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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참으로 오래된 性色 차별

중앙선데이 2007.04.24 16:38 6호 2면 지면보기
윤정미 작 39핑크 & 블루 프로젝트39 39LIFE39 4월 13일자 커버 특집 
출산이 다가오면 갓난아이의 배내옷이며 이부자리ㆍ포대기를 마련하는 데 약간 뜸이 든다. 태어날 아이가 고추를 달고 올 것이냐, 떼고 올 것이냐 가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초음파가 있지만 옛날에는 임부의 엉덩이 모양이나 뒤태, 태몽 등으로 어림짐작했다. 남자 아이면 파랑, 여자 아이면 분홍 일색으로 아이 뒤치다꺼리할 일습을 장만했다. 왜 남자는 꼭 파랑이어야 하고, 여자는 분홍이어야 할까.

사진가 윤정미(38)씨는 해묵은 이 질문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댔다. 어린 시절의 습속은 그대로 성장기까지 이어진다. 초등학교에서 필요한 각종 학용품도 여자애는 분홍, 남자애는 파랑을 고른다. 장난감도 마찬가지다. 윤씨가 만난 여자 아이들은 모두 분홍색 물건에, 남자 아이들은 모두 파랑색 물건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다.

잡동사니 전부가 분홍인 여자 아이의 사진은 남녀를 색으로 구분하는 한국 사회의 오래된 인습을 상징한다. 여자는 분홍 물건을 사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엿보인다. 파랑을 집어드는 여자 아이는 이 사회에서 편안할 수 없다는 암묵의 경고가 숨어 있다.
미국의 전통 있는 사진잡지 ‘라이프(LIFE)’가 윤정미씨의 작품을 흥미롭게 생각했는지 4월 13일자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들(Kids Show Us, Their Favorite Thing)’이란 제목을 붙였다.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파랑과 분홍을 선호하는 이 욕구는 진정한 본능인가, 아니면 인위적인 강박인가 묻는다. 아니면 자본주의 사회의 장삿속일까.

윤정미씨는 사회적으로 제도화된 일종의 ‘컬러 코드’를 보여준다. 물건을 잔뜩 늘어놓은 설치작업 효과에 사진 유형학(typology)을 접목해 현대 사회의 성구분 문제(젠더ㆍgender)를 제기한다. 사진의 첫인상은 밝고 상쾌하며 팝아트같이 톡톡 튄다. 사탕 같은 그 분홍색 뒤에는 달콤쌉싸름한 맛이 뒤섞여 있다. 달콤함은 전략일 뿐, 윤씨가 말하고 싶은 본심은 쌉싸름한 쪽이다.

‘라이프’지가 주목한 것은 어느 쪽이었을까. 팝아트의 나라답게 사탕 쪽이었다. 분홍과 파랑 물건에서 길어 올린 어린 시절을 시시콜콜 뒤지며 ‘장난감의 추억’을 헤집는다. 한국의 여성 사진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시각적인 유희로 가득 찬 이 사진을 6월 14~24일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볼 수 있다. 한국에서 처음 ‘핑크 & 블루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윤씨는 “관람객이시여, 경각하시라”는 초대의 말을 남겼다. 분홍과 파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건 아이들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분홍과 파랑의 경계색이 얼마나 많이 퍼져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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