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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이후 5년, 테러가 진화했다

중앙일보 2006.08.28 15:25
뉴스위크9.11 테러 이후 우리는 무엇을 배웠을까. 부시 미국 대통령은 분명 과잉 반응이 나쁘다는 점을 배운 듯하다. 9월 11일 테러 이후 며칠 동안 허둥지둥하면서 아무리 불충분한 정보라도 긁어 모으려 했다. 결과적으로 가공되지 않고 걸러지지 않은 정보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로 밀려들었다.

예를 들어 9.11 몇 주 뒤 펜실베이니아주 당국자들은 해외 FBI 지국에서 놀라운 정보를 받았다. 피츠버그와 필라델피아 간을 달리는 열차에 테러범의 핵장치가 실려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보고서는 곧바로 백악관에 전달됐다.

대통령은 쏟아져 들어오는 테러 관련 정보를 CIA의 중간급 분석가처럼 눈에 불을 켜고 살펴보았다. 그 정보는 등골이 오싹한 내용이었지만 허위로 판명됐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진실이 밝혀졌다. 우크라이나의 두 남자가 소변을 보며 주고받은 대화를 엿들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얼마 후 부시는 그답게 그 사건을 빗대어 농담을 던지곤 했다. "이것도 우크라이나 화장실 사고 아냐?" 심각하지만 불충분한 정보가 책상 위에 올라오면 던지던 냉소적 질문이었다. 보고자들은 더 선정적이지만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를 걸러내는 요령을 터득했다.

예를 들어 중상 모략성 또는 '버림받은 여자'의 보복성 정보 등이다. 전 배우자나 남자 친구가 테러리스트들과 공모한다는 허위 신고가 FBI에 때때로 접수됐다. 부시는 이제 그런 추측성 정보를 걸러내는 "정보 팀의 능력을 신뢰한다"고 부시의 한 고위 측근은 말했다.

대통령의 심리에 관한 내용이라는 이유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그 보좌관은 대통령이 재임 초기에는 정보보좌관들을 그렇게 신뢰하지 않았다고 시사했다. 물론 그렇게 말하겠다는 의도는 없었다 해도 말이다.

부시가 아직도 정보 브리핑의 세부 사항을 꼼꼼히 살펴보는 편이지만("교통경찰 같다"고 하원 국토안보위원회 의장인 피터 킹 하원의원은 말했다) 9.11 이후 최대인 이번 테러 수사에서는 상당히 방관자적 입장을 보였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영국 첩보당국은 영국발 미국행 항공기 폭파 음모를 면밀히 추적해 왔다.

테러 표적이 10대나 됐지만 부시는 수사 과정에서 한발짝 떨어져 있었다. 8월 3일의 한 브리핑에서 "부시가 들은 이야기는 대강 '대통령이 알아야 할 일이다. 하지만 아직 자세한 정보는 별로 없다'는 내용이었다"고 백악관의 한 고위 보좌관은 말했다. 그는 정보 브리핑 관련 내용이라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했다.

다음 날 대통령에게 더 자세한 내용이 보고됐다. 8월 6일(일요일) 부시는 언제 항공사들에 통보할지에 관해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45분간 전화 통화를 했다. 그러나 혐의자들을 체포하기 직전에야 부시에게 그 사실이 전달됐다. 당시 부시는 텍사스 주의 목장에서 호수의 잔교(棧橋)를 만들고 자전거를 탔다.

영국 첩보원들이 모의 용의자들의 포위망을 좁혀갈 동안 부시는 젊은 보좌관들에게 '100도(섭씨 38도) 클럽' 참가를 권유하던 중이었다. 불볕더위 속에서 달리기를 하는 연례 행사였다. 무릎에 이상이 생겨 조깅을 중단한 부시는 자전거에 올라타 헐떡이는 보좌관들 주위를 달리며 "계속 달려! 할 수 있어"라고 외친다.

9.11 테러 이후 5년이 지난 지금 부시 대통령 보좌관들은 테러와 어떻게 싸워야 할지 많이 배웠다고 말한다. 그들의 말은 말하나마나 옳다. 한 발 물러나 정보당국자들에게 실무를 맡긴 부시의 결정은 정확했다. 9.11 이전 미국과 우방에는 지하드 세포조직에 침투 가능한 첩보원이 거의 없었다.

