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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 전 유치장서 만난 만학이와 동영이

중앙선데이 2007.04.26 12:16 1호 10면 지면보기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왼쪽)이 1974년 군 입대를 앞두고 권만학 경희대 교수와 함께 찍은 사진. 
“만학아, 너 방학했지? 나 좀 도와줘야겠다.” 지난해 말 권만학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에게 걸려온 전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다.

인생 고비마다 권만학 교수 조언 구해… 황지우씨 등 서울대 72학번이 큰 힘

권 교수는 “동영이가 도와달라면 나는 거절할 자유가 없다”며 웃는다. 그는 정 전 의장의 정책 자문에 응해주는 통일ㆍ안보 전문가다. 정 전 의장의 싱크탱크인 ‘21세기 나라비전연구소’ 소장이다. 동시에 정 전 의장이 인생의 중대 기로에 설 때마다 고민을 상담해 온 오랜 친구다. 정 전 의장은 “고려대 최상용 교수와 더불어 내가 늘 조언을 구하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서울대 72학번 동창이다. 정 전 의장은 국사학과, 권 교수는 외교학과를 나왔다. ‘10월 유신’이 시작된 지 일 년 뒤인 1973년 10월의 서울대 시위 현장에서 붙들려 둘다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갇히면서 처음 만났다. 정 전 의장은 99년에 쓴 자전적 에세이집 『개나리 아저씨』에서 이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그날 그곳에서 평생의 지기가 된 귀한 친구를 만났다. 서울대 학보에 문리대생의 특질에 관한 반박문을 써서 유명해진 권만학이 바로 그다.(…) 그는 안경을 쓴 반듯한 얼굴에 유창하고 정확한 논리를 구사하는 이미지가 키신저와 비슷하다고 해서 권신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유치장에 갇히고 나란히 징집을 당하며 숨 막히는 70년대를 보냈다. 권 교수는 “당시 나를 만나곤 했던 서울대 담당 중앙정보부 요원이 지금은 국정원장(김만복)이 됐다”고 말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두 사람이 택한 첫 직장은 언론사였다. 권 교수는 통신사 기자 생활을 하다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 권 교수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 이번엔 정 전 의장이 로스앤젤레스 특파원으로 떠났다. 당시 권 교수는 정 전 의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동영, 네가 떠난 지 벌써 1년을 넘기는구나. …하루빨리 다시 모여 우리의 일을 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정진하라! 1990. 6. 23 서울에서 만학’
96년 정 전 의장이 정계에 발을 들이면서 이들은 다시 ‘일’을 도모하는 사이가 됐다.

권 교수는 “내가 그를 거절 못 하는 이유는 친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며 “정 전 의장만큼 바르고 똑똑한 사람이 드물다”고 강조했다. 그가 설명하는 정 전 의장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


방송기자 정점에서 말을 갈아탔다 호남 출신인 동영이는 (인사에서) 물을 많이 먹었다. 평일 9시 뉴스 메인 앵커를 결국 못했다. 정계에 들어올 때 많은 갈등과 고민을 했다.

고생 모르고 자랐다 대학 시절 그의 집에 갔다가 놀랐다. 천막으로 지은 초라한 판잣집이었다. 어머니가 재봉틀로 옷을 만들면 동영이는 시장에 넘겨주며 학교를 다녔다.

말만 잘한다 가장 황당한 선입견이다. 대학 시절 다른 친구와 함께 셋이서 팀을 짜 고려대 주최 토론대회에 나가 1등한 적이 있다. 그때 원고의 3분의 2를 동영이가, 3분의 1을 나머지 둘이 썼다. 말도 잘하는 거다.


권 교수 말고도 72학번 동기들이 정 전 의장의 든든한 자산이다. 숙명여대 기숙사 앞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부인 민혜경(51) 여사를 만나게 해준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등이다.
권 교수는 “72학번 중심의 모임 ‘마당’에 돕는 친구들이 많지만 이해찬 전 총리도 멤버다 보니 드러내기를 꺼린다”고 설명했다. 고도원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등 전주고 인맥도 끈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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