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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업화-민주화"성공사례"|공산·제3세계는 종말|서구 자본주의도 허점

중앙일보 1991.01.04 00:00 종합 8면 지면보기
◇…앞으로의 세계는 일본·한국·대만과 같이 정부와 대기업이 협력하는 국가와 새로운 사회민주주의국가의 2개 국가군으로 나뉘어질 것이라고 프랑스의 저명한 사회학자 알랭 투렌박사(프랑스사회과학연구원장)가 전망했다. 투렌박사는 중앙일보에 보낸 신년특별기고 「서구모델은 승리했는가」에서 세계는 이 과정에서 분열의 위험이 높아지고 세계차원에서 불평등에 대항하는 투쟁이 전개될 것이라고 경고했다.【편집자주】…◇

세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크게 변했다.

불평등에 대항하는 분열의 위험도 도사려|신년 해외특별기고『서구모델은 승리했는가』

프랑스혁명 전 유럽사회가 귀족·승려·제3계급(평민)등 3계층으로 구분이 있었듯이 10년전의 세계도 크게 세 그룹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서구의 잘사는 사회가 귀족층이라면 공산주의 정권 및 그노멘클라투라(특권층)는 승려 층을, 그리고 알프레드 소비(프랑스의 사회학자)가 정확하게 이름 붙인 제3세계, 즉 저개발국가들은 제3계급을 각각 형성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오늘 반둥회의에서 태동한 제3세계의 꿈은 무산됐고 거기에서 들려오는 소식은 모두 기아 아니면 독재·전쟁 등에 관한 것들뿐이다. 유럽의 공산-주의세계 또한 붕괴했다.

공산열도의 마지막 조각들로 남아있는 베트남·쿠바·북한 같은 나라에서 미래를 찾아 볼 수는 없다. 중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군부반동은 계획경제의 종식을 향한 억누를 수 없는 변화에 대한 일시적 반격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는 자본주의와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하나의 모델아래 통일되고 있다는 결론을 과연 내려도 좋은 것일까. 헤겔 이후 한 세기 반에 걸친 역사의 종언을 말하는 이들은 바로 그렇다고 믿고 있다. 역사의 끝이라는 이미지는 오늘날 아시아·라틴아메리카·동유럽등에서 서구식 정치·경제모델이 거둔 성공과도 일치하는 것이다.

<중산층 다수 차지>

한국은 가속적 공업화와 함께 노동자·학생을 중심으로 한 사회운동으로 일정수준의 민주화를 이룩한 가장 대표적 사례 가운데 하나다. 민중운동의 결과라기보다는 스스로 지쳐 무너진 셈이지만 어떻든 남미에서도 군부독재시대는 끝났다. 공산당 일당독재를 청산한 동구의 헝가리·체코·폴란드 등에서도 정치적 민주주의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1980년 세계의 모든 구석에서 사람들은 혁명을 이야기했지만 10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얘기하고 있으며 계획경제를 말하던 사람들은 이제 시장경제를 말하고 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서구식 정치·경제모델의 승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하는 배경이 되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세계사회라는 차원에서는 물론이고 많은 국가들에 있어서도 중심부와 주변 부, 참여계층과 소외계층간의 간극은 전보다 훨씬 크게 벌어져 있다. 세계라는 차원에서 보자면 중심부는 괄목할 정도로 확대태동아시아와 동남아의 상당부분을 포괄하게 됐다.

선진공업국의 경우 과거노동자계층이라고 불리던 계층의 상당부분이 중산층에 편입됨으로써 중산층이 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공업국들에 있어서조차 부유층과 빈곤층간의 간격은 더욱 벌어져 중심부의 주변 부 통합능력은 오히려 전보다 감소했다. 저개발빈곤국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계층별 간격 극심>

지난10년 간 라틴아메리카의 경제활동인구비율은 60%에서4O%로 줄어들었다. 그 결과과거한때 잘살았던 아르헨티나 같은 나라에서도 주변계층이란 용어자체가 무의미해질 정도로 주변인구가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고 페루나 중앙아메리카의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는 실정이다.

오래 전부터 사회적 불평등이 가장 심각한 나라로 지적돼온 브라질에서도 부유층과 빈곤층간의 간격은 매년 더 벌어지고 있다.