미국 정보당국은 영국 측이 음모집단 내부에 첩자를 심었다는 언론 보도를 반박했다. 하지만 영국 첩보당국이 테러에 환멸을 느낀 무슬림 사회의 도움(아마 하나 또는 그 이상의 정보)을 받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국내외의 경쟁적인 정보기관끼리 아직도, 때로는 서로 으르렁대고 속이며 밥그릇 싸움을 하지만 그들도 알카에다가 세계적인 위협으로 떠오르기 전보다는 더 잘 협력한다. "모두가 필요한 대로 움직이고 기능했다"고 부시의 한 고위 보좌관은 말했다. "덕택에 이번 작전이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 없이 매끄럽게 진행됐다."

불행히 적들도 이 테러의 신시대에서 많이 배웠다. '고위 표적'(알카에다 고위 지도자)이 아무리 많이 잡혀도 실체 없는 테러 조직망이 퍼져가며 새로운 지도자가 부상하는 듯하다. 알카에다 지휘 계통의 중심부가 아직도 권한을 행사하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인터넷과 광신적인 종교 감화의 영향으로 알카에다는 변신하고 확산해 나간다.

새로운 지하드 전사들은 선배들의 실험과 실수에서 배운다. 최근의 폭파 음모는 어느 면에서 급진 과격 이슬람과의 투쟁에서 서방이 거둔 승리였다. 음모는 저지됐다. 그러나 가까운 역사를 돌아보면 테러범들이 어떻게 지난 음모를 새로운 방식으로 바꾸어 가는지 보여준다.

테러범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되기 전 미국 정보당국은 지금과 같은 규모가 되리라 상상하지 못했다. 백악관 국가안보 당국자였던 스티븐 사이먼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다른 나라의 테러대책 요원들을 만났다. 그는 이들을 '손톱 뽑기 전문가'라고 익살맞게 불렀다. 그는 1994년 가을 필리핀에서 몇몇 대사관 직원과 잡담을 나누던 중 태평양 상에서 테러 폭탄의 표적이 됐던 한 일본행 필리핀 항공기의 기묘한 사건에 관심이 갔다.

조종사는 비행기를 착륙시켰지만 좌석 밑에 설치된 폭탄이 터져 한 일본인 사업가의 몸이 두 동강 났다. 경찰 관계자들은 동기를 찾아내지 못했다. 그 사업가는 암살의 표적이 될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중에야 그 폭발이 끔찍한 계획의 리허설이었으며 그 사업가는 수많은 목숨을 빼앗으려는 테러행위의 첫 번째 희생자에 불과했음을 사이먼은 깨달았다.

그 음모는 '보잉카 작전'이라 불렸다. 태평양 상공에서 10여 대의 항공기를 폭파시키겠다는 목표였다. 그 계획은 대단히 복잡했다. 액체 폭발물로 폭탄을 만들어 비행기 좌석 밑에 설치하고 타이머를 작동시킨 뒤 테러범들은 예정된 중간 기착지에서 내린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불운이 따랐다. 마닐라의 한 아파트 주방에서 화재가 나는 바람에 경찰이 폭발물을 혼합하던 테러범들을 발견하게 됐다. 필리핀 경찰은 자백을 받아냈고 그것으로 그 같은 기묘한 음모는 막을 내리는 듯했다. 하지만 런던과 파키스탄에서 드러났듯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과격 이슬람이 낳은 알카에다와 지하드 전사들은 단호함과 인내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 그들에게 이교도들과의 투쟁은 끝이 없다. 12세기 십자군 전쟁은 바로 어제의 일이었다. "그들은 일단 옳다고 여기면 끈질기게 달려든다"고 사이먼은 말했다.

현재 컨설턴트로 일하는 그는 '다음 공격(The Next Attack)'의 저자다. 사이먼은 사례를 쭉 열거한다. 2000년 초 알카에다는 예멘의 아덴 항에서 미국 구축함을 공격하려 했다. 그러나 폭발물을 너무 많이 실어 쪽배가 가라앉았다.

