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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두허 주도 정호용씨등 핵심 참석. “친인척 설치면 안된다”한목소리|노태우내무,「청와대 독대진언」 합의 깨고 서면으로만 건의

중앙일보 1993.03.26 00:00 종합 25면 지면보기
장령자어음사기사건은 5공 권력의 심장부에 충격파를 던졌다. 그리고 전두환대통령의 권력 운영방식과 관리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권력주변 인물들의 개성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82년5월22일 저녁 청와대옆궁정동 안가. 문민정권 출범과 함께 최근 철거된 바로 그 건물에는 극비의 한 모임이 열리고 있었다.

정부쪽에서 유학성안기부장(현국회국방위원장)· 노태우내무장관(전대통령), 군쪽에서 황영시육군참모총장(전감사원장)· 거규헌2군사령관(전교통부장관)· 정호용3군사렁관(현민자당의원)· 백운택군단장(작고)· 박준병보안사령관(현민자당의원)· 안무혁국세청장(현민자당의원)· 정도영보안사참모장(현자유층연맹사무총장)등이 참석했다. 호스트는 청와대 허화평정무1(현민자당의원)· 허삼수사정(현민자당의원)수석 이었다.

참석자들은 거의 12·12당시 경복궁 30경비단에 모인 신군부실세들이었다. 이들은 그후 5·17을 거쳐 국보위를 만들면서 명실상부한 개국공신들로 참여 했으며 안기부· 보안사· 군지휘부· 청와대· 국세청을 장악, 사실상 한국을 움직이는 핵심이었다.

테이블 상석에 유학성· 황영시· 거규헌 3인이 자리잡았다. 12·12이후 전대통령의 정규 육사11기 들로부터 선배대접을 받아온 3인은 이때까지만해도 후배들의 예우를 받았다.

<긴장속 궁정동 안가>

이날 모임은 전대통령의 통치를 뒷받침하는「권부의 이너서클」모임이지만 당시 주요 국정은 대체로 여기서 결정돼 국가 최고위대책회의라고 할수 있다.

그런데 전대통령은 이 모임을 알지 못했다. 5공 창업주에게는 비밀로 한 창업동지들의 비밀회동 이었다. 모임시작과 함께 분위기는 곧 예사롭지 않은 긴장감속으로 빠져들었다.

「5공권부의 주주」들은 차례로 걱정과 곤혹스러움을 토로했다. 장여인사건으로 신정부가 내세운 사회정화· 개혁이란 슬로건이 땅에 떨어졌다며『이래선 안된다』고 저마다 시탄과 비장한 결의를 토로했다.

『정의사회구현· 깨끗한 정부실현이란 구호는 온통 먹칠을 당하고 있다』

『우리가 목숨 걸고 출범시킨 정권이 엉뚱한 사건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철저한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친·인척문제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대통령 친· 인척들은 누구도 공사활동을 해선 안된다. 사회봉사의 뜻은 존중할만하나 친· 인척들이 사기꾼에게 이용 당할수 있다.』 『전대통령이 이 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다. 그렇지만 고위층의 비호를 받는 것처럼 위장하는 제2, 제3의 사기극을 막기 위해선 통치권자의 용단이 필요하다.』

모두들 전대통령의 처삼촌인 이규광 광업진흥공사사장의 구속에 대한 여론반응, 중정차장츨신 이철희의 행태, 장령자가 청와대주변을 이권획득에 악용한 수법에 혀를 찼다.

회의도중 누군가가『장세동청와대경호실장은 왜 참석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전대통령주변을 건드리는 강도가 높아지면서 전대통령 모르게 모인 것에 마음이 쓰여 하는 소리 같았다는 것이 참석한 Q씨의 설명. 장실장에게도 참석을 통보했지만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날 이너서클의 극비회동은 량허수석의 주도로 이루어졌다. 전대통령 모르게 은밀히 회동한것은 상당한 모험이었다. 5공정권의 핵심통치 프로그램을 짰던 허화평수석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진뢰와 정권의 새출발을 함께 던진 모험을 감행한 것이다, 그는 최소한 이 자리에서 내린 결론을 전대통령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을 한듯했다. 허수석으로서는 최후의 건의이자회심의 카드이기도 했다.

