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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기증전서 놓쳐서는 안될 걸작 10

중앙일보 2021.07.20 16:59
'세기의 기증'으로 화제를 모은 '이건희 컬렉션'의 핵심 작품들을 보여주는 전시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1일 나란히 개막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전시실 2층 서화실에서 '고 이건희 회장 기증 명품전'을 열고 기증품 9797건 2만1693점 중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재 45건 77점을 공개한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 1전시실에서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한국미술명작'을 연다. 기증품 1488점 중 국내 작가 34명의 작품 58점을 선보인다. 
 
지난 4월 28일 기증 당시부터 '명품 컬렉션'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막상 뚜껑을 연 전시는 상상 그 이상이었다. 컬렉션의 스케일과 완성도, 그리고 시대와 작가의 다채로움까지 보는 이를 압도하는 명품과 걸작들의 향연 그 자체였다. 본지가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두 전시장에서 직접 보고 설명 들으며 각각 고른 다섯 점을 소개한다. 
 
국립중앙박물관 
 

①딱 이맘때의 인왕산, 인왕제색도

국보 제 216호 인왕제색도. 김정연 기자

국보 제 216호 인왕제색도. 김정연 기자

 
국보 제216호인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는 꽤 큰 그림이다. 가로 138.2㎝, 세로 79.2㎝에 달한다. 남쪽의 범바위부터 북쪽의 창의문(자하문)까지, 인왕산 전체를 한 폭에 담았다. 수성동 계곡, 인왕산 꼭대기의 치마바위, 한양성곽 등 인왕산 구석구석을 샅샅이 그렸다. 붓을 아래로 쓸어내는 정선 특유의 붓질로 암벽의 질감을 표현하면서, 먹을 여러 겹 겹쳐 짙은 색을 나타냈다. 실제로 흰색인 산봉우리를 어둡게, 실제로 어두운 산 아래를 흰 구름으로 가려 밝게 그려 위쪽에 무게가 실리게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재호 연구사는 “‘일흔 넘은 정선이, 그림 주문이 너무 밀려서 안경을 끼고 붓을 두 개 들고 그림을 그렸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정선은 그림을 대충, 빠르게 그리기로 유명했지만, 인왕제색도만큼은 애정을 가지고 샅샅이 그렸다”며 “자신이 매일 보는 동네 뒷산을 실제보다 훨씬 아름답고 힘있게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정선이 그린 인왕산은 시기적으로 음력 5월 하순, 양력으로는 이맘때인 7월 하순일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연구사는 “신미년 윤월(5월)에 그린 그림이고, 승정원일기 등 기록을 보면 5월 20일부터 25일까지 비가 내렸다고 한다”며 “1751년 음력 5월 25일 비가 갠 뒤, 양력으로 치면 딱 지금 이맘때인 7월 하순에 그렸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②1리터 넘는 백자 술병, 막그림 그린 분청사기 

국보 제 258호 백자 청화 대나무무늬 각병. 김정연 기자

국보 제 258호 백자 청화 대나무무늬 각병. 김정연 기자

 
높이 40㎝의 큰 호리병 형태의 ‘백자청화 대나무무늬 각병’(국보 제 258호)은 새하얀 표면에 푸른색으로 대나무 그림을 그린 팔각병이다. 원형으로 병을 만든 뒤 표면을 고르게 8등분해 매끄럽게 깎아야 하는 팔각병은 숙련된 장인만 만들 수 있는 형태로, 양반들이 사용하던 백자 중에서도 고급이다.
 
화병과 비슷한 사이즈의 이 병은 뜻밖에도 술병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국립중앙박물관 강경남 연구사는 “조선시대 술상에 쓰인 도자기들이 대체로 크고, 두께도 두꺼웠다”며 “이 병도 1리터 들이가 넘고 무게도 상당하지만, 유독 큰 게 아니라 보통 쓰이는 술병이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설명했다.
 