그래서 몇 달 뒤 테러범들은 더욱 튼튼한 보트를 장만, 미국 전함 콜의 측면에 구멍을 내 거의 침몰 직전까지 몰고 갔다. 93년 2월 이슬람주의 과격파들은 세계무역센터를 무너뜨리려 했지만 폭탄트럭에 사용된 폭발물의 화력이 부족했다. 이들은 8년 뒤 제트기 두 대를 납치해 다시 테러를 시도했다.

보잉카 작전의 후속타를 계획했던 테러범들은 계속 배우며 발전했다. 폭파범들이 비행기에서 내릴 필요가 없어졌다. 그 이슬람주의자들은 한 무리의 순교 희망자들을 찾아낸 듯했다. 이들은 각기 액체폭탄 재료를 몸에 지닌 채 2 ̄3명씩 짝을 지어 비행기에 오른다.

매니큐어 제거제와 농축 과산화물에서 추출 가능한 이 성분들은 통상적으로 공항 보안장치에 감지되지 않는다. 음악 재생기처럼 간단한 전기장치도 가져간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지하드 전사들은 "그들 계획을 단순하게 만들어 준다"고 사이먼은 지적했다.

자원자들은 무한정 공급되는 듯하다. 가장 최근의 음모와 관련, 영국 경찰이 체포한 24명을 보면 레이스 커튼이 드리워진 런던 교외 주거지의 깔끔한 중산층 주택에 사는 예의 바른 젊은 남성들인 경우가 많다(영국 법률 체제 아래서는 기소하기 전까지 체포.조사 기간이 최대 한 달이다. 체포 며칠 뒤 한 남자가 석방됐다).

9.11보다 더 웅장한 장관을 연출하려는 오사마 빈 라덴의 무자비한 욕망은 적어도 당분간은 저지된 듯하다. 그러나 그나 그의 후계자, 또는 더 많은 모방자와 신봉자들이 다시 그런 시도를 하리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공항 검색대 앞에 길게 늘어선 미국인들은 휴대용 가방에 치약이나 헤어젤을 다시 넣고 다닐 날이 올지 의문을 품는다. 그들에겐 무력감이 느껴졌다. 9.11 이후 몇 달, 몇 년 동안 끈질기게 사라지지 않던 불안이 되살아났다. 부시는 9.11 테러 이전보다 안전하다고 미국인을 안심시키려 했다.

동시에 딕 체니 부통령은 반전 후보 네드 라몬트가 조셉 리버먼 상원의원에게 승리를 거둔 일은 '알카에다 같은 무리들'의 사기를 높여줄 뿐이라고 경고했다(톰 리지 전 국토안보부 장관은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전 동료의 발언에 발끈했다. "부통령은 그렇게 볼지 모르지만 나는 다르게 본다"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 미국인 대다수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테러 음모 저지로 부시의 지지도는 약간 높아졌다. 새로운 뉴스위크 여론조사에서 부시의 테러 대처방식을 지지한다는 응답자는 55%로 5월의 44%에 비해 높아졌다. 그러나 테러 문제가 과거 선거 때만큼 공화당원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 듯하다.

2002년 8월 국내외에서 공화당이 민주당보다 테러에 더 잘 대처하리라 믿는다는 유권자가 무려 25%포인트나 많았다(51% 대 26%). 이제 그 격차는 불과 5%포인트 차로 줄었다. 전체적으로 미국인 절반은 9.11 이전보다 테러 위협에서 더 안전해졌다고 생각한다. 과반수(63%)는 여전히 이라크 전쟁으로 더 안전해지지 않았다고 믿는다.

테러와의 전쟁은 꾸준히 정치에 발목이 잡혔다. 의회의 정치적 압력(공교롭게도 리버먼이 주도했다) 때문에 부시도 어쩔 도리 없이 애당초 주저하던 태도를 번복하고 국토안보부 창설에 뜻을 같이했다. 국토안보부는 나중에 비대하고 방만해졌다.

리지 장관이 색깔로 분류된 경계경보를 발동하며 호들갑을 떨었던 일이나, 그의 보좌관들이 덕트 테이프(화학전 때 창문 밀봉용)를 비축해야 한다고 호소했던 일은 심야 풍자 프로그램의 소재가 됐다.

