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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사람>15.79년 가톨릭농민회사건 오원춘 씨

중앙일보 1993.08.25 00:00 종합 17면 지면보기
『郡에서 배부한 감자 씨앗이 싹을 틔우지 못하고 밭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더군요.당국에 피해보상을 요구했고 일부는 보상받았습니다.그러자 피해보상운동이 점차 인근지역으로 확산되었지요.』 79년8월 YH사건과 더불어 10.26의 길목에서 유신정권의 종말을 예고했던 안동가톨릭농민회「오원춘 납치사건」의 주인공 吳元春씨(47.慶北英陽郡靑杞面靑杞1洞).

그는 14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이땅에서 다시는 자신과 같은 인권유린사태가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가톨릭 신자로 靑杞에서 대대로 농사짓던 吳씨는 78년 안동교구 농민연합회 이사로 있으면서 靑杞농민분회를 조직,회장으로 피선된다.그해 10월 郡에서 권장한 가을감자(시마바라)를 심었던그는 이듬해 봄에 싹이 자라지 않는 바람에 큰 피해를 보게 되었다.그러자 그는 피해보상대책위원회를 결성,피해보상운동을 벌였다.이에 자극받은 다른 지역에서도 피해보상요구집회가 잇따라 열렸고 그는 다른 지역의 농민집회에도 참석,피해보상운동을 주도하였다.그러던중 79년 5월5~21일 바쁜 농사철임에도 불구,吳씨가 행방불명이 되는 사건이 발생했다.吳씨에 따르면 정보부원 2명에게 납치되어 포항을 거쳐 울릉도로 끌려가 모진 고문과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그만두라는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그는 또 이같은 사실을 英陽성당 사제에게 고백하였다.이에 안동교구 신부들은 곧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짓밟히는 농민운동」이라는 제목의 유인물을 작성,전국 신도들에게 알리고 당국에 공식 항의하였다.

경찰당국은 7월27일 안동교구청에 난입,은신중이던 吳씨와 노동사목 鄭鎬庚신부,안동농민연합회 총무 鄭載墩씨를 강제 연행했다.당국은 吳씨가 개인문제로 여행을 했음에도 기관원에게 납치됐다고 허위사실을 날조.유포했다며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로 이들3명을 구속했다.

이에 교회는 8월6일 안동성당에서 金壽煥추기경과 전국 1백20여 신부가 참석한 가운데 기도회를 열었고 이를 시발로 인천.

수원.광주.전주.마산등 전국으로 항의집회가 확산되었다.

9월4일 첫 공판에서 그는 납치되었다고 한 양심선언을 번복,검찰의 공소사실을 시인하였고 10월15일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그러나 그는 당시 법정에서의 양심선언 번복에 대해『아버지처럼 따르던 프랑스신부 드봉주교가 면회를 와서 목숨 만이라도 건지려면 시인해주라는 간곡한 말에 공소사실을 시인했다』고 한다.

아무튼 그는 항소를 포기하고 형이 확정된지 11일만인 10월26일 朴대통령암살사건이 터지자 그해 12월8일 형집행정지로 다른 2명과 함께 석방된다.

『지금도 오른쪽 귀는 거의 들리지 않습니다.해마다 당시 고문의 후유증으로 며칠동안 심하게 앓아눕기도 하지요.물질적.정신적피해보상과 명예회복이 이뤄져야 합니다.』 그는 현재 英暘농민회명예회장으로 여전히 농사를 짓는다.올해는 당시 감자를 심었던 밭에 고추를 심었지만 흉작이라며 걱정했다.

[英陽=李順男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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