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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캠프大해부④ 정동영캠프] 34년 전 유치장서 만난 만학이와 동영이

중앙선데이 2007.03.22 17:58
중앙SUNDAY “만학아, 너 방학했지? 나 좀 도와줘야겠다.” 지난해 말 권만학 경희대 국제학부 교수에게 걸려온 전화.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다.



권 교수는 “동영이가 도와달라면 나는 거절할 자유가 없다”며 웃는다. 그는 정 전 의장의 정책 자문에 응해주는 통일ㆍ안보 전문가다. 정 전 의장의 싱크탱크인 ‘21세기 나라비전연구소’ 소장이다. 동시에 정 전 의장이 인생의 중대 기로에 설 때마다 고민을 상담해 온 오랜 친구다. 정 전 의장은 “고려대 최상용 교수와 더불어 내가 늘 조언을 구하는 대상”이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서울대 72학번 동창이다. 정 전 의장은 국사학과, 권 교수는 외교학과를 나왔다. ‘10월 유신’이 시작된 지 일 년 뒤인 1973년 10월의 서울대 시위 현장에서 붙들려 둘다 서울 남대문경찰서에 갇히면서 처음 만났다. 정 전 의장은 99년에 쓴 자전적 에세이집 『개나리 아저씨』에서 이 순간을 이렇게 묘사했다.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왼쪽)이 1974년 군 입대를 앞두고 권만학 경희대 교수와 함께 찍은 사진. 출처=정 전 의장 미니홈피



‘나는 그날 그곳에서 평생의 지기가 된 귀한 친구를 만났다. 서울대 학보에 문리대생의 특질에 관한 반박문을 써서 유명해진 권만학이 바로 그다.(…) 그는 안경을 쓴 반듯한 얼굴에 유창하고 정확한 논리를 구사하는 이미지가 키신저와 비슷하다고 해서 권신저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함께 유치장에 갇히고 나란히 징집을 당하며 숨 막히는 70년대를 보냈다. 권 교수는 “당시 나를 만나곤 했던 서울대 담당 중앙정보부 요원이 지금은 국정원장(김만복)이 됐다”고 말했다. 그런 시절이었다. 두 사람이 택한 첫 직장은 언론사였다. 권 교수는 통신사 기자 생활을 하다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 권 교수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자 이번엔 정 전 의장이 로스앤젤레스 특파원으로 떠났다. 당시 권 교수는 정 전 의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다짐했다.



‘동영, 네가 떠난 지 벌써 1년을 넘기는구나. …하루빨리 다시 모여 우리의 일을 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정진하라! 1990. 6. 23 서울에서 만학’



96년 정 전 의장이 정계에 발을 들이면서 이들은 다시 ‘일’을 도모하는 사이가 됐다.



권 교수는 “내가 그를 거절 못 하는 이유는 친구이기 때문만은 아니다”며 “정 전 의장만큼 바르고 똑똑한 사람이 드물다”고 강조했다. 그가 설명하는 정 전 의장에 대해 잘못 알려진 사실들.



● 방송기자 정점에서 말을 갈아탔다 호남 출신인 동영이는 (인사에서) 물을 많이 먹었다. 평일 9시 뉴스 메인 앵커를 결국 못했다. 정계에 들어올 때 많은 갈등과 고민을 했다.



● 고생 모르고 자랐다 대학 시절 그의 집에 갔다가 놀랐다. 천막으로 지은 초라한 판잣집이었다. 어머니가 재봉틀로 옷을 만들면 동영이는 시장에 넘겨주며 학교를 다녔다.



● 말만 잘한다 가장 황당한 선입견이다. 대학 시절 다른 친구와 함께 셋이서 팀을 짜 고려대 주최 토론대회에 나가 1등한 적이 있다. 그때 원고의 3분의 2를 동영이가, 3분의 1을 나머지 둘이 썼다. 말도 잘하는 거다.



권 교수 말고도 72학번 동기들이 정 전 의장의 든든한 자산이다. 숙명여대 기숙사 앞에서 소리를 고래고래 질러 부인 민혜경(51) 여사를 만나게 해준 황지우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등이다.



권 교수는 “72학번 중심의 모임 ‘마당’에 돕는 친구들이 많지만 이해찬 전 총리도 멤버다 보니 드러내기를 꺼린다”고 설명했다. 고도원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등 전주고 인맥도 끈끈하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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