그러나 전 세계의 정보 기관들은 의미있는 수준까지 국내 정치의 제약을 극복했다. 그들은 동료 첩보원들과 유대감을 갖는다(때로는 현금이 도움을 주기도 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의 정보 당국자들은 CIA로부터 돈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CIA는 이른바 '연락 창구 관계'에 크게 의존한다. 일례로 요르단의 정보기관은 CIA보다 테러 조직 침투가 더 용이하다. 미국 첩보기관들은 아직도 아랍어 사용자 부족에 허덕인다. FBI에서는 감시 테이프가 번역자의 손에 넘어가기까지 몇 주가 걸렸다. 그러나 CIA는 몇몇 의외의 정보원으로부터 은밀한 도움을 받았다.

시리아의 정보기관 무카바라트조차 때때로 조금씩은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다. 미국 정보당국은 부시 행정부를 공개적으로 경멸하는 프랑스와 독일 같은 국가의 정보기관 도움도 기대할 수 있었다.

영국인들은 중동의 미스터리를 간파해 왔다고 오랫동안 자부했다. 제국시대 때부터 그들은 중동 번화가와 시장에서 오랜 첩보활동의 경험이 있다. 파키스탄의 현지 정보기관은 지금도 영국 통치를 기억하고 반감이 있다고 한다. 거기서는 미국의 CIA가 중재자 역할을 해 왔다.

각국 첩보기관들 간 공조체제 강화

이른바 특별한 관계 덕택에 영국과 미국의 첩보기관은 대체로 사이좋게 지내고 협력하려 한다. 그러나 9.11 이후 얼마간 미국의 첩보 당국자들은 영국 측이 현지 이슬람 사원의 선동자들에게 느슨하게 대처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영국 측은 이에 맞서 미국인들이 정보원을 제때 알려줬더라면 지난해 7월 7일의 지하철 폭파사건을 저지했을지도 모른다고 비난했다. 영국 첩보당국은 수다스러운 미국 정보 당국자들이 정치적 술수를 부리며 언론에 정보를 흘리는 경향 때문에 종종 당혹스러워 한다.

2004년 여름 민주당은 전당대회에서 존 케리 상원의원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바로 직후 부시 정부는 CIA와 파키스탄 정보기관이 알카에다 정상회담을 적발했다고 공표했다. 지하드 전사들이 미국 내 세계은행 등 금융 중심지 공격 음모를 꾸몄다고 관계자들은 믿었다.

영국인들은 서둘러 영국 내 목표물 공격을 음모하던 이슬람 전사 그룹을 체포했다. 외교적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고위 정보소식통에 따르면 그 후 영국 정보원들은 미국 정보원들과 비밀 공유를 더 주저하게 됐다.

물론 영국 첩보기관들(외국 정보를 다루는 MI 6와 국내 문제를 담당하는 MI 5)이 제임스 본드처럼 냉철하고 매끄럽게 활동한다는 생각은 오해다. 영국인들은 잇따른 정보 관련 실책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가장 최근의 일로 한 주택을 수색할 동안 경찰이 한 남자에게 총격을 가했다. 첩보원들은 그 집에서 시안화물 폭탄이 제조되고 있다고 믿었다. 용의자는 컴퓨터에 아동 포르노물을 저장한 혐의로 고소당했지만 테러와는 아무 관련이 없었다.

그렇지만 영국 첩보당국이 항공기 폭파 음모를 파헤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비밀 정보 관련 내용이라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미국과 영국 테러방지 당국자들에 따르면 영국 측은 음모 용의자들을 1년 이상 추적해 왔다.

영국인들이 정확히 어떻게 그 음모 관련 정보를 입수했는지는 불확실하지만 무슬림 사회 내부의 몇몇 정보원이 경찰과 내통했음을 말해주는 강력한 시사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정보기관들은 목표물을 지켜보며 음모가 가능한 한 오래 전개되도록 내버려 두다가 수사망을 좁혀 잡아들인다. 영국 첩보당국도 여러 달 동안 지켜보며 기다렸다.

영국과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 때문에 당국은 행동을 개시했다. 모의 용의자들이 비행기 티켓 구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예행연습 목적이었다. 알카에다의 일반적 관행은 조심스러운 표적탐사와 예행연습이다. 9.11 납치범들은 실제 공격 이전에 미국을 횡단 비행하는 예행연습을 했다고 알려졌다.