보물 1069호 분청사기 조화 새 나무무늬 편병. 김정연 기자

보물 1069호 분청사기 조화 새 나무무늬 편병. 김정연 기자

 
보물 1069호인 분청사기는 여기저기 구겨진 듯 비뚤어진 형태에, 겉면엔 막대기로 대충 그린 듯한 꽃과 나뭇잎 등이 새겨져 있다. 강 연구사는 “조선 왕실에서 백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관청에 주로 납품하던 분청사기 가마에 일감이 사라졌다”며 “대신 궁여지책으로 민간에 파는 분청사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전에 만들던 사기들보다는 흙에 잔돌도 섞여 있고 그림도 비형식적이지만 현대에 보기엔 오히려 자유분방해 보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분청사기’는 흙으로 빚은 그릇 겉면을 흰색 흙으로 한 번 덮어 구운 것으로, ‘분칠한 듯하다’ 해서 ‘분청사기’라는 이름이 붙는다. 이번 전시에 나온 분청사기는 유독 흰 빛이 강하다. 울퉁불퉁한 표면을 가리기 위해 흰색 흙을 두껍게 바른 것으로 추정된다.
 

③세종이 수양대군 시켜 만든 한글 불교책

보물 제 935호 월인석보. 석보상절(보물 제 523-3호)에서 쓰인 각진 서체와, 신명조체로 약간 변형된 서체가 섞여 쓰였다. 김정연 기자

보물 제 935호 월인석보. 석보상절(보물 제 523-3호)에서 쓰인 각진 서체와, 신명조체로 약간 변형된 서체가 섞여 쓰였다. 김정연 기자

 
보물 제523-3호 ‘석보상절’은 조선 4대 세종이 왕비인 소헌왕후의 사망 이후 둘째아들인 수양대군을 시켜 만들게 한 최초의 한글 불교 서적이다. ‘석보상절’은 석가모니 부처의 일대기를 기술했다는 뜻이다. 이 책은 세종이 만든 한글 초기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자료로 꼽힌다. 
 
한글 창제 때 사용한 ‘발음기관의 모양’ 원리를 고스란히 살려 각진 서체를 사용한 점이 눈에 띈다. 이재정 연구관은 “이렇게 각진 형태의 서체는 붓으로 쓰기 어려워서, 이 시기에만 나오고 뒤로 갈수록 신명조체에 가까워진다”며 “한글 창제 초기에는 원리를 이해하기 쉽게 굳이 각진 형태로 썼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후 수양대군이 세조로 즉위한 뒤 세종이 펴낸 월인석보에는 각진 서체와 끝을 삐친 서체가 섞여 쓰였다.
 

④금과 은으로 쓴 불경 

국보 제 234호 묘법연화경. 김정연 기자

국보 제 234호 묘법연화경. 김정연 기자

 
염색한 고급 종이에 아교에 갠 금과 은으로 쓴 불교경전, ‘사경’은 사진이 실물을 담지 못한다. 가까이에서 봐야 금‧은의 질감이 실감난다. 검정색 종이 위에 쓴 금은 천 년이 지났지만 바래지 않고 또렷이 빛난다.
 
이번 전시에는 국보 제 234호 묘법연화경, 국보 제210호 불공견삭신변진언경, 국보 제 235호 대방광불화엄경 보현행원품 등이 대거 나왔다. 사경은 공덕을 쌓는 일로 여겨져 고려시대에 크게 유행했다. 왕실에 사경을 전담하는 기구가 있을 정도였다. 고려 충렬왕의 지시로 만들어진 불공견삭신변진언경은 길이가 9m에 달해, 두루마리 지름만 해도 3㎝가 넘는다.
 

