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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있는아침] '빨강 빨강'

중앙일보 2007.03.09 19:41 종합 31면 지면보기
'빨강 빨강' - 김근(1973~ )





피를 다 소진한 누리끼리한 염통이 저 혼자 바싹 마른 혈관을 흔들어대면서 골목 뒤편으로 사라진다 고통이 짜르르 따라간다 새까만 정거장에서 사내는 무당개구리처럼 배를 뒤집는다 배가 빨갛다 빨갛게 사내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는 돌기가 너무 많았다 빨갛게 말라간다 그는 곧 푸석푸석,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설령 제 색깔을 잃어버린 염통이 다시 돌아온대도 그를 찾지는 못할 것이다 다만 고통도 없이 빨강 빨강들이, 새까만 정거장 주변을 팔짝팔짝 뛰어다닐지 엉금엉금 기어다닐지 맴맴 돌지 어쩔지 모를 일은, 모를 일이다










내 등짝에 달라붙은, 이봐요, 당신이 아파서 내 등이 무거워요. 우리 '빨강 빨강' 놀이나 할까요. 빨강이 너무 무서우면 '빨강 빨강'이라고 말하세요. 그럼 붉은점모시나비처럼 팔랑팔랑, 이 고통에도 날개가 돋을지 몰라요.



<김선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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