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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선 '축구는 전쟁'

중앙일보 2007.02.06 05:12 종합 28면 지면보기
2006 월드컵 축구 우승국 이탈리아 축구계가 온통 시끄럽다. 승부 조작 파문으로 지난해 홍역을 치렀던 이탈리아 축구계가 이번에는 관중 난동으로 경찰관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3일(한국시간) 시실리의 맞수인 세리에A 카타니아-팔레르모의 라이벌 경기 도중 관중 소요가 일어났고, 둔기에 경찰관이 얼굴을 맞아 죽는 일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100여 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훌리건도 울고갈 '울트라스' 폭력에 경관 사망
세리에A 무기한 중단, 무관중 경기 검토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총리는 "축구장 폭력을 근절할 강경한 조치를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이탈리아축구연맹(FIGC)은 사건 직후 세리에A 경기를 무기한 중단했고, 상당 기간 무관중 경기를 치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폭력은 이탈리아 축구의 운명인가=이탈리아 축구를 이해하기 위해선 역사적 맥락이 중요하다. 서로마제국 멸망(476년) 이래 1861년 재통일되기까지 이탈리아 반도는 수십 개의 도시국가로 쪼개진 채 약 1400년을 흘러왔다. 그동안 전쟁이 끊이지 않았고 이웃 나라를 잡아먹기 위해 외세를 동원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통일된 뒤 각 지방은 총.칼 대신 축구를 전쟁을 수행할 도구로 생각해 냈다. 이 때문에 '스포츠'가 아닌 '전쟁'의 개념으로 이탈리아 축구를 보면 더 잘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카데나치오(빗장수비)'는 '비길지언정 최소한 적에게 질 수 없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승부를 위해 스포츠맨십은 아무것도 아니다.



2002 한.일 월드컵 한국과의 16강전에서 보듯 할리우드 액션과 심판의 눈을 피해 상대 선수에게 가차없이 가해지는 린치, 유로 2004 덴마크전에서처럼 상대 선수에게 침 뱉기(프란체스코 토티), 2006 독일월드컵 결승전에서 마르코 마테라치의 상대 선수(지네딘 지단) 자극하기 등은 자국 리그에서 익힌 '기술'들이다. 지난해 승부 조작 스캔들의 원인이었던 심판 매수도 공공연한 일이었다.



'훌리건'을 능가한다는 뜻으로 '울트라스(ultras)'로 불리는 관중의 경기장 폭력도 악명이 높다. 1962년 이래 여섯 명의 관중이 자국 리그 경기에서 폭력으로 사망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제 이탈리아에서는 웬만한 축구장 주변의 폭력 사건은 기사화되지 않을 정도로 팬들의 난동은 일상이 됐다"고 밝혔다.



◆폭력 근절 계기 될까=리버풀(잉글랜드)과 유벤투스(이탈리아)의 유러피언컵 결승전이 열린 85년 벨기에 헤이젤 스타디움. 양팀 서포터의 충돌로 경기장 벽이 무너져 39명이 사망하고 454명이 부상당하는 참사가 있었다. 이른바 '헤이젤의 비극'이다.



이 사건 후 잉글랜드 프로팀들은 유럽축구연맹(UEFA)이 주최하는 모든 대회 출전을 5년간 금지당했다. 그렇지 않아도 잦은 경기장 폭력으로 유럽 2류 리그로 추락해 가던 잉글랜드 리그로서는 치명타였다. 하지만 이를 계기로 폭력에 대한 자성, 대대적인 경기장 보수, 승점제 개혁 등의 조치가 뒤따랐고 이를 바탕으로 92년 현재의 프리미어리그가 출범해 세계 최고 리그의 명성을 되찾았다.



이탈리아도 개혁의 동기는 충분하다. '경관의 사망'이 주는 충격파가 크다. 92년 마피아 일소 작전을 펼치던 조반니 팔코네 등 판사들이 마피아에게 암살된 대가로 이탈리아 내 마피아는 와해 지경에 이르렀다. 프로디 총리는 "이번 사건이 전환점이 돼야 한다. 더 이상 법을 집행하는 경찰관의 목숨을 담보로 맡겨둘 수 없다"며 강경한 입장이다.



줄리아노 아마토 내무장관도 "이런 상황에선 경찰 인력을 축구장에 배치할 수 없다"며 5일 조반니 멜란드리 스포츠장관과의 긴급 회동에서 축구장 폭력 예방을 위한 장기 대책을 내놓기로 했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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