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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여가부만 없으면

중앙일보 2021.07.21 00:36 종합 30면 지면보기
최근 우리 사회의 의제로 떠오른 여성징병제. 노르웨이는 성평등 실현과 우수 인재 확보를 통한 안보 역량 강화 차원에서 2016년부터 '성중립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노르웨이 여군들의 모습.     [중앙포토]

최근 우리 사회의 의제로 떠오른 여성징병제. 노르웨이는 성평등 실현과 우수 인재 확보를 통한 안보 역량 강화 차원에서 2016년부터 '성중립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다. 노르웨이 여군들의 모습. [중앙포토]

대권 도전 의지를 밝힌 여야 정치인들이 동시에 남녀 군복무 의무화 공약을 내놨다. 앞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남녀평등복무제와 모병제 전환을 공약한 데 이어, 이번에는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이 남녀 공동복무제와 징·모병 혼합제 공약을 내놨다. "가부장적 군대 문화를 혁신하는 길"이라고도 했다. '성평등을 주장하려면 여자도 군대 가라'는 오래된 주문이 드디어 정치적 의제로 등장하는 순간이다.
 여성들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인다. 군대가 성평등의 반대급부로 거론되니 차라리 가겠다는 태도다. 단, 지금처럼 성폭력이 만연하고 인권이 낙후된 병영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 공군 부사관에 대한 성폭력과 집단적인 은폐, 피해자의 극단적 선택이라는 현실이 여전하다.

여성징병제, 여가부 폐지 논의
박탈감 해소 차원 추진은 곤란
여가부 역량 강화 더 주문할 때·

 하태경 의원은 "임신·출산 여성의 복무와 예비군 훈련을 면제하겠다"고 덧붙였다. 남녀징병제지만 임신·출산 여성에게는 병역의무를 면제해 주는 이스라엘을 예로 들었다. 얼핏 여성을 배려하려는 것 같지만 반응은 싸늘하다. 어차피 군대 가는 여성은 20대일 텐데 ‘임신·출산 아니면 군대’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군대 가고 싶어도 출산하면 갈 수 없다는 얘기도 된다. 물론 하 의원도 할 말은 있겠다. 오래도록 ‘출산은 여성에게 징병에 해당한다’는 관념이 있었다. 2013년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은 '엄마가산점제'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책『여자도 군대 가라는 말』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여성들이 징병제에 참여해 왔지만, 남성과 동등한 시민권을 얻지 못했다고 평가받는다." 반면에 사회 각 분야에 성평등을 확산시키며, 가장 성차별적인 집단인 군대까지 대상으로 삼아 여성징병제를 도입한 북유럽 국가들은 다르다. 2016년 ‘성 중립 징병제’를 도입한 노르웨이는 "남녀는 사회 일원으로 같은 권리와 의무를 진다"며 출산 여부와 무관하게 징병한다. "모든 영역에서 성평등 정도가 높은 스웨덴의 경우, 군대 역시 성평등을 성취하는 방법으로 여성징병제를 실행한다."(같은 책) 여성 징집을 군대까지 성평등을 확산시키는 계기로 삼느냐, 아니면 남성들의 박탈감 해소 차원으로 접근하느냐는 큰 차이란 뜻이다. 박진수 덕성여대 교수는 "북유럽 국가들의 여성 징집은 성평등에 더해 남녀 불문 우수 인재 영입으로 국가 안보 능력을 강화하는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요즘 뜨거운 여가부 폐지론도 비슷하다. 일부 보수 정치인들은 여가부가 일을 잘 못하고, 젠더 갈등을 부추기며, 고유 업무가 없다며 여가부 폐지 공약을 내걸었다. 여가부만 없으면 젠더 갈등도 없고, 성평등도 절로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여가부가 일을 잘 못한다면 초미니 힘 없는 부처에 일을 잘할 수 있는 실권과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게 제대로 된 논리다. 여성뿐 아니라 차별받는 소수자를 위해서 일하고, 사회 통합을 해치는 젠더 갈등 해소에 앞장서라고 주문해야 한다. 여가부의 무능과 남성들의 박탈감, 백래시(반동), 일부 극단적 페미니즘 흐름을 한데 묶어 폐지론으로 귀결시키는 것은 성평등에 대한 무신경·반감의 증거일 뿐이다. 성평등 정책이 특정 부처의 전유물이 될 수 없으니 대통령 직속 성평등위원회를 만들어 모든 정책에 성평등 국정 기조를 반영케 하자는 주장에는 동의하지만, 이 또한 여가부의 격상 차원에서 논의될 문제다. 전담 부처 없는 위원회의 한계가 자명하다. 전 세계 97개국에 "고유 업무가 없다"는 우리 여가부에 준하는 부처가 있다(2020년 유엔여성기구).
 이미 여가부의 영문명은 '성평등 가족부(Ministry of Gender Equality and Family)'다. 폐지를 논하기 전에 이름값을 제대로 하라고 압박하는 게 먼저다. 여가부 폐지가 가장 시급한 여성 이슈로 꼽힌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여가부가 있어야 할 이유다. 여권이 충분히 신장됐다고도 하는데, 한국의 성 격차지수는 153개국 중 108위(2019년 세계경제포럼), 성별 임금 격차는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중 1위다. 당연히 여가부도 스스로 존재 이유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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