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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해 가슴앓이 농촌을 가다-고추없는 고추밭 보며 시름

중앙일보 1993.10.08 00:00 종합 20면 지면보기
벼는 물론 고추.콩등 밭작물이 예상보다 냉해를 크게 입어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고추와 참깨값은 흉작으로 이미 75~20%정도 올라 김장철「고추파동」까지 우려되고 있다.쌀수확량 감소는 당장 추곡수매는 물론 쌀시장개방에도 영 향을 미칠 전망이다.전국 현지르포를 통해 농가의 피해상황을 점검해본다.

[지방종합] ○…경북영일군등 곡창지대는 들판 곳곳에 말라죽은빛바랜 벼와 뽑지않은「피」까지 깔려 황량함을 더해주고 있다.

지난여름 이상저온으로 전국이 냉해를 입었지만 경주군과 영일군은 더욱 심각하다.8월 농경지 곳곳을 침수시킨 태풍 「로빈」이지나간데다 바닷바람으로 인한 기온저하로 피해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경부고속도로 경주톨게이트에서 시내로 진입하다 오른쪽에 펼쳐진경주시탑정동 일대 들녘은 추수때가 됐지만 한여름에나 볼 수 있는 새파란 벼포기들이 냉해라는「天災」의 무서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고개숙인 누런 벼이삭 대신 갓팬 푸른 벼이삭이 꼿꼿이 서있고,손질을 포기한 논에는 피와 잡초가 뒤덮여 검푸른 들판으로 변해 버렸다.

이곳에 논 7백평을 가진 朴英瓘씨(67.경주시황남동)는『예년에 25가마나 나던 벼가 올해는 10여가마에 불과할 것』이라며『말이 흉작이지 평생 이런 대흉작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곡창지대인 경북경주군안강읍 안강들과 경주들등 경주군에서만 1만2천4백50정보 가운데 80%인 9천9백60정보가 냉해를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따라 예상수확량도 당초목표량의 50%정도인 19만섬에 지나지 않을 것으로 보여 농민을 애태우고 있다.

인근 영일군의 최대 쌀생산지인 흥해읍중성동 일대 흥해들은 상황이 훨씬더 심각했다.전체 2천2백정보 가운데 4백정보가 침수됐다. 마을주민 李一雄씨(54)는『영농자금.인건비.농약대등 갚아야할 돈도 문제지만 추수가 더 걱정』이라며『불을 지를 수도,그렇다고 내년농사를 생각하면 내버려둘 수도 없어 난감하다』며 아예 추수하지 않을 뜻을 내비쳤다.

영일군 林鍾雄산업과장은『전체 경작면적의 89%인 8천8백42정보가 냉해를 입어 올해 벼수확량의 절반인 16만섬의 감수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慶州=洪權三기자] ○…『수확도 제대로 못한채 벌겋게 말라죽어가는 고추밭을 바라보면 가슴이 타들어 가는 기분입니다.』 영남최대의 고추주산지인 경남창녕군일대 고추재배농가들은 지난해 같았으면 들녘이 온통 빨갛게 익은 끝물고추를 따느라 일손이 바쁠때인데도 올해는 고추없는 고추밭만 바라보며 한숨만 내쉬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면 창녕읍내 고추시장에는 전국에서 몰려든 고추상인들과 김장을 담그려는 주부소비자등 2천여명이 붐볐으나 올해는 5백여명이 채 안될 정도로 썰렁한 분위기다.

이처럼 올해 고추농사가 흉작이 되자 일찌감치 고추밭을 갈아엎고 다른 농작물을 심거나 고추밭을 방치해놓고 있는 농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경남창녕군의 경우 대합.이방.대지.장마.성산면등 고추주산지에서 6천6백여가구가 7백70정보를 재배해 1천3백55t을 생산,1백10억원대의 수입을 올릴 계획이었으나 올해는 20~30%가 감소한 1천t정도를 예상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때문에 고추가격도 6백g 기준으로 지난해에는 4천~4천5백원선이었으나 올해는 5천~5천5백원선으로 1천여원이 오른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10여년째 2천여평의 고추농사를 지어온 창녕군이방면알리 河在湜씨(52)는『지난해에는 지금쯤 고추따기에 바빴는데 올해는 한달전부터 수확을 못하고 있으며 수확량이 지난해의 절반도 안되는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河씨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편이다.같은마을 許正翰씨(53)는 7백여평의 고추밭을 지난 8월에 이미 갈아엎고 마늘을 심었다.

許씨는 고추밭이 말라죽자 밭을 놀릴수가 없어 일찌감치 다른작물로 대체해버린 경우다.

경남도농촌진흥원에 따르면 고추생육기인 올해6월부터 9월까지의월평균기온이 섭씨 21.7도로 평년의 23.2도에 비해 1.5도가 낮았으며 월평균일조량도 올해는 1백12.1시간으로 평년의1백52시간에 비해 40시간이 적었다.이러한 기상조건때문에 지난해보다 탄저병.역병.담배나방등 고추병해충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창녕군에서는 올해 고추수확 감소량을 15~20%로 보고있으나재배농민들은 30~40%까지 수확이 감소할것으로 보고 있어 김장철이 닥치면서 파동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昌寧=金相軫기자] ***참깨값 2배올라 ○…전남지역의 참깨.콩재배 농민들은 흉작으로 울상을 짓고 있다.

5,6월상순께 파종,9월 초순에 수확하는 참깨의 경우 개화기때 잦은 장마로 인해 수확량이 대폭 떨어진데다 저온현상으로 참깨가 여물지 않고 빈 껍데기가 많이 나왔다.

전남무안군망운면목동리 2천여평의 밭에 참깨 농사를 지어 무안군 일대에서 참깨를 제일 많이 경작한 尹祥延씨(29)의 경우『수확량이 4말(60여㎏가량)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며 한숨지었다. 재배 면적으로 보아 지난해 같으면 32말정도 수확을 기대할수 있었다.

무안군현경면평산리 주민들도 집에서 쓰려고 가구당 4백~6백평정도에 참깨를 심었으나 수확량이 예년의 절반 정도에도 미치지 못해 도시에 나가 있는 친척들에게 참깨를 보내주지 못했다.

무안군현경면평산리 鄭文炫씨(64)는『4백평의 밭에 참깨를 심어 처음에는 종자가 잘 돋아 4말정도 수확을 예상했으나 한말 정도밖에 수확하지 못했다』며 자식들 집에도 참깨를 보내주지 못할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마을 鄭孝炫씨(46)도 올해 계속된 장마로 저지대에 심은 참깨는 아예 여물지 않았으며 산비탈등 고지대에는 역병이 돌아 근년에 보기 드문 흉작이라고 털어놓았다.

참깨값은 지난해 한되에 1만7천원정도였으나 올해는 흉작으로 2만5천원에서 3만원까지 올랐다.

한편 무안군 농촌지도소에 따르면 무안군지역에는 올해 모두 1천5백정보에 참깨를 경작, 3백평당 예년 75㎏정도 수확량의 절반정도인 35~40㎏을 수확한 것으로 추정했다.

[務安=千昌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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