영국 첩보당국의 철저한 감시를 받던 용의자들은 인터넷에 들어가 미국행 항공편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8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고 미국의 한 고위당국자는 말했다. 콘티넨털.아메리칸.유나이티드 등 적어도 미국의 3개 항공사가 표적이 됐다. 모두 영국 공항에서 미국으로 향하는 정기 직항 항공편이었다.

액체 폭탄은 스포츠 음료와 똑같아 보인다

일부 보도에 따르면 용의자들은 액체폭탄 제조에 쓰일 화학 재료를 이미 입수했다. TATP(트리아세톤 트리페록사이드) 폭탄은 매니큐어 제거제 같은 솔벤트를 농축 과산화물과 혼합하면 만들어진다. 이 제조법은 그 뛰어난 살상력 때문에 이슬람 과격파에 때때로 '사탄의 어머니'라 불린다.

병에 넣으면 스포츠음료와 똑같아 보인다. 액체 폭발물의 위협은 전혀 새롭지 않다. 보잉카 작전을 모의한 이슬람주의자들은 1995년에도 이의 사용 계획을 세웠다. 요즘도 테러범들은 TATP를 이용해 자살 폭탄을 만든다. 오래 전부터 전문가들은 액체 폭발물을 탐지하도록 공항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고 경고해 왔지만 아무런 조치도 없었다.

무기 탐색에 보안체제가 집중되는 경향이다. 9.11 납치범들이 사용한 총칼 또는 박스 커터를 찾거나 리처드 레이드의 구두 바닥에서 돌출한 퓨즈를 적발한다. 미국과 영국 정보 당국은 액체 폭발물로 비행기를 폭발하려는 음모를 항공사에 조기 통보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결정일지도 모른다. 공항 보안대에서 갑자기 아기 젖병을 확인하고 치약과 헤어젤을 금지하기 시작한다면 당국이 뒤를 쫓는다는 낌새를 테러범이 알아챈다고 당국자들은 우려했다.

수사관들은 자폭 테러임을 알았다. 한 사법 당국자에 따르면 용의자 한 명의 '순교 비디오'를 입수했다. 그 당국자는 수사에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이유로 더 이상 자세한 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자폭 테러범들은 통상 자신의 조물주를 만나러 떠나기 전에 카메라 앞에서 마지막 유언과 증언을 한다.

모의 용의자 한 명이 런던 교외 주요 허브 공항인 히스로 공항의 보안요원으로 일한다는 사실을 영국 정보당국이 알아내면서 더 큰 경보가 울렸다. 그는 터미널 어느 곳에나 출입 가능한 배지를 보유했다(체포된 용의자 중 한 명은 아민 타리크로 밝혀졌다. 키가 크고 면도를 하지 않은 이 젊은이는 이웃 사람들에 따르면 히스로 공항에서 일했다).

대규모 소탕의 직접적 계기는 파키스탄에 있는 주동자의 체포였다. 라시드 라우프라는 영국 국적자였다. 2002년 사촌 살해 혐의로 영국에서 수배 중인 라우프는 정보당국자들에게 음모의 주모자로 지목됐다. 하지만 그가 유일한 주모자는 아니라고 한다. 파키스탄 당국이 라우프를 체포한 정확한 이유는 확실치 않다. 영국 측은 파키스탄 측이 너무 빨리 움직였다고 불평했다.

그 수사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파키스탄 당국자에 따르면 라우프는 신문에서 곧바로 범죄를 자백했다. 신문이 부드럽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파키스탄 보안기관은 심한 신문 방법으로 유명하다. 라우프가 체포되자 그와 연결된 누군가 영국에 있는 공모자들에게 경고하고 심지어 작전개시 명령을 내리려 했을지 모른다는 보도도 있었다.

대단히 민감한 정보라 공개적으로 논의하기를 원치 않은 한 정보 당국자는 라우프의 공범자가 다른 모의 용의자들에게 라우프의 체포를 경고하는 메시지를 보낸 사실을 적발했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그 메시지는 다른 용의자에게 공격을 계속 진행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어쨌든 라우프의 체포를 계기로 영국 측은 8월 9일 저녁부터 런던과 브리티시 미들랜즈의 가옥 여러 채를 급습한 듯하다. 어설픈 대결과 총격전을 피할 목적으로 런던의 경찰은 비무장으로 들어갔다(당국은 파키스탄의 알카에다와 밀접하다고 알려진 전사 마티어 레만이 음모와 관련됐는지도 조사했다).