<재발방지책등 논의>

12·12사태때 경복궁 모임으로 정승화육참총장의 연행을 재가방기위한 집단행동을 했던 것과 같은 맥락에서 전대통령을 압박하려 했던 것이다.

연락책은 허삼수수석이었다.『한번 모여야한다, 얘기해 보자』는 취지만 설명하고 쉽게 동의를 얻었다.

Q씨의 회고 .

『당시는 권력의 속성을 실감하지 못했다고 할까요. 그냥 순수한 열정을 갖고 장여인사건의 소용돌이를 멈출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의논한 자리 였습니다. 무슨 음모를 꾸민다는 기분은 전혀 없었지요. 나중에 전대통령이 충격을 받으면 어떻게 할까해서 뜨끔하기도 했지요』

이자리에서 집약된 의견은 전대통령의 친· 인척들은 공사활동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같은 결론은 전대통령이 오랜 처가살이를 했기 때문에 이규동· 이규광씨에게 얼마나 약하고두 이씨가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할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청와대비서관출신 A씨)

그 다음으로 공직인사의 문제점이 지적됐다. 한달전 의령경찰관 총기사건으로 도의적으로 인책될 것이라는 모지사가 부산시장으로 영전된 것은 책임행정차원에서 문제가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이들은 과정이야 어떻든 이학봉민정수석이 다시 일을 할수있게끔 해주고 그가 전대통렁을 보필하도록 하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대통령 근친관리에 책임을진 이학봉수석에게 문제가 있는것은 사실이나 대통령의 장인·동생문제는 전대통령이 직접 마음을 고쳐먹지 않는한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2시간여 토론끝에 결론은 내려졌다. 그러나 다음 순서가 문제였다. 이날의 모임과 결론을 누가 전대통령에게 진언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전대통령의 성격을 알면서 집단으로 청와대에 올라가는 것은 위험부담이 있고, 그것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이상한 소문을 낳을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서로 눈치를 보다가 선임자인 유학성안기부장에게 시선을 모았다. 이윽고 『유선배님이 수고좀 해주셔야겠다』는 말이 나왔다. 웬만하면 해줄것으로 믿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유부장은 놀라운 말을 했다.『나는 조만간 안기부장자리에서 물러나게 돼있다. 그 일로 이미 전대통령과 식사를 하고 얘기를 다 끝냈다. 이런 형편에 내가 어떻게 올라가겠는가』

<뒤늦게 온 장세동씨>

유부장은 참석자 대부분에게 자신의 사표제출을 비밀에 부쳐놓고 있었다. 그의 얘기를 처음들은 참석자들은 사태전개의 심각성을 새롭게 느끼는 듯했다. 분위기는 더욱 긴박해졌다.

유부장은 그 전주 금요일 청와대 정기 독대때 친· 인척들의 공사직 2선후퇴를 건의하고선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며 사표를 냈었다.

유부장의 다음 선임자는 황영시총장· 거규헌사령관 이었으나 아무래도 현역군인이 그런 문제를 건의한다는 것이 어울리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 자연스럽게 노태우장관이 총대를 메게됐다. 노내무는 한달전 의령경찰관 총기난동사건으로 자리에서 물러난 서정화장관(현민자당의원)후임으로 자리를 맡은지 얼마 안된때였다. 그가 내무장관을 맡자 항간엔「전대통령 이훈 의 후계자문제와 연관시키는 얘기가 벌써 나돌기 시작했다. 참석자들은 다음날이 일요일이라 청와대에서 전대통렁과 대좌시간이 쉽게 마련될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나누면서 모임을 대충 끝냈다. 그순간 장세동경호실장이 놀란 표정으로 들어왔다. 장실장은 허수석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지만 자신의 직책상 모임자체를 탐탁하지 않게 생각하는 눈치였다.

26면에 꼐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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