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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여야 대표 회동과 ‘똥물’의 추억

중앙일보 2021.07.20 00:32 종합 27면 지면보기
김형구 정치에디터

김형구 정치에디터

잘 나가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코너에 몰렸다. 여야 대표 합의 번복 소동의 여파다. 지난 12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만찬에서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에 합의했다가 1시간 40여분 만에 철회한 이후 이 대표를 향한 민주당의 공격은 조롱에 가깝다. “100분 만에 말을 뒤집는 100분 대표”(윤호중 원내대표), “똥볼을 찼다”(강병원 최고위원) 등.
 

송영길·이준석 합의 번복 소동
21대 총선 “똥물” 발언 파동 소환
‘누더기 선거법’ 책임지고 바꿔야

합의 번복 후폭풍에 묻혀가는 듯하지만 송영길·이준석 대표 만찬 회동 합의문 가운데 정작 눈길을 끈 건 따로 있었다. 지난해 21대 총선을 ‘막장극’으로 치닫게 한 비례 위성정당을 더는 낳지 않기 위해 공직선거법 개정에 합의한다는 약속이었다. 이 대목에서 떠오른 건 지난해 4·15 총선을 한 달 보름 여 앞둔 2월 26일 저녁 서울 한 식당에서 목격한 ‘민주당 실세 5인방(이인영·윤호중·전해철·홍영표·김종민 의원) 마포 회동’이다. 비례 위성정당을 만들 경우 누구와 연대하느냐를 얘기하다 “심상정(당시 정의당 대표)은 안 된다. 정의당이나 민생당이랑 같이하는 순간 똥물에서 같이 뒹구는 것”이라는 소리가 문틈 사이로 새 나온 그 회동이다. 중앙일보의 첫 단독 기사 본문에선 차마 그대로 옮기지 못해 ‘X물’이라고 표기했지만, 순식간에 세상이 다 알아버리고 만 그 ‘똥물’ 발언이 나온 날이다.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골간으로 한 선거법 개정안은 ‘꼼수’ ‘민낯’ ‘누더기’ ‘민의 왜곡’ 등 정치 기사에서 쓸 수 있는 온갖 비판 표현으로도 설명이 부족한 정치 퇴행을 불렀다. 정당 득표율과 실제 의석수를 최대한 일치시켜 건전한 다당제와 함께 협치 문화를 정착시킨다는 본래 취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정치적 자구책’을 이유로 의원 꿔주기 논란 끝에 맨 먼저 비례 위성정당(미래한국당)을 창당한 당시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그리고 “비례정당은 위장정당”(지난해 2월 18일 이인영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이라고 했다가 불과 8일 만에 “(대통령) 탄핵을 막으려면 어쩔 수 없다”(마포 5인 회동)며 본색을 드러낸 민주당은 거대 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리얼하게 보여줬다. 당시 선거법 협상 과정에서 “국민은 (비례대표 배정) 산식(算式)이 필요 없다”며 스스로를 유권자들과 유리한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제 발등을 찍은 꼴이 됐다.
 
서소문 포럼 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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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대거 여의도에 입성한 비례대표 의원들은 또 어땠는가. 급조된 창당 과정에서 검증은 부실했고 졸속이었다. 그 결과는 양정숙·김홍걸·양이원영·윤미향 등 그간 민주당에서 출당된 4명의 비례대표 의원 사례가 말해준다. ‘180석’의 힘을 앞세워 입법 독주를 해온 민주당의 오만은 결국 4·7 재·보선의 역대급 참패로 심판을 받았다.
 
그런데 민주당은 이렇게 뒤틀려버린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사실은 자신들이 배출한 김대중(DJ)·노무현·문재인 등 전·현직 대통령의 오랜 꿈이기도 하다는 걸 일부러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은 듯했다. DJ는 1998년 6월 조세형 당시 국민회의 총재권한대행에게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를 혼합한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을 적극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10년 자서전 『운명이다』에서 이런 고백을 털어놨다. “나는 여전히 국회의원 선거구제를 바꾸는 것이 권력 한 번 잡는 것보다 훨씬 큰 정치 발전을 가져온다고 믿는다. 독일식 권역별 비례대표제가 제일 좋겠지만 도농(都農)복합선거구제라도 차선이 될 수 있다.”
 
이들을 잇는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2017년 대선 공약집엔 ‘국회의원 선거에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이 들어 있다. 문 대통령이 당 대표로 있던 2015년 7월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의 혁신위원회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정치 혁신안으로 제시한 적도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당시 혁신위원 중 하나였다.
 
이런 민주당의 ‘자기 부정’을 대하노라면 선거제 개혁에 어떤 노선과 철학이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송영길·이준석 두 대표가 드러낸 취약한 리더십을 감안하면 선거법 개정 합의 약속도 과연 지켜지겠나 싶다.
 
지난해 2월 마포 어느 식당에서 거칠게 튀어나온 ‘똥물’이란 표현은 기득권 정당들의 ‘욕망’이 드러낸 이전투구와 추악으로 점철된 21대 총선 자체를 상징하는 말처럼 느껴진다. 여야는 이제라도 선거법 개정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특히 선거법 처리를 강행해 우선 책임이 큰 여당의 송 대표는 야당과 협의해 국회 정치개혁특위 구성 등 후속 논의에 속히 착수해야 한다. 여당 대선 주자 6명도 정치 개혁 의지가 있다면 힘을 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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