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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이건희 컬렉션이 고른 월북작가…고향으로 돌아오다

중앙일보 2021.07.22 11:00

[더,오래]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105)

지난 7월 7일 가족들과 모처럼 대구미술관을 찾았다. 그곳에서 열리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보기 위해서다. 장대비가 쏟아진 날이었지만 관람객의 발길은 이어졌다. 고(故) 이건희(1942~2020) 회장은 필자로선 중앙일보 재직 시절 먼발치에서 몇 차례 뵌 적이 있는 삼성의 최고 경영자였다. 대구미술관이 마련한 전시회 ‘웰컴 홈’에는 대체 어떤 작품이 나왔을까 우선 궁금했다. 그날은 마침 ‘이건희 미술관’의 입지 발표가 예정돼 있기도 했다.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 송의호]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에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 송의호]

 
이건희 컬렉션은 이 회장의 문화보국 철학이 녹아 있는 예술품 수집의 결정체다. 고인은 생전에 “문화적 특성이 강한 나라의 기업은 튼튼한 부모를 가진 아이와 같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기업 반열에 오른 삼성을 이끈 이 회장은 기업경영뿐만 아니라 사회와 미래세대를 생각하는 안목으로 예술작품과 문화재를 수집했다. 지난 4월 이건희 컬렉션은 고인과 유족의 뜻에 따라 국민에게 돌아왔다. 
 
대구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이인성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 이인성은 이쾌대와 함께 한국 근대미술을 이끌었다. [사진 대구미술관]

대구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이인성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 이인성은 이쾌대와 함께 한국 근대미술을 이끌었다. [사진 대구미술관]

 
알고 보니 대구에는 이번에 모두 21점이 기증되었다. 기증 작품 작가는 김종영(1점), 문학진(2점), 변종하(2점), 서동진(1점), 서진달(2점), 유영국(5점), 이인성(7점), 이쾌대(1점) 등이다. 모두 대구나 경북지역 향토 출신이다.

 
대구미술관 2층으로 올라갔다. 전시장 입구에는 삼성의 모태였던 대구에서 세계로 뻗어 나간 삼성의 성장 과정과 삼성이 기여한 문화예술 지원 등을 시기별로 ‘영상벽화’로 처리했다.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입구에는 대구가 삼성의 모태임을 알리는 ‘벽화영상’이 만들어져 있다. [사진 송의호]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입구에는 대구가 삼성의 모태임을 알리는 ‘벽화영상’이 만들어져 있다. [사진 송의호]

 
첫 번째 전시실을 찬찬히 돌아 끝나갈 무렵 한 작품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쾌대의 ‘항구’(33.5x44.5㎝)라는 유화 그림이다. 배 서너 척이 연안에 우람하게 정박한 모습이다. 가운데 배 한 척은 클로즈업돼 화면을 가득 채우고 하늘은 해가 떠오르려는 듯 붉은 빛이다. 힘과 역동성, 호쾌함이 한꺼번에 느껴진다.
 

대구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중 월북화가 이쾌대의 ‘항구’ 작품. [사진 대구미술관]

 
그림에 제작 연대가 붙어 있다. 1960년이다. 알려진 대로 이쾌대(1913~1965)는 향토 출신 월북작가이다. 칠곡에서 태어나 대구 수창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후 일본 데이코쿠(帝國) 미술학교에 입학하여 ‘하라바츠’ ‘녹포사’ 공모전 등에 입상했다. 귀국 후 1941년 ‘조선신미술가협회’를 조직하여 다양한 사조를 받아들이고 광복 후 1950년 초까지 성북회화연구소를 열어 후학을 가르쳤다. 이쾌대는 6‧25 전쟁 중 거제에서 포로로 수용됐고 이때 이주영에게 미술해부학의 기초를 가르치기 위해 책을 만들기도 했다. 월북 이후 1954년부터 전후 건설성 미술제작소의 미술가, 조선미술가동맹 평양시‧자강도 현역 미술가로 선출되었다. 또 1957년에는 조선미술가동맹 유화분과 임원으로 뽑혔다. 이게 지금까지 알려진 월북 이후 이쾌대의 이력이다. 그는 월북 전에는 한국적 화법과 전통 소재를 구사하거나 인체의 표현에 원숙한 화법을 보였다. 이쾌대는 특히 민족적 정체성을 밝히는데 많은 관심을 두었고 1940년대 말에는 ‘군상’ 시리즈 역작을 내놓았다. 대구미술관은 이쾌대의 ‘항구’ 작품을 “그의 북한에서 활동을 알려주는 반가운 작품”이라며 “여전히 원숙한 그의 기량이 잘 나타난다”고 평했다.
 
이건희 컬렉션의 이쾌대 작품은 단 한 점이지만 월북 예술가, 나아가 통일의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기회가 되었다. 대구미술관 문현주 홍보담당자는 “이건희 컬렉션은 컬렉터의 지명도 때문에 어떤 작품이 나왔을까 궁금해서 처음 미술관을 찾는 관람자가 크게 늘었다”고 뜻밖의 성과도 전했다. 이런 것이 바로 이 회장이 생각한 나눔이 아닐까. 그날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립 이건희 미술관’의 입지를 서울로 발표했다. 대구에는 이후 ‘이건희 미술관 서울건립 불공정하다! 취소하라!’ 등의 플래카드가 거리 곳곳에 나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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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의호 송의호 대구한의대 교수ㆍ중앙일보 객원기자 필진

[송의호의 온고지신 우리문화] 은퇴하면 많은 일이 기다리고 있다. 그중에는 문중 일도 있다. 회갑을 지나면 가장을 넘어 누구나 한 집안의 어른이자 문중을 이끄는 역할을 준다. 바쁜 현직에 매이느라 한동안 밀쳐 둔 우리 것,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한다. 우리의 근본부터 전통문화, 관혼상제 등에 담긴 아름다운 정신, 잘못 알고 있는 상식 등을 그때그때 사례별로 정리할 예정이다. 또 영국의 신사, 일본의 사무라이에 견줄 만한 우리 문화의 정수인 선비의 정신세계와 그들의 삶을 한 사람씩 들여다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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