⑤커지고 뚱뚱해지는 불상들 

이건희 특별전에 출품된 보살들(6점 중 4점). 왼쪽부터 국보 제 128호 보살(7세기), 보물 제 780호 보살(7세기 후반), 보물 제 779호 부처 (통일신라, 8세기), 보물 제 401호 부처(9세기). 김정연 기자

이건희 특별전에 출품된 보살들(6점 중 4점). 왼쪽부터 국보 제 128호 보살(7세기), 보물 제 780호 보살(7세기 후반), 보물 제 779호 부처 (통일신라, 8세기), 보물 제 401호 부처(9세기). 김정연 기자

 
6세기 삼국시대부터 9세기 통일신라까지, 약 300년간의 불상 6점이 나란히 나온다. 뒤로 갈수록 불상의 크기가 커지고, 체형도 뚱뚱해지는 모양새다.
 
가장 시기가 이른 국보 제134호 일광삼존상(삼국시대, 6세기)는 주물 찍듯 한 번에 눌러 찍어 만든 불상이다. 높이 8.8㎝로 매우 작다. 7세기로 넘어가면 국보 제 128호 보살은 15.2㎝로 키가 두 배 커지고, 사람의 형상을 디테일하게 갖추기 시작한다. 삼국시대 말~통일신라 초인 7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보물 제780호 보살은 높이 28㎝, 옷의 모양새까지 살린 형상이다. 국립중앙박물관 권강미 연구사는 “삼국시대 초반까지는 불상의 형태가 볼륨 없고 동글동글한 어린아이 형상이다가, 통일신라부터는 인체 비례와도 맞고 사실적 묘사가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이후 국보 제128호 보살, 보물 제780호 보살, 보물 제779호 부처까지, 불상은 점점 더 크고 뚱뚱해졌다. 권 연구사는 “주물 찍듯 불상을 만들 땐 작고 얇게 만들 수 있었지만, 점점 크기가 커지면서 청동을 아끼기 위해 속을 비우는 형태로 만들었다”며 “제작 기법상 크기가 커진 면도 있고, 당시 선호하던 신체상도 일부 반영돼 통통해진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①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 1950년대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281.5x567cm, (재)환기재단.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김환기, 여인들과 항아리,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281.5x567cm, (재)환기재단.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명실상부한 대작 중 대작이다. 세로 길이가 3m에 육박하고 가로 길이가 5m가 넘는다. 크기만이 대작이 아니다. 권행가 미술사가에 따르면, 비대칭의 자연스러운 선과 투박한 색면 처리 등 조선백자의 멋을 사랑했던 작가의 조형적 특성이 잘 드러난 김환기의 대표작이다. 
 
이 그림은 1950년대 방직기업 재벌 삼호그룹 방재호 회장이 퇴계로에 집을 지으면서 대형 벽화용으로 주문해 제작한 것. 나무, 항아리, 여인들, 백자, 학, 사슴 등 1950년대 김환기가 즐겨 사용했던 모티브가 나란히 배열돼 있다. 이 그림은 1960년대 말 삼호그룹이 쇠락하며 미술시장에 나온 뒤 삼성이 인수했다. 
 
이번에 전시된 김환기 작품 3점은 하나하나 탄성을 자아낸다. 특히 푸른 점화  ‘산울림 19-Ⅱ-73#307’(1973)은 뉴욕 시기 점화 양식의 완성 단계를 보여주는 작품. 권행가 미술사가는 "작은 점들의 파동이 광대한 우주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는 효과를 자아내는 듯하다"며 "동양적이고 시적인 추상화의 세계를 구현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②변관식, '무창춘색(武昌春色)', 1955 

