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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사랑, 이탈리아의 옹골찬 자부심

중앙선데이 2007.04.28 11:50 3호 31면 지면보기
 
온종일 책상 위의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지낸다. 아른거리는 눈과 어깨의 통증을 느낄 때면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커피를 내려 마시는 일, 내겐 휴식의 시간이다. 칠 년 이상 계속된 놀이이기도 하다.
본의 아니게 커피 애호가가 된 이유를 동정해도 좋다. 이유야 어떻든 나의 휴식과 놀이는 즐거워야 한다. 기꺼이 커피를 갈고 물 끓여 내리는 일련의 과정을 귀찮아 할 수 없다. 인스턴트 커피에서 드립 방식으로, 이어 에스프레소까지 이어진 커피 맛의 탐구는 이래서 정당하다.

윤광준의 생활 명품 이야기- 빈티지 에스프레소 커피머신 ‘리알리따’

관심의 표현은 관련 도구를 사들이는 것으로 이어진다. 온갖 커피용품을 사들인 끝은 이탈리아제 ‘가찌아’ 에스프레소 머신이다.
커피 한 잔 제대로 마시기 위한 통과의례치곤 꽤 많은 투자를 한 셈이다.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 때문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면 비용은 당연히 부담해야 한다.
편리의 극치인 전자동 ‘가찌아’가 슬슬 지겨워질 때쯤 빈티지 에스프레소 머신인 ‘리알리따’를 만났다. 커피에 관한 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이탈리아인의 자부심으로 만들어진 물건이다. 온갖 커피 도구의 본산이자 명품이 그득한 이탈리아, ‘리알리따’ 역시 이탈리아인의 커피 사랑 흔적의 우뚝한 소산일 것이다.
아래와 위가 분리되는 투박한 알루미늄 재질의 십면체 몸체, 관능적 모양의 주둥이, 검정 ABS수지로 만든 손잡이. 각 요소의 조화는 도구의 기능을 넘에선 멋스러움이 있다. 번쩍거리는 신형을 마다하고 이를 택한 이유는 커피로 연상되는 아우라가 도구로 인해 증폭된다는 점이다.
‘리알리따’의 형상과 기능은 인간의 경험과 무위의 시도가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물건의 이면에 깃든 인간의 흔적을 발견해 내는 일은 사용자의 몫이다. ‘리알리따’를 써 보면 수없이 물을 끓이고 압력을 조절하며 커피를 시음해 보았을 늙수그레한 장인의 모습이 연상된다. 단순해 보이는 형태와 기능의 완성을 위해 들여야 했을 실패의 시간들….
수동 커피머신의 매력은 제작자와 사용자의 교감에 있다. 혹시 감추어져 있을지 모르는 비법을 찾아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을 때의 내밀한 즐거움. 커피 맛으로 확인되는 피드백일 것이다. 버너에 불을 붙여 물의 양을 조절하고 적당한 굵기로 갈아 커피를 만드는 동안의 행복한 내통은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편리함을 애써 외면하고 불편을 자초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커피를 마시는 일은 이제 의식인 탓이다. 커피 자체의 효능이 아닌 이로부터 비롯되는 상상의 전개와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나로부터 비롯되는 세상의 중심에 자신만의 규칙을 만드는 일은 행복이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고, 불편의 체험으로 얻어지는 인간 본성의 확인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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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광준씨는 사진가이자 오디오평론가로 활동하면서 체험과 취향에 관한 지식을 새로운 스타일의 예술 에세이로 바꿔 이름난 명품 마니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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