그물이 쳐지기 전에 용의자가 시야에서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언제나 있다. 정보 문제라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당국자 두 명에 따르면 어느 시점엔가 MI 5가 감시하던 용의자 중 한 명이 잠시 '실종'됐다. 경계가 발동됐고 영국 당국은 그를 찾아냈다. 그러나 2차 공격의 가능성을 둘러싼 불안감은 남았다. 어쩌면 몇 주, 몇 달 지속될지도 모른다.

체포 뒤 며칠이 지났지만 아직도 여행자들은 보안 검색대 앞에 장사진을 이루고 소지품 검사를 받거나 수색견의 점검을 받으며 대혼란을 이룬다. 승객들은 콘택트렌즈 케이스.헤어 젤.얼굴 크림을 화물로 보내야 하며 물병이나 다른 음료를 휴대하지 말아야 한다. 영국에서는 앞으로 혼잡한(그리고 말하나마나 더 긴장된) 비행기 여행을 하려면 노트북과 MP3 플레이어 없이 지내야 한다.

미국 정보당국은 이번 음모의 적발에서 아주 사소한 역할을 한 듯하다. 도청을 승인하는 비밀정보 법정에 도청 요청이 급증했다. 다른 모든 정보 당국자들과 마찬가지로 민감한 문제라며 익명을 요구한 한 소식통의 말이다. FBI와 DHS는 계속 미국과의 연관성을 찾았지만 전혀 없었다고 한 고위 사법 당국자는 말했다.

정보 당국자들은 부시 정부의 비밀 무영장 감시작전이 동원됐다고 암시했다. "우리는 도구함의 도구를 모두 사용했다"고 한 당국자는 말했다. 최고의 전자정보 기관인 NSA가 미국 전화회사의 교환기지국을 통해 전해지는 파키스탄과 영국 간의 통화를 엿들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방해하거나 정보를 숨기지는 않은 듯하다. 이는 배타적이고 의심 많은 정보계에서는 발전이라 할 만하다. "이제 적과 맞설 때 필요한 준비가 더 잘 돼 있음을 보여준다"고 프랜 프레이고스 백악관 국토안보 보좌관은 뉴스위크에 말했다. "FBI, CIA, NSA 간의 협력이 전례없이 잘 이뤄진다. 아무도 정보를 숨기려 하지 않았다."

9.11 이후 서방의 정보계는 개선됐다. 문제는 적이 더 빨리 배웠느냐는 점이다. 할리드 샤이크 호마메드 같은 알카에다 고위 공작원을 살해하거나 생포한다 해서 알카에다의 혁신이 중단되지는 않는다.

"알카에다는 과거나 지금이나 비슷해 보인다는 점이 아주 걱정스럽다"고 빌 클린턴 대통령 정부에서, 그리고 부시 정부에서 잠시 테러방지 책임자를 맡았던 리처드 클라크는 말했다. "좋은 소식이 아니다. 알카에다가 아직도 건재하다는 뜻이다." 이 단체는 복제하고 증식하는 능력을 가진 듯하다. "두더지 잡기 게임"이라고 클라크는 말했다. "우리가 하나를 죽이거나 잡을 때마다 셋이 불어나는 격이다."

영국과 미국의 정보 당국자들은 새 알카에다가 어느 정도까지 옛 알카에다를 위해 일하거나 관련됐는지 확신하지 못하는 듯하다. 빈 라덴의 2인자 알자와히리는 아직도 은신처에서 훈계하고 지시하는 비디오 테이프를 내보낸다. 그의 은신처는 파키스탄 북서부 무인 지대의 어딘가다.

그러나 그가 작전 지령도, 어쩌면 전령을 통해 내보낼까(알카에다는 추적이 가능한 휴대전화를 오래전부터 사용하지 않는다). 항공기 폭파 음모의 지도자로 보이는 라시드 라우프에게 정보 당국자들은 특히 관심을 보였다. 그는 전화카드와 신용카드를 계속 바꾸어 가며 최근 몇 주 파키스탄 정보당국의 추적을 받는 동안 인터넷 카페에 들렀다.

