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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드는 건 죄 아닌데, 컴퓨터 평생 쓴 엄마의 배신감

중앙일보 2021.07.20 06:00
얼마 전 일이다. 국가에서 지난해부터 시행하는 데이터 레이블링 사업(일명 데이터 댐짓기)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는 필자의 어머니가 한 가지 테스트를 하는 것을 보았다. 매일 IT 기기를 조물조물 품고 사는 딸 입장에서는 딱 봐도 너무 쉬운 숙제들이 놓여 있었다. 파워포인트에서 두꺼운 선으로 붉은색 원 그리기, 엑셀에서 표 만들어서 워드 파일에 붙여넣기, 인터넷에서 주어진 질의 검색한 뒤 내용 긁어서 이메일 창에 붙여넣기, 휴대전화의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기 등등. 환갑을 갓 넘긴 어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집에 있는 컴퓨터를 만져왔고, 매일 아침 스마트폰으로 주식 시황을 보고, 카카오톡을 시시때때로 붙들고 있으며, 밤마다 유튜브를 듣다 잠이 드는 사람이다. 비교적 디지털 기기에 대한 친숙도가 높은 편이다. 그런 어머니가 다 잘해놓고 의외의 것에서 헤매고 있었다. 컴퓨터 화면에서 텍스트를 긁어 블록(block)을 설정하는데 자꾸만 그 블록이 풀리는 것이었다.  
 

유재연의 인사이드 트랜D

그림 1. 마우스를 클릭한 상태에서 텍스트 일부를 그으면(즉 드래그를 하면) 그림과 같이 푸른색으로 블록이 생성된다. 이렇게 구역화가 되어야 복사하기(ctrl+c)나 붙여넣기(ctrl+v)를 할 수 있다.

그림 1. 마우스를 클릭한 상태에서 텍스트 일부를 그으면(즉 드래그를 하면) 그림과 같이 푸른색으로 블록이 생성된다. 이렇게 구역화가 되어야 복사하기(ctrl+c)나 붙여넣기(ctrl+v)를 할 수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하드웨어와의 인터랙션에서 절망한다
 
어머니의 ‘블록 풀림’의 이유는 꽤 단순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마우스로 드래그한 뒤 손을 뗄 때 순간적으로 엄지손가락 끝이 떨리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더블클릭하는 셈인데, 이렇게 되면 블록이 풀릴 수밖에 없다. 젊을 땐 안 그러다가 나이 들어 그러는 이유를 도무지 알 수도 없고, 그에 기반을 둔 인체 물리적인 이유 또한 알 수 없지만, 자꾸 풀리는 블록으로 인한 어머니의 정신적 스트레스는 충분히 확인했다. 운영체제의 설정 창에 들어가 마우스의 감도를 조정하니 포인터의 속도가 조금 더뎌졌고, 블록을 만드는 것도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드래그는 긴장감을 주었다. 필자는 장비 탓을 하며 새 마우스 구매를 시도하고 있다. 어머니는, 본인의 모친이 생전에 스마트폰 화면에 띄워진 번호를 도저히 못 눌러 그게 참 희한하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손으로 숫자를 누르는데 자꾸만 다른 번호가 눌렸더라는 것이다. ‘나이 드니 별것이 다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지금 본인의 이야기가 된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예상외로 사람들은 단순하고 간단해 보이는 지점에서 헤맨다. 실제로 지난해 데이터 댐짓기 사업에 참여해 시니어 교육을 조사한 적이 있는데, 의외로 많은 이들이 원이나 사각형을 그리는 것에서 꽤 애를 먹는다고 했다. 이미지에서 특정 객체에 구역을 지정해 이름을 달아줄 때 필수적인 것이 바로 이 ‘도형 그리기’이기 때문에, 집중적인 연습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그 단순해 보이는데 잘 안 되는 지점들에서 꽤 좌절감을 느낀다. 살아온 세월에, 쌓아온 경력으로 높아진 자존감에, 체면상 남들에게 이 쉬운 걸 물어보지도 못한다. 혼자만 못 하는 것이 절대로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사실은 이 모든 게 기계의 잘못이다. 만일 기계가 시니어나 사회적 약자들을 고려해 디자인됐다면 모두가 힘들지 않았을 일이다. 물론 스마트폰(아이폰 기준)에는 ‘손쉬운 사용’이라는 제하의 여러 맞춤형 설정들이 마련돼 있다. 노안을 배려해 화면 내 글씨 크기를 일괄적으로 키울 수도 있고, 청력 저하인 이들을 위해 스피커 소리를 더 키울 수도 있다. 터치 감도도 조정할 수 있다. 청각장애인을 위해 통화 시 화면으로 자동 전환되는 기능도 있고,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디스플레이 연동 기능도 있다.  
 
이마저도 누군가 설정 화면에 들어가 복잡한 메뉴를 헤집고 일일이 맞춤형 설정을 해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너무 복잡해서 엄두가 안 난다. 그래도 요즘은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유튜브가 있어 다행인 편. 어렵사리 설정해도 여타 애플리케이션과 연동이 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화면 확대’만 해도 실제 많은 앱에서 글씨가 깨지고 화면 디자인이 이탈하는 경우가 왕왕 벌어지곤 한다. 스마트폰 화면은 너무 작고, 스크린 크기를 키우면 시니어들에게는 손목에 무리가 갈 정도로 너무 무겁다. 안 쓸 수는 없는 것이, 어딜 가나 QR코드는 제시해야 한다. 어머니 혼자 있을 때 잘못 넘어지기라도 할까 싶어 최신형 애플워치를 매어드렸더니, 너무 무거워서 찰 수가 없다고 한다. 이제 겨우 육십인데 말이다.
 
갤럽에 따르면 2021년 6월 현재 60세 이상 여성의 77%, 남성의 90%가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있다. 스마트 워치에 대해선 60대 이상 남녀를 통틀어 13% 정도가 사용하고 있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다양한 분야에서 시니어를 위한 앱이 출시되고, 더 편히 쓸 수 있도록 돕는 부가 기능이 붙는다. 발상을 바꿔서, 일상 속 아무 옵션도 없는 기본 설정값(default) 자체가 이들에게 더 맞춰질 수는 없을까? 디자인이 다소 투박해 보일지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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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일보와 JTBC 기자로 일했고, 이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이미지 빅데이터분석, 로봇저널리즘, 감성 컴퓨팅을 활용한 미디어 분석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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