변관식, 무창춘색, 1955, 종이에 수묵채색, 6폭 병풍,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변관식, 무창춘색, 1955, 종이에 수묵채색, 6폭 병풍,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무릉도원은 멀리 있는 게 아니다. 6폭 병풍에 그려진 풍경화가 말 그대로 가슴을 적신다. 이번 전시에 함께 소개된 이상범(1807)의 '무릉도원'(1922)와 더불어 한국적 실경산수화의 전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꼽힌다. 작가가 1955년 가을 전북 전주의 완산을 여행하며 그린 그림으로 전체적으로 안정된 구도에 길과 돌다리를 따라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사실적인 풍경이 돋보인다. 최경현 미술사가는 "마을 전체를 뒤덮은 복사꽃을 적묵법(積墨法·먹의 농담을 살려 순차적으로 쌓아가듯이 그리는 기법)으로 그리며 장대하면서도 환상적인 이미지를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지팡이를 짚고 걷는 노인과 머리에 짐을 얹은 소녀의 모습이 봄기운이 완연한 풍경 속으로 보는 이를 끌어들인다. 
 

③이중섭, '황소', 1950년대 

이중섭, 황소, 1950년대, 종이에 유채, 26.5x36.7c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중섭, 황소, 1950년대, 종이에 유채, 26.5x36.7c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한국전쟁, 가족과의 이별, 가난, 강박증과 거식증의 정신질환···. 격동의 시기에 고난을 겪다가 나이 마흔에 생을 마감한 이중섭(1916~1956)의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비극적이다. 그런 이중섭이 일본 유학시절부터 즐겨 그린 그림이 바로 황소다. 이중섭은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더욱 열심히 소를 그렸다.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관은 "붉은색을 배경으로 한 이 '황소'는 세파를 견딘 주름 가득한 황소의 진중하고 묵직한 모습을 담고 있다"면서 "이중섭의 황소는 힘차면서도 어딘가 애잔한 느낌이 자아내는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중섭의 붉은 황소 머리를 그림은 총 4점인데 이 작품은 1976년 처음 알려졌으며, 1990년 금성출판사에서 발간한 이중섭 화집에 수록된 적 있으나 지금까지 거의 전시된 적 없었다.  
 

④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1954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1954, 캔버스에 유채, 130x97c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박수근, 절구질하는 여인, 1954, 캔버스에 유채, 130x97c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1940년 이웃에 살던 김복순과 결혼한 박수근(1914~1965)은 줄곧 그의 아내를 모델로 그림을 그렸다. '실을 뽑는 여인' '맷돌질하는 여인' '망질하는 여인' '모자' 등의 그림은 모두 아내가 모델이었다. 1936년 조선미술전람회에 '절구질하는 여인'을 수채화로 출품해 입선한 박수근은 그 이후에도 '일하는 여인'의 소재를 반복해 그렸다.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고 싶었던' 박수근의 면모를 드러내주는 대목이다. 이 그림 역시 수채화로 그렸던 '절구질하는 여인'을 1950년대에 유화로 다시 그린 것으로 박수근 특유의 색감과 표면 질감 표현(마띠에르) 기법이 무르익은 경지를 보여준다. 이번 전시에 함께 소개된 '유동'(놀이하는 아이들·1963)도 눈길을 끈다. 그림 전체에 온화한 색조 등 대상에 대한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보는 이의 발길을 붙잡는다. 
 

⑤이성자, '천년의 고가', 1961

이성자, 천년의 고가, 1961, 캔버스에 유채, 196x129.5c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이성자, 천년의 고가, 1961, 캔버스에 유채, 196x129.5cm.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아직도 이성자(1918~2009)라는 작가 이름이 익숙하지 않다면 한국 미술사에서 정말 중요한 한 작가를 놓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2018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탄생 100주년 회고전이 열린 바 있지만, 이성자 작가는 한국 미술사에서 더 조명받고 더 연구돼야 할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흥미롭게도 고 이건희 회장은 이성자 작가의 대표작 중 대표작을 소장하고 있었다. 바로 이 작품으로 기본적인 기하형태를 구성하고 땅에 곡식을 심듯 '한땀한땀' 붓터치를 하며 완성한 걸작이다. 박미화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 작품은 여성성의 시작을 대지로 본 작가의 '여성과 대지' 연작 중 하나"라며 "이번 기증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이 시기 이성자의 대표작을 비로소 소장하게 됐다"며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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