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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춥다"…구조작업중 추락 김홍빈, 손흔들며 의식있었다

중앙일보 2021.07.20 19:11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57) 대장. 사진 광주시산악연맹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57) 대장. 사진 광주시산악연맹

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57) 대장이 해발 8047m 높이의 브로드피크(8047m)를 완등한 후 하산하다 실종됐다.  
 

"13㎜ 자일 비싸 8㎜ 줄 썼다"

김 대장은 홀로 하산하다가 조난을 당했고, 구조 도중 김 대장 스스로 로프를 타고 오르다 줄이 끊어지며 추락한 것으로 파악됐다.
 
20일 광주시와 산악연맹의 발표를 토대로 김 대장의 실종 경위를 재구성했다.
 
김 대장은 17일(현지시간) 오후 11시쯤 히말라야 브로드피크(8047m) 7500m 지점에 차려진 베이스캠프(캠프4)를 출발, 정상을 향한 등반을 시작했다.
 
당시 김 대장은 짐을 나르는 하이포터 4명과 함께 정상을 향해 출발했다.
김홍빈 대장. 사진 대한산악연맹

김홍빈 대장. 사진 대한산악연맹

 
일반적으로 고산 등반에는 여정을 이끌어가는 셰르파, 짐을 나르는 포터, 전문 짐꾼인 하이포터가 동행한다. 하지만 하늘길이 막히면서 네팔 셰르파가 파키스탄 쪽으로 넘어오지 못했고, 산소도 구입하기 어려웠다.
 
김 대장은 브로드피크보다 더 험난한 산도 등반한 경험이 있었기에 셰르파 없이 등반하기로 결정했다. 김 대장은 등반 전 “네팔에서 셰르파나 산소가 올 수 없기 때문에 누구에게 의지하지 않고 정말 등반다운 등반을 해볼 수 있게 됐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이포터 4명과 등정에 나선 김 대장은 출발 18시간 뒤인 18일 오후 4시 58분 파키스탄령 카슈미르 북동부 카라코람산맥 제3고봉인 브로드피크 등정에 성공했다. 열 손가락이 없는 장애인으로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성공 소식을 전한 김 대장은 하산을 시작했다. 동행한 하이포터 4명이 먼저 내려왔다. 하이포터 1명이 캠프4에 먼저 도착했고 이어 3시간 뒤에 하이포터 3명이 캠프4에 도착했다.
 

마지막으로 하산하며 조난당한 김 대장 “많이 춥다”

히말라야는 등산보다 하산이 위험하다. 조난사고의 90% 이상은 하산하다 발생하다 보니 대원들끼리 줄을 묶는 방식은 사용하지 않고 따로 내려오는 게 일반적이다.
 
마지막으로 하산한 김 대장이 한참 동안을 내려오지 않았다.  
 
캠프4에 있던 정하영 촬영감독이 하이포터들에게 “왜 당신들만 내려오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하이포터들도 먼저 내려와 김 대장의 상황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곧바로 베이스캠프에 연락해 김 대장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때까지 김 대장의 조난소식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대원들은 김 대장이 18시간에 걸쳐 등반해 체력이 이미 바닥난 상황이었고 부족한 산소와 기압 때문에 안전을 우려했다.
 
김 대장은 19일 0시쯤 해발 7900m 지점 크레바스(빙벽이 갈라진 틈)에서 떨어져 이미 조난된 상황이었다. 사실은 5시간여가 지난 뒤에야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김 대장이 19일 오전 5시 55분쯤 한국에 있는 후배 조모 추진위원에게 위성전화로 구조 요청을 했다. 무전기가 있었지만 작동이 되지 않아 베이스캠프나 캠프4와 연결이 되지 않았고 위성전화를 사용한 것이었다.
 
김 대장은 “내가 조난을 당했다. 구조 요청을 한다. 밤을 샜다. 주마(등강기) 2개와 무전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조 위원은 “위성 전화기 배터리는 충분하냐”는 등의 대화를 나눴고 김 대장은 “많이 춥다”며 전화를 끊었다.
 
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이 해발 8047m 높이의 브로드피크를 완등한 후 하산하다 실종됐다. 연합뉴스

장애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 완등에 성공한 ‘열 손가락 없는 산악인’ 김홍빈 대장이 해발 8047m 높이의 브로드피크를 완등한 후 하산하다 실종됐다. 연합뉴스

구조 요청을 받은 조 위원은 파키스탄 베이스캠프로 연락했다. 베이스캠프에 있던 각국의 연락관 4명이 모여 7800m 지점의 루트를 수색하도록 했다. 러시아 구조대 3명이 출발했고 오전 11시쯤 7900m 지점 칼날능선의 크레바스 밑에 떨어져 있는 김 대장을 발견했다.
 
곧바로 구조 작업이 시작됐다. 김 대장은 당시 의식이 있었고 구조대원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구조대원 1명이 직접 내려가 김 대장에게 물을 제공했다.  
 
급경사에 막히는 부분이 있어 김 대장은 주마를 이용해 직접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강추위에 얼어있던 가는 주마가 김 대장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끊어지면서 김 대장은 크레바스 아래로 추락했다.
 
러시아 구조팀은 오후 1시 42분쯤 김 대장의 추락 사실을 베이스캠프에 알렸다.
 
피길연 광주시산악연맹 회장은 “보통 11㎜에서 13㎜ 자일을 쓰는데, 자일이 워낙 비싼데다 고지대에서 줄이 길고 짐 무게가 있어 8㎜짜리 일반 줄을 가져갔다”며 “줄이 가는 데다 얼어 있어 끊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정부와 산악연맹은 외교부를 통해 파키스탄 대사관에 구조 헬기를 요청했고 현지 원정대와 파키스탄 정부가 협조해 수색을 전개하고 있다.
파키스탄 알파인클럽이 20일(현지시간) 공개한 김홍빈 대장의 모습. AP=연합뉴스

파키스탄 알파인클럽이 20일(현지시간) 공개한 김홍빈 대장의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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