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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수화상병 막으려 비료 뿌린 괴산군…농가 “사과농사 망쳐”

중앙일보 2021.07.20 14:40

과수화상병 약제 뿌린 뒤 검은 반점 

지난달 괴산군 농업기술센터가 보급한 과수화상병 방제약을 뿌린 뒤 검은 반점이 생긴 사과 나무. [사진 김종천씨]

지난달 괴산군 농업기술센터가 보급한 과수화상병 방제약을 뿌린 뒤 검은 반점이 생긴 사과 나무. [사진 김종천씨]

충북 괴산군 연풍면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김종천(58)씨는 열매에 생긴 검은 반점을 볼 때마다 속이 타들어 간다. 이맘때 몸집을 불려야 할 과실이 벌레가 파먹은 듯 곳곳에 반점이 생기고, 생육을 멈췄기 때문이다.
 

230농가, 178㏊ 사과나무 피해

김씨는 “가짜 과수화상병 약을 뿌렸다가 농사를 망쳤다”며 “사과 수확량이 3분의 1로 줄어들어 올해는 인건비도 건지기 힘든 상황”이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김씨 사과나무는 지난달 17일 괴산군 농업기술센터에서 무료로 나눠준 ‘과수화상병 약제’를 살포한 뒤 급격히 쇠약해졌다.
 
김씨는 “과수화상병을 막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해서 500㎖짜리 약병 10개를 사과밭에 뿌렸다”며 “방제를 마친 뒤 사흘째 누렇게 변한 잎이 바닥에 수북이 떨어지고, 열매에는 검은 반점이 번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유기농업군이라고 홍보만 잔뜩 해놓고, 방제약 하나 제대로 검토하지 못한 군청이 원망스럽다”고 했다.
 

농가 “군청이 엉뚱한 약제 살포 요구”

괴산군 과수농가들이 방제약 피해를 호소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사진 김종천씨]

괴산군 과수농가들이 방제약 피해를 호소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사진 김종천씨]

과수화상병 대응을 위해 괴산군이 보급한 방제약을 사용한 농가들이 “엉뚱한 약제를 공급했다”며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20일 괴산군에 따르면 문제가 된 과수화상병 방제약을 살포한 310개 농가 가운데 236농가(76.1%)에서 잎이 노랗게 변해 떨어지고 열매에 검은 반점이 생기는 피해 신고가 접수됐다. 피해 면적은 178㏊에 달한다.
 
괴산에서는 지난달 사과 농가 5곳에서 과수화상병이 잇따라 발생했다. 군은 예산 7000여 만원을 들여과수화상병 약제를 보급했다. 안미선 괴산군의원은 “해당 약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처에 ‘과수화상병 방제약’으로 등록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며 “시험 결과가 충분치 않은 약제를 무작정 공급해 피해를 준 것에 대해 군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피해 농민들은 약제 선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입을 모았다. 정순화(60)씨는 “보급받은 약제는 일반 농약과 다르게 기름 성분이 많았다”며 “사과나무 잎에 유막이 형성돼 광합성 작용을 하지 못해 사과에 반점이 생기고 잎이 떨어진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사과는 4월 중순 꽃이 피고 나서 6~7월엔 햇빛을 많이 받고 과실이 커야 한다”며 “개화기 이후에 뿌리면 안 되는 약제를 군이 나서서 과수화상병 예방약이라고 보급한 사실에 화가 난다”고 했다.
 

사과 생육 멈추고 노란 잎 ‘우수수’ 

괴산군은 지난달 중순 농가에 약제를 공급하면서 ‘사과 화상병 약제 공급안내-화상병원균의 전염이 빨라 약제를 받는 즉시 처리 부탁드린다’고 안내했다. [사진 김종천씨]

괴산군은 지난달 중순 농가에 약제를 공급하면서 ‘사과 화상병 약제 공급안내-화상병원균의 전염이 빨라 약제를 받는 즉시 처리 부탁드린다’고 안내했다. [사진 김종천씨]

 
실제 해당 약제 제품 설명서에는 ‘과수화상병 약제’가 아닌 ‘복합비료’로 표기돼 있었다. 주의사항으로 ‘개화기 전후에 살포하고 그 이후에는 사용하지 않기를 권장한다’고 쓰여 있다. 농민들 주장대로 사과 열매가 달린 후에는 사용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지만 괴산군은 농가에 배포한 약제 공급 안내문에 ‘즉시 살포’를 요청했다. 이 안내문에는 ‘사과 화상병약제 공급안내-화상병원균 전염이 빨라 약제를 받는 즉시 처리 부탁드린다’라고 쓰여 있다. 정씨는 “눈에 보이는 반점, 낙엽 피해보다는 사과 생육이 멈춰버린 게 더 큰 피해”라며 “약제 피해를 보지 않은 사과도 크기가 작아 제값을 받지 못하게 생겼다”고 말했다.
농민 김종천씨는 지난달 괴산군 농업기술센터가 보급한 과수화상병 방제약을 뿌린 뒤 사과나무가 잎이 누렇게 변하고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사진 김종천씨]

농민 김종천씨는 지난달 괴산군 농업기술센터가 보급한 과수화상병 방제약을 뿌린 뒤 사과나무가 잎이 누렇게 변하고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다. [사진 김종천씨]

 
괴산군은 피해 농가를 대상으로 이달 말까지 현지 조사를 한다. 조사 결과를 근거로 방제약 제조사를 상대로 보상을 요구할 계획이다. 괴산군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해당 약제는 과수화상병 약제로 등록돼 있지 않지만, 비료로는 등록이 돼 있다”며 “과수화상병을 비롯한 질병에 잘 견딜 수 있게 해주려고 약제를 보급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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