알카에다는 1990년대 말 더 부족적이고 폐쇄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직이 확대되고 다각화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첩보원의 침투가 더 용이해졌을지 모른다며 서방 정보당국은 반가워한다. 어쨌든 영국 측은 항공기 폭파 음모 조직 내부에 첩보원을 심어뒀든, 심어두지 않았든 음모자들을 도청하고 추적했다.

신참들이 가령 9.11 납치범들에 비해 열정과 기술이 부족함을 보여주는 증거도 있다. 지난해 7월 7일 폭탄테러 2주 뒤 런던 지하철을 공격하려던 지하드 전사들은 폭탄을 제대로 제조하지 못했다.

"잘못하면 여왕이 아일랜드에서 살게 될 것"

물론 이라크는 계속 미래 테러범들의 모집 터전일 뿐만 아니라 양성소 역할을 한다. 젊은 지하드 전사들은 무기 사용법, 폭탄 제조법을 배운다. 적을 두려워하지 않는 학습도 중요하다. 바그다드의 한 미국 정보당국자는 민감한 문제에 관해 지시를 받았다는 이유로 익명으로 뉴스위크에 말했다.

"우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우리는 인간도 아니었다. 그 정도로 우리를 무서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군들도) 하나도 특별하지 않다, 똑같은 인간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하룻밤 새에 우리 때문에 무슬림 세계가 과격화하면서 "알카에다의 규모가 세 배로 불었다"고 이 당국자는 말했다.

"당시 (9.11)에는 세계 사람의 90%가 우리를 동정했다고 본다면 우리가 국경을 넘었을 때 또다시 오랜 망설임이 있었다. 그 후 민심이 떠나가더니 중립적 입장에 있던 이들도 등을 돌렸다. 이슬람 세계 전체가 보수 쪽으로 한발짝 옮겨갔다." 이 당국자는 미국이 빨리 이라크 측에 정권을 넘기고 그 나라를 떠나야 한다고 마지못해 결론을 지었다. 하지만 그럴 경우 폭력이 크게 늘어나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그렇게 되면 큰 일이라고 잘메이 하릴자드 이라크 주재 미국대사는 자택에서 가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주장했다. 그의 자택은 그린 존 안쪽에 있는 사담 후세인 시대의 대리석 저택이다. "우리가 철수한다면 뭐가 남겠는가.

필경 (알카에다가) 이라크 일부를 장악할 가능성이 아주 농후하다." 이라크가 9.11 이전의 아프가니스탄처럼 될지 모른다고 그는 경고했다. "우리가 파병까지 한 마당에 이라크를 잃으면 그 지역과 전 세계가 알카에다로부터 더 큰 위험에 처하게 된다"고 대사는 말했다.

부시는 뉴욕의 시가지보다는 이라크에서 테러리스트들과 싸우는 편이 더 좋다고 끈질기게 주장했다. 그러나 영국의 시가지에도 갈수록 테러범들이 흘러드는 듯하다. 오래전부터 유럽과 미국의 정보기관 사이에는 '런더니스탄(Londonistan)'이란 농담이 나돌았다.

갈퀴 손을 가진 악명 높은 아부 함자 알마스리 같은 과격파 지도자들이 증오를 토해내고 테러 용의자들을 품어주는 런던의 동네를 가리키는 말이다. 최근 런던경시청은 이곳을 단속했다. 그러나 미국 정보당국자에 따르면 오랫동안 영국 정보당국은 내부에 적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는 영국 내의 과격파-원리주의 문제를 해결하도록 MI 5를 설득하지 못했다"고 우방을 향해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싶지 않은 전 고위 정보당국자는 말했다. "그 문제를 거들떠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FBI의 전 테러방지 책임자 존 오닐의 어려움을 돌이켰다.

오닐은 알카에다의 위협에 본격적으로 초점을 맞춘 최초의 미국 당국자로 손꼽혔다(공직을 떠나 사기업에 들어간 뒤 세계무역센터 테러 공격 때 참변을 당했다). "언젠가 (오닐과 함께) 그곳에 있을 때 오닐이 MI 5 관계자를 향해 말했다.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여왕이 아일랜드에서 살게 된다고."

미국 당국자들은 대체로 미국 내 이슬람 극렬주의자들의 위협을 작게 느낀다. 유럽에는 무슬림 청년이 많다. 그들의 부모는 이주 노동자로 중동이나 남아시아에서 건너갔지만 현지 사회에 제대로 동화하지 못했다.