이 같은 불평등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혁명운동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지난10년 간 남미의 생활수준이 15∼20%나 저하됐고 그 결과는 거의 전적으로 빈곤층의 부담으로 돌아갔는데도 어떠한 사회봉기도 일어난적이 없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은 극단적인 예를 제시하고 있다. 워싱턴시내 자체는 흑인빈곤층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백인부유층은 주로 교의에 거주하고 있다. 도시의 인구구성만을 놓고 봤을 때 사회적이면서 동시에 인종적인 심각한 마찰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도 워싱턴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백인에 대한 흑인의 폭력이 아니라 흑인끼리의 폭력이다.

중산층과 빈곤층, 중심부와 주변부사이의 간극은 이제 상호마찰에 의한 접촉마저 더 이상 가능하지 못하게 할 정도로 완전히 빌어져 있는 것이다. 폭력이 문제될 때 그것은 서로 분리된 각각의 사회계층 자체 내에서의 문제지한 계층의 다른 계층에 대한 문제는 아닌 것이다.

이러한 계층적 「이완성」은 냉전의 승리감에 기분 좋게 도취돼 있는 서구세계에 특히 심각한 문제가 되고있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것은 물론 미국이다.

미국의 중산층은 자기나라의 생산력과 저축 력을 훨씬 넘어서는 정도의 과소비에 몰두해 왔고 그 결과는 막대한 무역 및 재정적자와 외국자본의 유입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유럽의 일부에서도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공업 력의 저하를 금융시스템의 확대로 만회하고자 애쓰고 있는 영국의 경우 전통적 의미의 노동자 계층은 와해상태에 있는 대신 「언더클래스」(하류층)라는 폭력적이고 반문화적인 계층이 출현, 과거부터도 항상 신사와 노동자들로 구분돼 있던 영국의 사회적 분리현상을 더욱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허약한 세계체제>

프랑스와 스페인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지난 몇년사이에 전근대사회에서 탈 근대사회로 건너 뒤는 바람에 근대사회의 경험을 전혀 갖지못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는 스페인의 경우 강력한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실업률은 여전히 매우 높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프랑스사람들은 소비사회의 달콤함에 빠져들어 사생활에만 열중할 뿐 현대화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한때 강력한 공업정신을 발전시켰던 이탈리아에서도 능력 있는 사람들은 공업분야에서 금융쪽으로 옮겨갔다. 오직 독일만이 왕성한 공업정신을 간직하고 있고 이것은 동독의 완전재건을 떠받치는 수단이 되고있다.

이렇게 볼 때 너무 성급하게 서구모델의 승리에 대해이야기하기보다는 두 초강대국의 쇠퇴와 기존세계 질서체계의 허약함에 대해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라크의 군사적 모험주의와 계층 간의 사회·문화적 간격확대로 아메리카·유럽·아프리카 등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종의 국가해체현상은 기존세계체제의 허약성을 잘 입증하고 있다.

그러나 초강경 자유주의의 이념적 승리가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영국의 「철의 여인」대처의 하야가 바로 이런 점에 대한 경고신호다.

그녀의 하야는 경제가 정치에 예속돼서는 안되지만 서유럽의 가장 오래된 공업국들이나 미국, 또는 공업화초기의 일본이나 한국 등에서 나타난 같은 종류의 사회적 위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는 경제는 일정한 사회적 통제 대상이 되어야한다는 점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개 국가 군 부상>

사회주의와 제3세계 민족주의는 종말을 고했다. 하지만 자본주의 또한 기력을 잃고 지쳐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에는 일본·한국·대만처럼 국가와 대기업이 긴밀한 협력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들과 새로운 형태의 사회민주주의 즉, 경제활동에 대한 사회·정치적 통제를 실천하는 나라들 등 두개의 국가 군이 전면에 부상하게 될 것이다.

야만적 공업화시대와 함께 시장의 승리가 끝나고 나면 도처에서 분열의 위험이 높아지면서 각 국 내부와 세계차원에서 불평등에 대항하는 투쟁이 빠르게 재개될 것이다.

<약력>

▲1925년 프랑스 북부 칼바도스 출생

▲50년 파리고등사범학교(ENS)역사학교수 자격취득

▲65년 사회학박사

▲프랑스 파리 각 대학·사회과학대학·고등사범학교 및 미국 컬럼비아대·UCLA·버클리대, 브라질 상파울루대, 폴란드 바르샤바대 등에서 강의

▲프랑스 사회학회장(68∼70년),국제사회학협회부회장(74∼78년)

▲현재 파리사회과학연구원장

▲저서=『노동의식』『노동자운동』등 노동사회학 이론서와『음성과 시선』『학생투쟁』『5월 운동과 공산주의 유토피아』『반핵예언』『의존형 사회』등 현실비판 서적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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