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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이별한 개가 생각날 때 한잔…애견가가 만든 위스키

중앙일보 2021.07.20 11:00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129) 

오후 2시, 갑작스레 걸려온 그녀의 전화.
“지금 어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가게 문 좀 열어주시면 안 될까요?”
 
부리나케 샤워하고 어제 입던 옷을 그대로 걸치고 가게로 향한다. 대체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걸까. 가게 앞에 도착하자 이미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 화장기 없는 민낯에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녀의 어깨가 조금씩 떨리는 게 보인다. 울고 있다.
 
인사말을 건네기보다 부리나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 조명을 켠다. 그리고 유리컵에 물을 담아 그녀에게 건넨 후, 그녀가 부끄럽지 않게 조용히 자리를 피해 주방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을까. 그녀가 입을 열었다.
 
“위스키 한 잔 주세요.”
 
“아직 낮인데 괜찮으세요?”
 
“네, 괜찮아요. 오늘 연차 냈거든요.”
 
“아, 그러셨군요. 회사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위스키와 강아지 꼬롱이. [사진 배성훈]

위스키와 강아지 꼬롱이. [사진 배성훈]

 
그녀가 고등학생일 때부터 함께 하던 개가 있다. 올해로 열세 살 된 개는 그녀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부모에게서 독립할 때부터 함께였다. 첫 사회생활의 고달픔에도 집에 돌아가면 꼬리를 흔드는 개를 보면 마음이 한결 풀렸다.
 
그녀가 처음부터 그 개를 반긴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 태어난 지 일주일 만에 그녀의 집에 입양된 강아지는 대소변도 못 가리는 말썽거리였다.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그녀의 방에 강아지 대소변이 있었고, 한창 예민한 시기라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땐, 집이라도 나가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외동딸로 자라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빼앗겼다는 기분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몇 개월 뒤, 강아지는 대소변을 가리기 시작했고 그녀가 한사코 거부하는데도 그녀의 품에 안겨 놀기를 즐겼다. 어느 날 아침, 그녀가 눈을 떴을 때 얼굴에 강아지 털이 느껴졌다. 그녀가 잠든 사이, 옆에서 잠든 강아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표정으로 자고 있는 강아지를 보자 비로소 그녀도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행도 잘 다니지 못했어요. 방학 때 친구들이랑 유럽 배낭여행을 갔는데, 일주일 정도 지나니까 너무 생각이 나서 먼저 귀국해버렸어요. 친구들이 원망 많이 했는데 그때는 참을 수가 없더라고요. 그 후로 여행은 될 수 있으면 3일 이내로만 다녔어요.”
 
강아지 꼬롱이와 스컬리웩 위스키. [사진 배성훈]

강아지 꼬롱이와 스컬리웩 위스키. [사진 배성훈]

 
그렇게 사랑하던 개도 세월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13년. 개의 인생에서 그 시간은 인간의 노년기와 같았다. 그녀가 특히 슬펐던 건, 개에게도 ‘노화’라는 것이 찾아온 점이었다.
 
“그렇게 대소변을 잘 가리던 아이가 다시 제 방에 오줌을 싸기 시작했어요. 가끔은 피를 토하기도 하고, 걷는 것도 제 마음대로 안 되는지 자꾸만 주저앉고요. 그렇게 말썽 피우고 재롱부리던 녀석이 이렇게 변할지는 꿈도 못 꿨어요. 가족이 나이 들고 죽는 건 생각했지만, 우리 아이가 늙어서 죽는다는 건 상상도 못 해봤어요. 그냥 그렇게 제 곁에서 예쁜 모습으로 남아있을 줄 알았어요.”
 
어젯밤 그녀의 품 안에서 세상을 떠난 개를 오늘 땅에 묻었다.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누구보다 가까이서 그녀와 함께해온 존재의 부재. 그것이 앞으로 그녀가 짊어져야 할 운명이다.
 
“늘 오늘이 마지막일 거라 생각하면서 지냈는데, 진짜 마지막 날이 오니까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다행히 어머니가 집에 오셔서 같이 땅에 묻었는데, 도저히 집에 들어갈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늘 저를 반겨주던 그 아이가 없을 거라는 게 너무나 무서워요.”
 
백바에서 위스키를 꺼내 한 잔 담아 그녀에게 건넨다. 보틀을 그녀가 잘 볼 수 있도록.
 
“스컬리웩이라는 위스키입니다. 스페이사이드 지역 몰트 위스키만을 블렌딩한 위스키죠. 모두 쉐리캐스크 숙성 위스키만 사용한 게 특징입니다.”
 
그녀가 잔을 들었다가 보틀을 보고 가벼운 탄식을 내뱉는다.
 
“강아지가 그려져 있네요.”
 
“이 위스키를 만든 회사의 사장이 키우는 강아지로 알고 있습니다. 워낙 말괄량이라 이 위스키에 강아지 그림을 넣으면서 말괄량이를 뜻하는 영어 스컬리웩(Scallywag)을 사용했죠.”
 
“정말 장난기 어린 표정이 당장에라도 뛰쳐나와서 꼬리를 흔들며 어지럽힐 것만 같아요. 저희 강아지도 이럴 때가 있었는데….”
 
강아지를 사랑하는 배성훈 씨의 스컬리웩 컬렉션. [사진 배성훈]

강아지를 사랑하는 배성훈 씨의 스컬리웩 컬렉션. [사진 배성훈]

 
“언제나 강아지는 말괄량이죠. 어쩌면 이 위스키를 만든 사람도 그런 말괄량이다운 강아지의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 이런 이름을 지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보틀을 드릴 테니 집에 가져가 세상을 떠난 개가 생각날 때마다 한 잔씩 하세요. 현관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에 두면 더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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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김대영 위스키 인플루언서 필진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 위스키 덕후이자 싱글몰트 위스키 블로거다. 위스키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서 살기도 했다. 위스키와 위스키 라벨에 담긴 다양한 이야기를 소재로 위스키에 대한 지식과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삶의 지혜 등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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