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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TV드라마 PD-시청률에 울고웃는 방송의 꽃

중앙일보 1993.12.19 00:00 종합 9면 지면보기
올해 MBC는 신입사원 공채에서 지금까지의 관행을 깨고 기자직과 PD직을 구별하지 않고 지원서를 받았다.기자와 PD를 처음부터 나누어 뽑다보니 나중에「기자를 하고 싶어하는 PD」와 「PD를 하고 싶어하는 기자」가 적지 않게 생기더 라는 것이다. 그래서 MBC는 이번 입사 시험에서는 직종 구별없이 1차합격자를 뽑은 다음 회사 간부들과 합숙을 시켰다.간부들이 지원자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조직 적응력등 인성은 물론이고 취향까지 면밀히 파악해 직종배치에 참고한다는 것이 취지였 다.그러나곤혹스러운 일이 생겼다.기자와 PD직으로 지원한 합격자들의 희망업종을 취합해 보니 거의가 PD였던 것이다.

『불과 몇년전까지만해도 기자직이 훨씬 인기가 있었는데….』 MBC 간부들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한 간부는 도대체 올해 지원자들이 왜 이렇게 PD쪽으로 몰리는지 궁금해 그 이유를물어봤다고 한다.그러자 놀랍게도 이들의 대답은 『기자는 3D(Dirty,Difficult,Dangerous )직종이기 때문』이었다.필자가 이 얘기를 MBC의 한 드라마 PD에게 전해줬더니 그는 박장대소 했다.기자가 3D라면 PD는 4D나 5D쯤될거라면서〈기자의 3D에다 제작기간 중에는 늘 잠이 부족해 졸리고(Drowsy)연기자.스태프등 50여명의 사람들을 일일이 신경써야(Delicate)한다는 설명〉.

이 PD가 왜 박장대소했는지 드라마 PD의 입문과정과 생활을보자. PD들은 입사와 함께 드라마.쇼.교양.편성PD로 나누어배치돼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다른 파트로의 이동이 없다.8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드라마 PD의 인기는 절대적이었으나 요즘은교양쪽 지원자가 부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노동조건 만 놓고 보면 가정을 포기할수밖에 없을 정도로 불규칙한 드라마PD의 생활 리듬에 비해 교양쪽은 훨씬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PD는 경쟁이 치열해 들어가기도 어렵고 고생한 세월이아까워 다시 나오기도 어렵다고 해서「크렘린」으로 불린다(현재 드라마 PD는 KBS 58명,MBC 38명,SBS 25명).일단 드라마 제작국으로 배치받으면 짧게는 3~4년 ,길게는 7~8년의 AD(조연출)과정을 거쳐야 연출자로「입봉」(데뷔)할수 있다. 데뷔를 일찍 하려면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우선은 줄을 잘 서야 한다.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인력이 남아돌때 입사하면 그만큼 데뷔는 늦어진다.현재 AD생활을 하는 PD들은 아시안게임.올림픽때 생긴 인력 적체로 7~8년은 AD생활을 해 야 하는 불운한 세대다.반면 MBC-TV『억새바람』을 연출한 이관희PD는 20대 후반에『전원일기』로 데뷔를 한 행운아다.

AD들이 하는 일은 연출과는 무관한 잡무들이다.해외로케때 복잡한 출입국 수속에서부터 야외촬영때 여관 잡기,테이프 나르기,소품관리등 힘들고 빛 안나는 일이 그들의 몫이다.캐스팅.연출.

편집등 제작에는 AD가 차지할 공간이 없다.그래서 AD들은「조연출」은「보조 연출」이 아니라「연출자 보조」며 AD는 우리말「아니꼽고 더럽다」의 약어라고 푸념한다.

그러나 연출자들의 얘기는 또 다르다.AD시절이 육체적으로 힘들고 좌절감을 자주 느끼지만 작품의 승패에 대한 책임이 없기 때문에 속은 더 편했다는 것이다.특히 요즘처럼 전날 방송된 자신의 프로에 대한 시청률이 매일 아침 책상에 올라 올때는 머리카락이 빠질 지경이라고 한다.그래서 연출자들은「아니꼽고 더러운」 것이「피말라 뒈지는(PD)」것보다 낫다고 AD들을 다독거린다. AD과정을 거쳐 캐스팅권을 쥔 연출자가 되면 연기자들의 대우부터 달라진다.배우가 제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PD가 기용해 주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캐스팅권은 PD의 고유권한이므로 여기에 대해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다 .

