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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문항이니 받아적어라"···평택 사립교사 값은 1억이었다

중앙일보 2021.07.21 05:00
문제가 된 사학재단이 경기도 평택시에서 운영하는 학교.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문제가 된 사학재단이 경기도 평택시에서 운영하는 학교.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대학 졸업 후 교육대학원에 진학해 교사의 꿈을 키웠다. 대학원을 나온 뒤 서울 노량진에서 중등임용고시를 4년 준비했다. 학생 6년에 수험생 4년, 교사가 된다는 꿈이 있었기에 10년이 아깝지 않다고 애써 생각했다. 자신이 ‘채용 비리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
 

[사건추적]

“원서 200~300통을 넣어가며 겨우 버틴 꿈이었다. 최종 단계까지 힘들게 올라갔는데. 내정자가 있었다니…. 나는 면접 들러리가 된 것이다.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심경을 피력한 이씨는 현재는 기간제 교사 등을 했던 교직을 아예 떠난 상태다.
 

488명 몰린 사학재단 정교사 채용 공고…알고 보니

지난해 올라온 채용 공고. 사진 독자 제공

지난해 올라온 채용 공고. 사진 독자 제공

이씨가 지원한 채용 공고는 지난해 2월 경기도 평택 내 중·고등학교가 있는 한 사학재단이 주관한 ‘2020학년도 임용후보자 선정경쟁시험’이다. 13명을 뽑는 자리였는데, 488명이 몰리면서 38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험은 사전 내정자가 정해진 허울뿐인 채용 공고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에 따르면 2015년 이 학교 재단 이사장과 이사장의 아들이자 학교 행정실장 A씨는 정교사직을 원하는 기간제 교사로부터 돈을 받기로 공모했다. 이후 믿을 만한 정교사 2명 등을 시켜 돈을 낼만 한 기간제 교사를 찾으러 다니게 했다.
 
이사장은 아들 A씨와 자신의 집에서 정교사 희망자를 대상으로 비공식 면접을 진행했다. 이 자리에서 내정자를 미리 골랐던 이사장과 A씨는 면접자들에게 채용을 대가로 ‘학교발전기금’을 요구했다고 한다. 경찰 수사에서 A씨 등은 기간제 교사 1명당 학교발전기금 6000만~1억1000만원을 요구해 모두 18억8000여만원을 받은 것으로 파악됐다.
 
A씨 등은 지필 평가 시험지·답안지와 면접시험 질문지 등을 특정 응시자에게 먼저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제공한 녹취 파일에 따르면 “킬러 문항이니 받아 적으라”며 시험 문제를 응시자에게 불러주는 대목이 나온다. 
 
이들은 자신 명의가 아닌 가족이나 동료의 휴대전화를 사용해 연락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문제지 등을 건넬 때는 자정 무렵 인적이 드문 도로변 등을 만남 장소로 정했다. 평가가 끝난 뒤에는 유출한 문제지·답안지 등을 도로 가져갔다고 한다.
 

풀이 없는데 만점…사학 교사 채용 비리 복마전

경기도 한 사학재단 채용비리 사건 개요.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경기도 한 사학재단 채용비리 사건 개요.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A씨 등은 2016년부터 돈을 건넨 특정 응시자를 자체 채용하려고 했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청이 “1차 필기시험은 교육청이 주관한다”며 위탁채용을 권고하자 2016~2019년에는 채용을 진행하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꾸준히 채용을 약속하며 기간제 교사로부터 돈을 받아왔다.
 
채용이 차일피일 밀리면서 독촉에 시달리게 된 이들은 결국 지난해 교육청 권고를 무시하고 채용 시험을 강행했다. 이를 수상히 여긴 교육청은 재단에 대한 감사에 나섰다. 
 
당시 교육청 감사 결과 최종 합격자 13명의 시험 평균 점수가 나머지 응시자의 평균 점수보다 15점 이상 높은 사실 등이 밝혀졌다. 탈락자 최고점은 78.8점이었으나 부정 합격자의 점수는 모두 95점 이상이었다고 한다. 또 수학 과목에서 만점을 받아 합격한 1명은 전체 25개 문제 가운데 17개 문제를 풀이 과정 없이 답만 적어 냈다. 국어 과목 합격자 2명은 오답까지 똑같았다. 이런 내용을 확인한 교육청은 지난해 5월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이들이 정교사 채용을 대가로 돈을 받은 혐의와 브로커 역할을 한 정교사 2명이 학교발전기금을 빼돌린 혐의 등도 포착했다. 경찰은 재단 관계자 10명을 배임수재 및 업무방해 혐의로 입건해 A씨와 정교사 2명 등 3명을 구속해 검찰에 송치했다고 20일 밝혔다. 돈을 주고 정교사 시험에 부정 합격한 기간제 교사 21명과 교사 부모 5명 등 26명은 배임증재 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뒤 검찰에 넘겨졌다. 
 
경찰은 지난해 11월 A씨 등을 먼저 송치했으며 지난 14일 재단 측에 돈을 건넨 기간제 교사 등 21명을 추가로 검찰에 넘겼다. A씨는 올해 초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승명 경기남부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 수사2계장은 “행정실장 A씨를 지난해 11월 검찰에 송치한 뒤 수사를 확대하면서 조직적인 범죄라는 게 드러났다”면서 “공정한 경쟁을 원하는 수험생에게 절망을 주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채용 비리 수사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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