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맥주처럼 마시는 '뒤끝없는 막걸리' 나왔다

중앙일보 2007.02.23 14:33
"퇴근하고 시원하게 생맥주 어때?"



이상철씨가 생맥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개발한 막걸리용 디스펜서. 현재 실용신안 등록후 특허출원 중이다.
평범한 직장인 김경래(34)씨가 퇴근시 자주 듣는 말이다. 그럴 때 마다 그는 '왜 꼭 맥주일까? 우리술 막걸리에 파전은 안되나?'하는 생각을 했다. 막걸리는 애당초 제대로 대접받지 못할 팔자였는지도 모른다. 막걸리라는 이름부터가 그렇다. 술과 누룩으로 발효시킨 후 막 걸러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으니 말이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는 하지만 막걸리는 여전히 '마시고나면 머리 아픈 술'의 대명사.



◇막걸리의 문제는 위생과 유통=지난 1년간, 자칭 '대한민국 최고 막걸리 애호가'라는 이상철(43)씨의 가장 큰 고민은 '왜 막걸리는 마실 때는 좋은데, 뒤끝이 나쁠까'였다. 이 고민에 대한 답을 찾아 1년여를 헤맨 뒤 그가 내린 결론은 두가지, 막걸리의 위생과 유통에 문제가 있다는 것. 그래서 막걸리가 주류 시장의 영원한 서자(庶子)일 수 밖에 없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이에 이씨는 일명 디스펜서라 불리는, 생맥주 공급 장치를 막걸리에 적용시킨 '막걸리 디스펜서'(사진)를 개발했다. 지금은 천안시 두정동에 주점 '백주마루'를 열고 3개월째 소비자 반응을 살피는 중이다. 지난해11월 문을 연 이 주점은 개업 3개월만에 막걸리로만 평균 월매출 2000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이곳을 찾는다는 고객 박인식(42)씨는 "병막걸리보다 훨씬 시원한 느낌이 좋다"며 "늘 한결같은 맛을 느낄 수 있어서 이곳을 찾는다"고 말했다. 이씨는 "우리 술 막걸리를 생맥주처럼 즐길 수 있는 날이 얼른 왔으면 한다"면서 "이제껏 막걸리가 안고 있었던 위생과 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과거 막걸리는 '먹고 나면 머리가 아픈 술'의 대명사였다.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다. 좋지 않은 원료와 오래된 설비 때문에 위생상의 문제가 있었다. 이 때문에 발효 과정에서 몸에 좋은 효모 외에 잡균이 같이 성장했다. 이것이 편두통을 유발하는 주범이었던 것.



반면 최근 들어서는 좋은 원료를 위생적인 시설에서 생산한다. 제조 공정도 규격화됐다. 여기다 웰빙 열풍이 가세했다. 좋은 막걸리는 단백질과 비타민 B 계열 복합체, 그리고 각종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한 영양식품이다. 게다가 콜레스테롤을 낮춰주는 역할도 한다. 요즘 막걸리는 과거에 비해 '프리미엄 막걸리'라고나 할까. 막걸리가 웰빙 주류로 다시 조명 받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막걸리에 해박한 이들은 위생 문제가 해결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막걸리의 맛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유통 문제 때문에 맥주처럼 늘 한결같은 맛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막걸리 유통은 2리터 미만의 용기로만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은 750ml 플라스틱 용기. 이런 용기로는 발효주인 막걸리를 유통시키기에 치명적이다. 유통 과정에서 발효가 계속 진행되기 때문. 특히 여름철이면 막걸리는 출시된 지 얼마나 됐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이 때문에 한 막걸리 제조업체는 유통 과정에서 발효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도록 효모를 죽여 판매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막걸리 특유의 생생한 맛을 잃어 '죽은 막걸리'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씨는 막걸리 유통상의 문제에 대한 해법을 맥주에서 찾았다. 생맥주처럼 디스펜서를 활용해 일정한 온도가 유지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경우 발효가 더 이상 진행되지 않으면서도, 막걸리를 시원한 상태로 유통시킬 수 있다. 성균관대학교 섬유공학과를 졸업하고 줄곧 사업을 해온 이씨는 최근 몇 년간 다른 일을 전폐하고 막걸리 연구를 진행했다 . 건강식품에 대한 사업을 준비하다 막걸리가 몸에 좋다는 것을 알게된 뒤 연구에 더욱 열을 올렸다.



디스펜서를 이용한 일명 호프식 막걸리의 최대 장점은 '맛을 최상의 상태로 일정하게 유지한다'는 점. 호프식 막걸리는 발효가 정지되는 적정 온도에서 보관해 신선도를 유지하므로 장기 보관이 가능하다. 양조장 수준의 청량미를 확보하는 셈이다. 또한 유통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염을 원천적으로 방지할 수 있어 위생적이기도 하다.



문제는 소형 용기 외에는 유통을 금한다는 국세청 고시사항. 자칫 불법으로 몰릴 위험도 없지 않다. 하지만 국세청 소비세과 주세 담당자는 현재 해당 고시가 1973년 당시 위생 여건과 유통 질서를 고려한 것으로, "유통 구조 개선안을 건의해오면 검토, 상담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이 고시만 개정되면 막걸리를 생맥주처럼 즐겨 찾게 될 날이 올 수도 있을 것같다.



이씨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좋은 술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어렵다는 일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며 "테이크 아웃 커피나 생맥주처럼 막걸리가 보급됐으면 좋겠다"고 '막걸리 마니아'다운 희망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이여영 기자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