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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전화국 … 전시장으로 탈바꿈

중앙일보 2007.02.11 20:50 종합 18면 지면보기
안규철씨의 '49개의 문'
스페인 마드리드 시내 곳곳은 지금 '공사중'이다. 낡은 건물들은 개보수를 위해 철제빔 옷을 둘러 입었다. 관광객을 실은 이층버스 옆으로 레미콘 차가 보란듯이 달려간다. 프라도미술관 앞 카페 점원 호세는 "이곳에선 새 건물을 짓는 것보다 옛 건물을 유지하는 데 더 신경을 쓴다. 요즘은 경기가 좋아졌는지 여기저기서 뚝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스페인 아르코 아트페어

이런 '리모델링 정신'은 전시장에서도 감지된다. 올해 스페인 아르코 아트페어(15~19일)의 주빈국으로 선정된 한국은 마드리드 시내 일곱 곳에 전시를 마련했다. 특이한 점은 전시가 열리는 곳 대부분이 점잖은 전시장이 아닌 독특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도살장.전화국.물탱크 같은 공간이 과연 전시장으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이곳에선 가능하다.



한국 작가 10명과 스페인 미대생 50여명이 공동 참여하는 미디어아트 전시 '민박 프로젝트'가 열리는 곳은 옛 도살장 집합지인 '마타데로'. 마드리드시 남부 15만㎡ 땅에 자리잡은 마타데로는 70여년간 번성하다 10년 전 쇠락한 지역이다. 공연장.전시장 등 복합문화단지를 계획하던 마드리드시는 이곳을 부수고 새 건물을 짓는 대신 리모델링을 선택했다.



'민박 프로젝트'가 열리는 건물엔 마룻바닥이 깔리고 벽에 통유리를 세웠다. 60여명의 작가들은 15일부터 4일간 이곳에서 먹고 자면서 작품 활동을 하게 된다. 복합문화단지 조성 책임자인 후안 카레테는 "리모델링을 하면서도 시멘트 기둥과 천장의 쇠파이프 등은 그대로 뒀다. 이곳이 작가들에게 상상력과 창조력을 가져다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금화씨의 굿 '서해안 풍어제'
10일 낮 마타데로 내 또 다른 도살장 건물에서는 무형문화재 김금화씨의 굿 판이 벌어졌다. 바다와 친숙한 스페인을 고려해 '서해안 풍어제'를 택했다. 아르코 아트페어와 한국의 주빈국 행사의 번영을 기원하는 이날 굿판에는 스페인 관람객 200여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두 딸과 함께 이곳을 들른 로라 마네티는 "아주 재밌게 봤다. 강렬한 옷 색깔, 축제처럼 즐거운 퍼포먼스가 인상적이다"라고 말했다.



고(故) 백남준을 기리기 위한 특별전 '환상적이고 하이퍼리얼한 백남준의 한국 비전'은 마드리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텔레포니카에서 열린다. 텔레포니카는 기존 전화국을 개조한 건물로 1층은 전시장, 2.3층은 전신박물관으로 운영 중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통신기기 부품으로 조립한 말이 마차를 끌고가는 대작('운송/소통')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백남준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TV부처' 외에도 김유신.단군 등 역사적 인물과 할머니.소년 등 가족을 소재로 한 미디어아트 작품이 즐비하다. 작품들의 성격에서 보이듯 이번 전시는 백남준의 작품 중 선사상.샤머니즘 등 동양사상과 한국의 전통에 바탕을 둔 작품을 위주로 했다. 전시를 기획한 김홍희 경기도미술관장은 "백남준은 유럽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은 작가"라며 "전시장 내부의 고풍스런 느낌이 특히 미디어아트와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 백남준씨의 '스키타이 왕 단군'
100여년 전 마드리드의 물 저장고로 사용되던 건물을 개조한 전시장 '까날 데 이사벨'엔 대안공간 젊은작가들의 전시 '도시성을 둘러싼 문제들'이 들어섰다. 좁은 탑처럼 길쭉하게 생긴 건물의 모양과 빙 돌면서 올라가는 계단이 공간적 재미를 부여한다. 이 전시는 파격적인 공간에 젊은작가의 실험적인 작품이 서로 잘 어울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외에도 주명덕의 한국전통공간 사진전, 2006 광주비엔날레 전시의 일부를 옮겨온 '뿌리를 찾아서'전, 설치작가 안규철의 '퍼블릭 인스톨레이션' 등이 마드리드시내 곳곳에서 한국의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백남준 특별전은 5월말까지, 나머지 전시는 3월 중순까지 계속된다.



마드리드=박지영 기자



◆아르코 아트페어=바젤(스위스).피악(프랑스) 등과 함께 세계 5대 아트페어 중 하나로 매년 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다. 다른 상업 아트페어와 달리 미술 육성 정책의 하나로 스페인 정부가 직접 나서 행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매년 한 국가를 주빈국으로 초청해 아트페어 전시 공간을 무료로 제공하고 공연.전시.영화 등 각종 문화행사를 지원한다. 15일부터 19일까지 종합전시장인 이페마(IFEMA)등에서 열리는 올 행사에는 30개국 259개 화랑이 참여할 예정. 지난해까지 한국에선 3~4개 화랑이 참여했지만, 올해는 주빈국 자격으로 14개 화랑이 대거 참여해 한국의 현대미술을 세계시장에 알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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