평균적인 유럽인보다 소득이 적고 종종 이질감과 소외감을 느낀다. 새로운 지배를 꿈꾸는 과격파 종교 지도자들이 그런 감정을 부추긴다. 반대로 미국 무슬림은 현지 문화에 잘 융화되고 중산층에 더 가깝다. 실제로 무슬림 단체들의 조사에 따르면 평균적인 미국인보다 소득이 더 높다.

그렇다고 미국의 무슬림 사이에서는 과격파 이슬람이 추종자들을 찾지 못하리라고 제멋대로 가정한다면 오산이다.

하버드대에서 테러에 관해 강의하는 제시카 스턴은 '무슬림 티모시 맥베이'의 출현을 경고한다. 이 오클라호마시티 폭파범은 고립된 10대 시절을 보내다 군에 들어가 1차 걸프전을 겪은 뒤 무서운 테러리스트로 변했다. 무슬림 청년들은 미군에 입대해 이라크 전투에 파견된다.

그곳에서 끔찍한 일을 목격한다고 스턴은 말했다. 이슬람 시민들이 총격전 도중 사망하거나 드물지만 가끔 미군에게 학대받는 광경이다. 이들은 무기 다루는 법과 약간의 군사훈련을 받고 다른 군인과 마찬가지로 때로는 정신적 외상을 안고 귀가한다.

이슬람으로 개종한 뒤 훗날 워싱턴DC에서 저격수가 된 흑인 존 무하마드가 전형적인 사례다. "그런 일이 또다시 일어나지 않는다면 오히려 놀라운 일"이라고 스턴은 말했다.

미국 정보당국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은 과격파 지하드 전사들이 핵무기를 손에 넣어 미국의 항구로 밀반입하는 일이다. 그런 공격에 안전을 보장할 만한 기술은 현재 없다. 2002년 컨테이너선 팔레르모 세내터가 뉴저지주 뉴어크 항에 정박했을 때 핵물질 흔적 같은 게 감지 장치에 잡혔다.

알고 보니 컨테이너 안의 물건은 도자기였다. "문제는 배가 정박할 때는 너무 늦는다는 점"이라고 팻 다무로는 말했다. 그는 FBI에서 테러 대책을 담당했으며 현재 줄리아니 소유 '보안과 안전' 회사의 최고경영자다. "원산지 항구를 떠나기 전에 위협을 감지해야 한다."

지하드 전사들은 9.11 스타일의 공포 쇼를 연출하는 데 핵무기가 필요하지 않다. 자폭 테러범은 통상 몇 파운드의 폭발물로 자기 주변 사람들을 죽인다. 그러나 비행기에서는 몇 그램만으로도 수백 명이 죽는다. 리처드 레이드는 불과 60g의 폭발물 재료를 구두 뒤축에 숨겼다.

성냥에 불을 붙여 잘 들고만 있었다면 300명 이상의 승객이 탑승한 점보기를 추락시켰을 것이다. 로드아일랜드 대학의 폭발물 전문가인 지미 옥슬리 화학과 교수는 주스 병에 든 액체 폭탄에 항공기의 알루미늄 표면이 파열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설명했다. "처음에는 그렇게 극적이지 않다.

커다란 불덩이가 생길지는 확실치 않다." 그는 뉴스위크에 말했다. "시각적 효과는 크지 않다. 기내의 압력이 빠져나간다. 그러나 처음에는 영화에서처럼 사람들이 기체 밖으로 빨려나가지는 않는다. 대신 작은 구멍이 점차 커지면서 비행기 구조체가 뜯겨 나간다. 그리고 기체 자체가 불안정해지며 분해된다. 이

같은 과정이 서서히 시작되다가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다. 누구도 그런 일을 당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This story was written by Evan Thomas with reporting from Mark Hosenball,

Michael Isikoff, Holly Bailey, Daniel Klaidman, Dan Ephron, Ron Moreau, Sami Yousafzai, Zahid Hussain, Scott Johnson, Christopher Dickey,

Stefan Theil, John Barry, Eleanor Clift, Rana Foroohar, Emily Flynn Vencat, William Underhill, Silvia Spring and Johannah Cornblatt

(뉴스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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