「누가 누구에게 얼마를 줬다더라」「누구는 야한 방법을 썼다더라」는등 PD와 여배우를 둘러싼 루머가 끊이지 않는 것도 직업적인 관계가 늘 거래나 사적인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담고 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받는 의심도 만만치 않다.연출자로 활동하는한 드라마PD는 집보다 밖에서 잠을 많이 잔다.KBS-1TV『먼동』의 CP인 장기오PD는『밖에서는 잠을 못자는 체질이었는데 PD생활20여년 하다보니 집보다 여관에서 더 잠이 잘온 다』고 털어놓는다. 이렇게 얼굴을 볼 수 없는데다 늘 여배우들과 함께 일을하니 드라마PD의 부인들이 간혹 의부증증세를 보이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모 PD의 경우는 부인의 증세가 심해 한동안 촬영현장을 함께 따라 다녔다.다른 PD들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번쯤은 이와 유사한 체험을 한다.그러나 PD들 스스로가 이야기하는 여배우와의 관계는 한마디로「헛방」이다.MBC의 J모 PD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PD들도 배우와 마찬가지로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많습니다.사실 많은 시간을 여배우들과 함께 보내다보면 여자로서 끌리는 배우도 있습니다.그러나 생각으로 끝날때가 많습니다.녹화끝나고 둘이 술만 마셔도 연인 사이로 소문나는게 현실입 니다.10여년전만 해도 확인 안된 소문들이 꼬리를 물었지만 요즘은 아예그런 소문조차 없어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접촉빈도에 비해 PD와 배우들의 결혼은 그리 많지 않다.SBS는『사랑의 조건』을연출한 오세강PD와『모닥불에 바친다』에 출연했던 이종남,KBS는 이정훈PD와 중견탤런트 박혜숙,허성룡PD와 양미경,이상우PD와 김혜경,MBC는 최창욱 PD와 임예진이 PD-배우 부부다. PD와 여배우의 스캔들 루머가 줄어들고 있는 현상은 달라지는 PD와 배우들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SBS의 개국으로 드라마편수가 늘어난데다 기존 방송사들의 전속제가 무너지면서 배우들의 시장은 3배 가까이 늘어났다.PD들이 군림하던 시대는 끝나고 인기 배우들에게 출연해달라고 부탁을 해야 하는 것이 요즘의 현실이다.

배우들의 지위가 격상되면서 PD의 연출스타일에도 변화가 오고있다.드라마PD의 연출스타일은 크게「군림형」과「야들야들형」으로나눌 수 있다.군림형은 고참 PD들 다수가 여기에 속하며 대표적인 인물로는 MBC-TV『여명의 눈동자』의 김종학,『아들과 딸』의 장수봉,SBS-TV『한강뻐꾸기』의 운군일,그리고 KBS의 김충길씨 등이다.특히 김종학PD는 탱크같은 추진력을 보이는「파쇼(?)」로 정평 나 있고 장수봉.김충길PD는 입이 걸기로유명하다.또 운군일PD는 일사불 란한 분위기를 선호해 거드름 피우는 스타들보다 신인들을 많이 기용하기로 소문나 있다.

「야들야들형」은 여배우의 생리일까지 기억했다 편의를 봐주는등꼼꼼한 성격의 소유자들로 지금까지 소수파였으나 점점 더 인기를얻고 있는 추세.

MBC-TV『고개숙인 남자』의 황인뢰,『제3공화국』의 고석만,『억새바람』의 이관희,SBS-TV『모래위의 욕망』의 이종수,KBS-2TV『연인』의 김수동씨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이밖에 최근 방영된 MBC-TV『파일럿』을 연출한 이승렬PD는 큰소리치지 않고 일을 많이 시키는「독일병정형」,80년대『TV문학관』을 연출했던 KBS 장기오PD는 녹화에서 쉽게 나가는대신 연습과정에서 혹독한「사무형」으로 알려져 있 다.또 KBS-2TV『드라마 게임』을 연출해온 유일한 여자 드라마PD 박영주씨는 여성특유의 섬세함과「군림형」의 고집스런 면모를 함께 갖추고 있다.

SBS의 L모 PD는「군림형」과「야들야들형」은 나름대로 장단점이 있지만 배우들의 위세에 밀려 어쩔수 없이「야들야들형」으로가는 추세라고 말한다.

『요즘은 배우들이 작품도 보지만 연출자를 많이 가려요.고생 많이 시키는 연출자는 싫어하지요.작품을 만들다보면 하기 싫어하는 힘든 연기도 시켜야 되는데 그럴땐 적당히 윽박지를 필요도 있는데 말입니다.』 시대의 변화는 배우와의 관계에서 영향력을 줄여놓은 반면 PD라는 직종의 전망은 밝게 해놓았다.SBS개국,유선.위성방송의 시행으로 드라마시장이 넓어지면서 PD도 프리랜서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92년 MBC의 김한영PD가 처음으로 프리선언을 하고 SBS와 3년계약을 한데 이어 김종학PD 역시 올해 프리선언을 했다.특히 김종학PD는 SBS프러덕션과 편당 연출료 9백만원에 60편을 제작키로 하고 총 5억여원을 받을 것으로 전해져 젊은 PD들과 PD지망자들의 마 음을 들뜨게 했다.

조직에 크게 얽매이지 않는 자유,자기표현이 가능한 분야,만만치 않은 영향력,넉넉한 보수,인기배우들과 어울려 지내는 재미.

밖에서 보는 드라마PD는 신세대들이 좋아하는 직업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연출경력 20년의 장수봉PD는 드라마PD에 환상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이 충고한다.

『드라마PD는 예술가도 언론인도 아닌 장인입니다.장인은 자신의 일을 위해 개인적인 다양한 욕구를 포기하는데 인색해서는 안됩니다.드라마PD는 젊은이들이 좋은 직업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많은 점들을 갖고 있지만 그 기준에 맞춰보면 나쁜 직업의 조건이 더 많지요.현실적으로 드라마PD에 맞는 적성이라는건 이 나쁜 조건들을 감당할 수 있느냐를 가리킬 때가 많습니다.』 〈南再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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