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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비즈] "지금 한국 경제는 기름 떨어진 비행기"

중앙일보 2007.05.29 18:58 경제 1면 지면보기
김준성(사진) 이수그룹 명예회장은 29일 "한국은 기름이 떨어져 가는 비행기 신세며, 공중급유를 받아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김 명예회장은 성장이 정체되고 활력을 잃은 한국 경제의 위기를 이같이 설명했다.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

다음달 1일 미수(88세)를 맞는 김 회장은 기업인.은행가.관료로 반세기 이상 경제 현장을 지휘한 경험을 바탕으로 산업 공동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소비자 물가, 수출 위주의 산업 등 한국 경제의 문제점 등을 짚었다. 그는 대안으로 관광.의료.교육 등 서비스 산업 육성과 내수 시장 확대를 제안했다.



김 명예회장은 "한국은 호텔, 식음료 등 물가가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며 "이를 개선해야 관광객을 유치할 수 있고 그래야 서비스 적자가 줄어든다"고 주장했다. 김 회장은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위기의식을 갖고 경제 전반을 세밀히 분석해야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을 수 있다"며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글=박현영 기자<hypark@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김준성 명예회장은 경제 부총리에 소설가까지 '팔방미인'기업인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은 은행가.공직자.기업인.소설가로 화려한 경력을 쌓아왔다.



1938년 대구고보(현 경북고)를 나와 서울대 상과대를 졸업했다. 최근 별세한 신현확 전 국무총리는 그의 고교 동기동창으로 막역했다. 김 명예회장은 해방 직후 양말기계 두 대를 들여와 사업을 시작했다. 2004년 출간한 그의 자서전 제목이 '두 대의 양말 기계가 놓인 풍경'이다. 양말공장 사장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곧바로 은행가로 이름을 떨쳤다.



67년 설립된 대구은행의 행장을 시작으로 제일.외환 은행장을 거쳐 한국산업은행 총재와 한국은행 총재를 역임했다. 82년 11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을 지냈다.



기업 최고경영자로도 활약했다. 87년 삼성전자 회장, 88년 ㈜대우 회장을 지냈으며, 95~99년 이수그룹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전국경제인연합회 고문 겸 원로자문단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는 사돈지간이다. 김 회장의 딸 선정씨가 며느리다. 삼남인 김상범 이수그룹 회장이 2000년부터 이수그룹을 이끈다. 이수그룹은 96년 김 명예회장이 이수화학을 모체로 해서 그룹으로 출범시켰다. 이수그룹은 이후 화학.건설.정보기술(IT) 부품 등 분야를 중심으로 중견그룹으로 성장했다.



미수 맞는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
"산업 공동화 걱정하기보다
외국 기업 유치 노력해야"




만난 사람=김동섭 산업데스크



미수(米壽)를 사흘 앞둔 29일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이 본지와 인터뷰했다. 그는 ‘공중 급유론’등 다양한 비유를 들며 한국 경제가 처한 위기를 설명했다. [사진=조문규 기자]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이 다음달 1일 미수(米壽.88세)를 맞는다. 김 명예회장은 29일 서울 반포동 이수그룹 본사 집무실에서 가진 본지와 인터뷰에서 재계 원로로서 한국 경제 현안을 진단하고 위기 탈출을 위한 고언을 했다. 한국은행 총재,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삼성전자와 ㈜대우 회장 등을 거치면서 반세기 이상 경제 현장에서 쌓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샌드위치 신세인 한국 경제, 지나치게 높은 물가 등 냉철하게 분석했다. 그는 다양한 비유를 들고 정확한 수치를 제시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한국 경제가 위기인가요.



"우리 경제는 기름 떨어져 가는 비행기입니다. 공중급유를 받거나 불시착해 기름을 넣어야 할 상황입니다. 하늘을 나는 비행기에 기름을 넣어야 하니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공중 급유를 받지 못하면 곧바로 비행기는 추락합니다. 지금 이대로는 선진국 문턱까지 갔다가 좌절한 브라질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고 봅니다."



-성장 정체를 겪고 있는 한국 경제가 활력을 되찾을 방안은 무엇일까요.



"국내 기업이 해외로 나가는 산업 공동화는 피할 수 없는 현상입니다. 중국.인도와 같이 임금이 싼 곳으로 공장이 몰리는 현상은 미국.일본.유럽 기업들도 겪었던 일이에요. 외국에 공장을 지어 투자하는 것은 일자리는 빼앗기지만 자본은 축적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대신 우리도 적극적으로 외국에 있는 공장을 유치해야지요. 중국으로 간 일본 중소기업 300개가 지난해 되돌아온 것이 한 예입니다. 임금은 높지만 숙련도 높은 기술인력과 연구개발이 가능한 장점 때문이지요."



-한국 산업 구조가 세계와 경쟁에서 취약한 부분이 있나요.



"한국은 수출 30%, 내수 70%인 수출 위주의 국가입니다. 최근 유가 상승과 엔화 약세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미국과 일본은 수출 비중이 10%에 불과해 내수로 경제를 이끌어 갑니다. 1.2.3차 산업 모두 경쟁력을 갖춰야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경쟁하는 시대에는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노력과 투자가 필요합니다. 3차 산업을 일구는 것보다 몇십 배 더 어렵거든요. 그래서 저는 서비스 산업을 키우는 것이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비스 산업에서 흑자를 보면 단기간에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어떤 서비스 산업을 키울 수 있을까요.



