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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ㆍ2차 석유파동 겪은 「오일맨」 조원천씨(일요인터뷰)

중앙일보 1990.08.12 00:00 종합 3면 지면보기
◎“옛경험 살려 3차 위기 대비”/산유국 직거래 많아 파국은 없을 것/79년 원유결제 백억불공사 「10ㆍ26」 터져 무산

『이미 우리는 3차 오일쇼크의 문턱에 들어섰습니다. 2차때보다 세계각국의 대응수단이 세련돼 그 충격을 완화시키고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1,2차 오일쇼크의 경험을 바탕으로 차분히 대비해 나가야 합니다.』

유공가스 조원천전무(54)는 『2차 오일쇼크때와는 달리 정부와 정유업계의 원유비축이 충분하고 대응태세가 성숙돼 있으므로 이번 중동사태에 지나치게 겁먹을 필요는 없으며 앞으로 정부와 국민이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을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전무는 지난 67년 유공에 입사해 1차 오일쇼크(73년)때 기획과장,2차(79년)때 업무부장을 맡아 원유를 사기 위해 애태우며 중동을 뛰어다녔던 산 증인이다. 지난 3월 유공에서 계열회사인 유공가스로 옮긴 그는 기업체에 있는 사람이 인터뷰에 응하는 것이 『너무 주제넘는 일』이라며 걱정했지만 63빌딩에 있는 유공가스 사무실을 찾아가 만나봤다.

그는 여전히 「옛버릇」을 고치지 못한 채 텔렉스를 통해 들어오는 국제유가 동향ㆍ중동정세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오일맨」이었다.

그는 2차 오일쇼크때 정부가 추진했던 암호명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1백억달러의 원유확보작전이 좌절됐을 때 가장 아쉬웠고 석유메이저들이 한국에 원유공급을 끊었을 때 약소국의 비애를 느꼈다고 털어놨다.

­1,2차 오일쇼크때와 이번 중동사태가 다른 점및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공통점은 세차례의 석유위기가 모두 엠바고(수출제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차때는 중동 산유국이 메이저(다국적 석유자본)의 지분을 국유화하는 동시에 대미수출을 금지했고,2차때는 이란 회교혁명이후 미국이 이란의 석유를 사지 말도록 했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이라크ㆍ쿠웨이트산 원유수출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그때와 다른 점은 각국의 원유비축량이 풍부하고 대응자세가 세련돼 이라크ㆍ쿠웨이트사태에도 불구하고 국제원유시장이 파국으로 치닫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2차 오일쇼크때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땠는지요.

▲다급하기 짝이 없었어요. 당시의 원유 재고는 1주일분밖에 안됐습니다.

그래서 30여개국에 『원유를 달라』는 전문을 보내고 외무부등 정부부처가 모두 나서 기름을 사는 데 총력전을 폈지만 회신이 온 데는 한군데도 없었지요. 80년말에야 사우디에서 처음으로 3만배럴의 원유를 장기도입계약에 의해 들여올 수 있었습니다.

­극도로 불안한 상황에서 원유를 어떤 방법으로 조달했습니까.

▲현물시장에서 비싼 값에 사들였지요. 당시 기준유가는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였는데 배럴당 가격이 34달러까지 올랐을 때 우리는 38달러에 구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차 오일쇼크가 있었는데 2차때 미리 준비를 못했습니까.

▲전혀 안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는 메이저들이 공급책임을 지고 있었고 힘도 못미쳤습니다.

아쉬운 것은 박정희대통령 시해사건이 발생하기 직전 추진했던 암호명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사우디아라비아 프로젝트가 무산된 것입니다.

당시 정부는 사우디아라비아와 1백억달러 규모의 건설공사를 우리가 맡고 공사대금을 원유로 들여오는 프로젝트를 추진중이었지요. 이를위해 박대통령이 직접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사우디아라비아국왕과 서명하기로 실무자간에 합의가 돼있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박대통령의 시해사건이 일어나고 2차 오일쇼크가 뒤이어 터지는 바람에 없었던 일로 돼버렸습니다.

­원유 구입방법은 어떻게 달라졌는지요.

▲2차 오일쇼크때는 메이저들이 철수한 뒤 주로 일본상사들에게 많이 의존했습니다. 구입조건도 계약 당시의 가격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수송 도중에 국제현물시장가격이 오르면 선적시점에 산유국이 일방적으로 공시하는 가격으로 사야 했지요.

그러나 최근에는 정유회사들이 메이저를 통하지 않고 직접 산유국의 석유회사들과 거래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이번 중동사태가 발생해도 비교적 여유있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우리가 산유국과의 관계를 돈독히 해왔고 원유수입선을 다변화했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오일쇼크가 발생하는 원인은 무엇입니까.

▲석유위기의 특징은 시장수급이 깨져서가 아니라 정치적 이유에서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1,2차 오일쇼크때가 그러했고 이번에도 이라크가 이란과의 전쟁이후 내부문제를 수습하고 원유를 수출할 수 있는 항구를 확보하기 위해 쿠웨이트를 침공함으로써 시작됐습니다.

­현재 상황을 3차 오일쇼크라고 규정할 수 있는지요.

▲그렇다고 봅니다. 사실은 지난 88년 국제원유가격이 10달러이하로 폭락했을 때도 전문가들은 「석유위기」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유가가 안정돼 있을 때 세계경제도 안정되고,급등하거나 폭락하면 경제 역시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번 중동사태가 다른 점은 2차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세계 각국이 사전에 충분히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번 중동사태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까요.

▲아닙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심각한 국면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2차때는 불과 하루 2백만배럴이 부족했던 것이 쇼크로 이어졌습니다.

이번에는 이라크ㆍ쿠웨이트의 원유수출이 전면 중단될 경우 4백50만배럴의 공급이 끊기게 됩니다. 미국과 다른 산유국에서 생산을 늘린다고 하지만 그동안 쉬고 있던 유전을 다시 가동하려면 3개월 가량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우리 국민들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동안 기름값이 너무 쌌어요. 아직도 우리나라는 대외 채무국인데 산업적 수요보다 소비적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났습니다. 한마디로 과소비지요. 위기탈출을 위해 정부와 모든 국민들이 에너지절약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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