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더오래]일본 시가현 지나는 북위 35도선은 ‘백제망향선’

중앙일보 2021.07.22 08: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당에 헤딩(59)

도쿄국립박물관 헤이세이관(平成館)에서는 지난 7월 13일부터 특별전 ‘쇼토쿠 태자(聖徳太子)와 호류지(法隆寺)’가 열리고 있다. 쇼토쿠 태자(574~622) 서거 1400년을 기념하는 전람회로 9월 5일까지다. 쇼토쿠 태자는 스이코 천황이 죽기 전, 48세에 세상을 떠나 천황이 되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업적은 대단한 것이어서 태자를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태자 신앙’까지 생겼다. 그 신앙이 ‘성덕종(聖徳宗)’이며 총본산이 호류지이다. 그 호류지가 소장하고 있거나 과거에 소장했던 불상과 보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도쿄국립박물관, 헤이세이관 벽에 붙어있는 특별전 안내. [사진 양은심]

도쿄국립박물관, 헤이세이관 벽에 붙어있는 특별전 안내. [사진 양은심]

 
특별전에는 메이지 시대에 ‘폐불훼석(廃仏毀釈)’ 정책으로 운영이 어려워진 호류지가 황실에 헌납했던 불상과 보물들도 전시되고 있다. 황실이 소장했던 보물들은 전쟁이 끝난 후 국가에 귀속되어 도쿄국립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쇼토쿠 태자에 대해서는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아홉 명이 동시에 말하는 걸 다 알아듣고 대답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는 정도다. 일본 역사에 관심이 없었기에 굳이 알려고는 하지 않았다. 그러다 다도가 리큐(利休)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리큐를 다룬 영화를 보다 보니 조금씩 일본 역사에 관심이 생겼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도쿄국립박물관. 우에노 공원 안에 있다. [사진 양은심]

특별전이 열리고 있는 도쿄국립박물관. 우에노 공원 안에 있다. [사진 양은심]

 
그럴 즈음 유홍준의 『나의 문화 답사기 일본편』 세 권을 만났다. 일본 역사에 대한 관심에 기름을 부어주었다. 한반도에서 온 도래인들에 의해 일본 문화가 발전했다는 걸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고, 그 자손들이 아직도 조상을 기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땐 뜨거운 무언가가 샘솟았다.
 
여담이지만 일본 생활이 30년 정도 되다 보니 일본어가 불편하지는 않다. 그러나 책을 읽을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일본어로 된 책은 ‘읽어야 읽힌다’. 하지만 한글책은 ‘읽지 않아도 읽힌다’. 엄청난 차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문화 답사기 일본편』은 나에게 아주 소중한 책이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볼 때의 시점과 자세를 조언해 주었다.
 
‘규슈 편’을 읽은 후 가고시마현(鹿児島県)의 ‘심수관(沈壽官)가’와 ‘도고 시게노리(東郷茂徳) 기념관’을 찾아가기도 했다(연재 24회). 그 후 일상에 치여 기회를 잡지 못했고, 코로나로 발목이 잡히면서 도래인의 발자취를 찾아보겠다는 다짐은 허물어져 갔다.
 
그러던 중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열리는 ‘쇼토쿠 태자와 호류지’라는 특별전 소식을 알게 되었다. 책이나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불상과 보물들이 전시장에 모여 있었다. 작품을 소개해주는 음성 안내가 얼마나 고마운지 몰랐다. 되풀이해서 들어가며 작품을 감상했다.

 
전시장 입구에서 모셔져 있는 여의륜관음상반가상. [사진 양은심 제공]

전시장 입구에서 모셔져 있는 여의륜관음상반가상. [사진 양은심 제공]

쇼토쿠태자 45세상. [사진 양은심 제공]

쇼토쿠태자 45세상. [사진 양은심 제공]

 
쇼토쿠 태자 서거 500년을 기념하며 만들어진 ‘45세상’은 전시실 중간쯤에 있었다. 관람자가 봤을 때 태자의 오른쪽에는 태자의 스승이었던 고구려 승려 혜자 법사(恵慈法師. 에지 호시)와 이복동생 소마로오(卒末呂王)의 조각상, 왼쪽에는 태자의 아들 야마시로노 오에노오(山背大兄王)와 다른 이복동생 에구리오(殖栗王)의 조각상이 자리하고 있다. 태자의 아들은 의젓한데 동생들은 표정이 재밌어 웃음이 나왔다. 1년에 딱 한 번, 그것도 호류지에서만 공개한다는 국보를, 도쿄에서 밝은 조명 아래서 볼 수 있다는 게 축복이었다.
 
쇼토쿠 태자 45세상과 함께 진열되어있는 조각상. 오른쪽부터 쇼토쿠 태자의 스승 고구려의 혜자스님, 태자의 이복동생, 또다른 이복동생, 그리고 아들. [사진 양은심 제공]

쇼토쿠 태자 45세상과 함께 진열되어있는 조각상. 오른쪽부터 쇼토쿠 태자의 스승 고구려의 혜자스님, 태자의 이복동생, 또다른 이복동생, 그리고 아들. [사진 양은심 제공]

 
여기서 유홍준 작가께(이 글을 읽으실지는 모르겠으나) 한마디. 『일본편 2, 아스카 ・나라』146페이지에는 ‘쇼토쿠 태자의 아들 셋’이라고 쓰여 있는데, ‘아들과 이복동생 둘’이라 하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특별전을 본 후 지금까지 내 눈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은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었던 관록(観勒)이라는 백제 고승의 조각상이다. 주름 가득한 얼굴과 큰 귀. 편안히 내려놓은 두 손. 그리고 강렬하면서도 깊이 있는 눈빛. 조각임에도 살아있는 듯했다. 조각이기에 겁도 없이 한참 동안 눈을 바라보았다. 602년 일본 열도로 와서 역법과 천문 지리에 관한 책을 전했다고 한다. 그리고 606년에는 태자의 칙원으로 시가현(滋賀県)에 햐쿠사이지(百済寺)가 창건된다. 1400년이 흐른 지금도 건재하다고 한다. 주지 스님의 글에 따르면 관록 스님은 절의 창건에 관여했고 절터와 방위까지 신경 썼다고 한다. 햐쿠사이지 연장선에는 백제(지금의 광주)가 있다고. 주지 스님은 햐쿠사이지와 광주를 잇는 북위 35도선을 ‘백제망향선(百済望郷線. Pecche Nostalgia Line)’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었던 백제의 관록 스님. [사진 양은심 제공]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었던 백제의 관록 스님. [사진 양은심 제공]

 

관련기사



공유하기
양은심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필진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