"우리는 짧은 연휴만 있어도 항공권이 동나고 공항이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해외로 나가는데, 외국인 관광객은 좀처럼 한국을 찾지 않아요. 숙박과 음식, 골프비용 등 관광 물가가 너무 비싸기 때문이에요. 관광객에 대한 세금을 감면하고 호텔비를 싸게 하는 등 정책적으로 관광 물가를 낮춰야 합니다. 또 의료와 교육시장을 개방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시설 좋은 외국인 전용병원을 지어 의료 관광객을 유치한 태국이 좋은 예입니다. 명문 대학들이 한국에 분교를 세우면 외국으로 간 조기 유학생들이 되돌아 올 것입니다. 서비스 아웃소싱을 하는 인도도 좋은 예입니다."



-올 1분기에 경상수지 적자가 났는데, 향후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2005년 경상수지가 150억 달러 흑자에서 지난해에는 61억 달러로 흑자 규모가 줄었습니다. 그나마 서비스수지는 188억 달러 적자였어요. 올 1분기에는 경상수지가 15억 달러 적자에, 서비스 수지는 62억 달러 적자를 봤어요. 여행수지 적자만 36억 달러더군요. 올 1분기까지 이렇게 이어진 것은 더 살아날 수 없는 궁지에 빠져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한국 제조업이 일본과 중국에 낀 샌드위치 신세라는 지적이 있는데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반도체를 예로 들죠. 반도체가격이 3개월 전에 비해 반값으로 떨어졌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모든 반도체 사업이 위기 상황입니다. 세계 기업들이 비슷한 생산시설과 기술 수준으로 경쟁하기 때문입니다. 공급 과잉 상태에서 철광석 같은 천연자원은 덜 생산하면 되지만, 대규모 시설 투자를 한 산업은 생산을 줄일 수 없습니다. 미국과 일본은 첨단 기술 경쟁을 하고 있고, 중국과 대만은 반도체 생산 수준이 확 올라왔습니다. 한국 반도체는 기술 경쟁과 가격 경쟁 사이에 낀 또 다른 의미의 '샌드위치' 신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 전경련 회장 선출을 둘러싸고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전경련이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게 옳을까요.



"세상이 변한만큼 전경련도 변해야 합니다. 과거 전경련은 경제 성장의 구심체 역할을 했지만, 정부와 밀착한 부분도 있습니다. 그것이 국민의 반기업 정서를 불러왔고요. 전경련은 분명 존재 의미가 있습니다. 경제에 관한 전문가 집단으로서 정책을 뒷받침하거나, 규제 개혁을 요구하는 등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일본 게이단렌은 정부와 매우 밀접해, 국민이 정치는 정부가 하고 경제는 경제단체가 한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다음 대통령은 어떤 경제관을 가진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누가 되든 경제에 대한 선입관을 갖지 말고 나라 경제를 세밀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경제의 어려움과 장단점을 파악하면 치료법이 나오지 않겠어요. 관료에만 국한하지 말고 학계.재계 등 폭넓은 전문가들을 참여시켜야 해요. 성장이냐 분배냐는 등의 논쟁만 하다가는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집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무한경쟁시대라는 사실을 차기 대통령이 잘 인식했으면 합니다."



-김우중 전 대우회장을 최근에 뵌 적 있나요.



"사돈에 관한 일이라 개인적인 일은 말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대우가 손을 뗀 자동차.조선.건설이 모두 흑자를 냈다는 것은 탄탄한 기술력과 우수한 인력이 뒷받침돼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공장 운영을 제대로 못했다면 살아날 수 없었을 겁니다. 김 회장께서 언젠가 자유의 몸이 되면 그의 '세계 경영'을 다시 평가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배 기업인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은.



"기업인은 끊임없이 위기의식과 문제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기업 경영은 자전거로 하는 등반대회와 같아요. 페달을 젓지 않으면 떨어집니다. 목표는 정상입니다. 시대적 흐름이 바뀌었음을 인지하고 투명화를 위해 노력하며 재벌체제에 대한 국민적 정서를 감안해 기업 소유보다는 지분 구조가 건실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해요."





정리=박현영 기자



김준성 회장과 문학
55년 소설로 등단 … 6권짜리 문학전집




김준성 이수그룹 명예회장은 한국 경제의 가장 역동적인 시기인 개발연대에 금융인과 고위 관료를 지내면서 틈틈이 소설가로도 활동했다. 32세 때인 1952년 문예지 '협동'의 전국 문예작품 현상공모에서 처녀작 단편소설 '닭'을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3년 뒤인 55년 김동리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에 단편소설 '인간 상실'을 발표해 정식 등단했다. 그 후 30년 간은 '비상''햇빛 속으로' 두 편의 단편 소설을 창작하는데 그쳤다. 대구은행 설립에서부터 한국은행 총재, 경제기획원 부총리를 역임하는 등 한국 경제와 함께 숨가쁘게 내달리던 시기였다.



63세 때인 83년 부총리 직에서 물러나 '들리는 빛' 등 소설 네 편을 발표했다. 이를 시작으로 25년 동안 '먼 시간 속의 실종' 등 세 편의 장편소설과 30여 편의 중.단편을 쓰는 등 정력적인 작품 활동을 해 왔다. 총 9권의 소설책을 냈다.



다음달 1일에는 그의 작품 세계를 모은 '김준성 문학전집(사진)' 출판 기념회 및 미수(米壽)연을 한다. 자비 출판으로 낸 전집은 총 6권이다. 그간 발표한 '먼 시간 속의 실종' 등의 장편과 중.단편 등 36편을 실었다. 전집 서문은 소설가 이청준씨가 썼다. 이씨는 "돈과 그 속성, 그를 둘러싼 인간성의 타락과 사회 병리를 다뤄 노숙한 경제 전문가로서 현실 세계의 성찰과 사유를 보여줬다"고 평했다.



김 명예회장은 97년 계간 문예지 '21세기 문학'을 창간했다. 이수그룹 회장이던 98년 '이수문학상'을 제정해 매년 소설과 시 부문에서 수상작을 발표해 왔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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