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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잡 벗고 금주 풀고 … 왕국이 열렸다

중앙일보 2006.12.01 04:43 종합 1면 지면보기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선 사우산 주마(오른쪽 둘째.19)와 학교 친구들이 성화를 기다리고 있다. 주마는 히잡을 썼지만 친구들은 모두 히잡을 벗어던진 발랄한 모습이다.도하=서정민 특파원
"아시안게임 유치가 마술봉(magic wand)인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이 바뀌고 있어요."


변화의 열풍 부는 카타르 도하

카타르 도하 시내에 위치한 전통시장 '수크 와키파'에서 30년째 공예품을 만들어 온 압둘라만 알카와리(54)는 "시내에서 길을 잃는 시민도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맘(예배 인도자)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을 받은 알카와리는 카타르의 변신에 마음이 편치 않은 모습이다. "외국인이 대거 몰려와 장사가 잘되니 좋기도 하지만 걱정도 된다"고 했다.



아시안게임 개최가 결정되고 본격적인 준비에 나선 2년 전부터 카타르에는 엄격한 '이슬람 전통'마저 뒤바꿔 놓을 만큼 거센 변화의 열풍이 불고 있다.



◆ 캠퍼스의 '벗자' 물결



개방의 물결을 가장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곳은 대학교다. 30일 도하 시내 서부에 위치한 '에듀케이션 시티' 내 대학촌. 여러 대학이 모여 있는 이곳에선 히잡(이슬람 여성 머리 두건)을 벗은 여학생이 곳곳에 보인다. 히잡을 쓰더라도 머리카락과 목을 완전히 가려야 하는 전통을 무시하고 헐렁하게 앞머리를 드러낸 학생도 많다. 마치 신발을 꺾어 신거나 모자를 삐딱하게 쓴 격이다. 눈만 내놓는 니캅을 쓴 학생도 가끔 보이지만 이들은 카타르 인구의 7% 정도인 시아파 이란인이라고 한 학생은 설명했다.



아시안게임 유치 이후 외국인과 접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대학가를 중심으로 서구문화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다. 노래는 팝송을 부르고, 영화도 미국 영화가 최고라고 말한다. 미군 중부군 사령부가 도하에 있는 것에 대해서도 "국익에 필요하다면"이라고 답한다.



◆ 술.여자 금기도 무너져



밀려 들어오는 외국인 때문에 엄격히 금지됐던 술 판매와 매춘도 무너지고 있다.



"술 마시고 싶으면 큐브(Cube)로 가세요."



'큐브'는 카타르에 처음 생긴 술집이다. 관광호텔 내에서만 술을 팔던 관행이 이번에 깨졌다. 큐브는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층 구조로 돼 있고 널찍한 댄스 무대도 갖췄다. '한 잔'이 포함된 입장료 10달러만 내면 외국인은 물론 현지인도 이용할 수 있다.



특급 호텔마다 나이트클럽도 생겼다. 리츠칼튼과 셰러턴 호텔에는 현지인 고위층과 영국인을 위한 멤버십 클럽이 등장했다. 오후 10시쯤이 되면 중국.동남아는 물론 러시아 여성들이 속속 입장한다. 물론 나갈 때는 혼자 나가지 않는다. 갑자기 불어닥친 '파격적인 개방'에 다른 이슬람권 선수단이 오히려 당황해 하는 눈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한 임원은 "회의를 열어 선수들의 외출을 제한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술집과 성매매 장소가 있다는 것을 도하에 와서야 알았다며 당혹해 했다.



◆ 부동산 개발 붐



도하 해변에는 부르즈 두바이 건물 공사가 한창이다. 삼성건설이 두바이(아랍에미리트)에서 건설하고 있는 부르즈 두바이와 같은 이름이다. 80층 정도에 첨탑을 합쳐 약 450m의 높이로, 도하에서는 가장 높은 호텔 및 주거용 건물이 될 예정이다. 이외에도 수십 개의 대형 빌딩이 동시에 올라가고 있어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대규모 인공섬 '펄'도 바다 위로 올라오고 있다.



도하의 변화는 정치로 파급되고 있다. 이미 민주화 움직임이 시작됐다. 카타르 왕실은 내년에 역사적인 총선을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용적 개혁정치로 걸프 국가 중 최고의 민주화된 복지국가 건설의 야망이다.



도하=서정민 특파원, 강인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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