕고 있는 안향미 감독. 그래도 “생각해 보면 그 긴 시간 중 여자 동료들과 즐기면서 야구를 하고 있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며 웃는다.



 아직도 선라이즈 팀원들이 유니폼을 입고 지하철에 타면 “체대 학생들이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도 몇 년 전에 비하면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 “연습장소를 구하지 못해 한강 둔치 럭비연습장에서 연습하다가 여러 번 쫓겨났어요. ‘시민들이 공에 맞아 다칠 염려가 있다’는 게 이유였는데, 우리가 남자였어도 똑같은 대접을 받았을까 생각하면 서럽고 뭐 그랬죠.”









그래도 눈물 나게 행복하다



 오후 3시쯤 연습이 시작됐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빠진 이들이 많아 합숙에 참가한 사람은 10명 남짓. 스트레칭부터 시작해 운동장 달리기, 팔 굽혀 펴기, 캐치볼, 노킹, 타격연습, 베이스 러닝 등이 줄줄이 이어진다. 팀원 중 유일하게 ‘아줌마’인 고부자(40) 선수의 딸 영지(11)가 베이스 러닝을 연습하는 엄마에게 “엄마, 좀 더 빨리 달려봐~”라고 소리를 지른다.



 선수들의 실력은 들쑥날쑥이다. 수년째 뛰고 있는 몇 명은 일본 팀에서도 “당장 와서 뛰라”고 할 정도로 실력이 짱짱하다. 반면 입단한 지 얼마 안 되는 몇몇은 아직도 공이 무서워 피해 다닌다. “자자, 여기 좀 봐. 1루 베이스를 밟으면서 3루 코치의 신호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가 뭐지?” 안향미 감독의 질문에 초보자들 묵묵부답. “당연하잖아. 공이 오른 쪽으로 갔을 땐 공을 등지게 되니까 달려야 하는지 아닌지 스스로 판단할 수가 없잖아.” 지친 선수들의 실수가 잦아지자 감독의 목소리도 함께 높아진다. “외야수가 볼 잡고 뭐해? 빨리 내야로 던져줘야지! 장난해 지금?”



 그래도 야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 실력이 느는 속도가 제법 빠르다. “남자 사회인야구팀하고 경기를 하면 이분들이 처음부터 딱 무시하는 경우가 많아요. 근데 남자들은 체력 위주의 경기를 하기 때문에 몸도 안 풀고 타선에 서다가 많이 다치고 그러죠. 반면 여자들은 기본기부터 충실히 닦기 때문에 아무래도 짜임새 있는 경기를 보여주는 게 장점이죠.” 안향미 감독과 함께 팀을 이끌고 있는 강효람 감독의 설명이다.



 날은 점점 뜨거워진다. 두 시간에 걸친 연습을 끝내고 잠시 쉬고 있는 그들에게 물었다. “힘들어 죽을 것 같지 않아요?”,“취미로 하기에 야구는 너무 힘든 운동 아니에요?”라고. 대부분 “왜 그런 걸 물으세요?”하는 표정으로 씨익 웃기만 한다. 막내 이소진(22) 선수가 살짝 힌트를 줬다. “이런 거 아세요? 외야에 있는데 공이 내 앞으로 쭈욱~ 날아올 때요. 죽도록 뛰어가서 글러브로 공을 탁 하고 받았을 때, 세상에서 정말, 제일로 행복해요.” 다시 노킹 연습 시작. 안향미 감독이 친 공이 쭉쭉 뻗어 외야로 날아간다. 공을 받을 때 가장 행복하다던 이소진 선수가 열심히 따라가 보지만 공은 글러브로 빨려들 듯하다 뒤로 쑥 빠져 굴러간다. “몇 번을 말해? 몸을 움직여야지. 백날 글러브만 갖다 대 봐. 공이 잡히나!” 안 감독의 불호령에 움찔하며 달려가는 선수들, 그 위로 눈부신 여름 햇살이 가득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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