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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린 생수·쿨매트 받으려 50m 줄…쪽방촌, 폭염은 재앙이다

중앙일보 2021.07.17 05:00
16일 오후 영등포 쪽방촌 골목에서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린 이후 모습. 여성국 기자

16일 오후 영등포 쪽방촌 골목에서 소방 호스로 물을 뿌린 이후 모습. 여성국 기자

"이제야 좀 식혀지네."
체감 온도가 36도를 넘은 16일 오후 서울시 영등포구 쪽방촌 골목, 김형옥(51) 영등포 쪽방상담소장 등은 분주하게 소방 호스를 꺼내 물을 뿌렸다. 호스를 쥐고 물을 뿌리는 김 소장의 티셔츠는 땀에 잔뜩 젖어있었다. 주민들은 삼삼오오 나와 더위를 식혔지만 서늘함은 찰나였다. 15분쯤 지나자 언제 물을 뿌렸냐는 듯 골목은 다시 더위를 뿜어냈다. 
 
김 소장은 이날 오후 쪽방촌을 돌며 생수를 나눠주고 주민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영등포 쪽방촌에는 468가구, 약 500명이 살고 있다. 이 중 40명은 건강이 안 좋은 고위험군으로 쪽방 상담소 관계자가 매일 방문하며 건강을 확인하고 있다. 
 
김형옥 영등포 쪽방상담소장. 여성국 기자

김형옥 영등포 쪽방상담소장. 여성국 기자

김 소장은 "최근 2년간 주민들에게 선풍기 350대를 공급했고, 다음 주 선풍기 50대를 확보해 순차적으로 지원할 예정"이라며 "코로나 19에 올해는 폭염까지 겹쳤다. 주말은 소나기가 내린다고 해서 그나마 괜찮을 것 같은데 다음 주와 8월이 걱정"이라고 했다. 김 소장과 주민들은 "쪽방촌 바로 옆에 고가도로와 그늘이 있어서 그나마 우리는 괜찮은 편"이라며 다른 쪽방촌에 사는 사람들을 걱정했다.   
 

폭염에 고통받는 쪽방촌…"국가적 재난"

15일 종로구 돈의동 쪽방 상담소 '새뜰집' 앞에는 70~80명이 50m 넘게 줄을 서 있었다. 이들은 휴지, 비누, 얼린 생수와 쿨매트가 담긴 '폭염 키트'를 받으러 온 쪽방촌 주민들이다. 돈의동 쪽방촌에서 11년을 거주한 A(56)씨는 "너무 더워 잠도 못 자고 방에서 빙빙 돈다. 밖을 돌다 와 잘 때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쪽방촌 집들은 문과 창문이 모두 열려있었다. 무더위는 3평 남짓 좁은 방의 일상을 모두 드러냈다. 방마다 켜진 TV 소리가 제각각 흘러나왔다. 골목에서 빨간색,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를 꺼내 앉은 주민들은 "갈수록 여름이 더 더워진다"며 연신 부채질을 했다.
서울 종로구 쪽방촌에서 집집마다 문을 열고 있다. 박지영 인턴기자

서울 종로구 쪽방촌에서 집집마다 문을 열고 있다. 박지영 인턴기자

 
최선관(43) 돈의동 쪽방상담소 실장은 "간호사 한 분이 주민 540명 중 30명의 건강 고위험군을 관리하고 있다"며 "폭염에 무더위 쉼터도 24시간 가동하고 있다"고 했다.   
 
근처에 있는 창신동 쪽방촌의 풍경도 다르지 않다. 16일 김희현(41) 동대문 쪽방 상담소 실장은 골목을 누비며 꽝꽝 얼린 생수 100병을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곳곳에 자물쇠가 채워진 방들이 많았다. 김 실장은 "방이 너무 더워 지하철이나 에어컨 나오는 곳으로 피서를 가셔서 안 계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폭염은 국가적인 재난이나 다름없고 쪽방촌 같은 취약계층이 더 고통을 겪는다"면서 "구청이나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관리하지 않는 한 상담소 차원에서만 대응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아침에 나가 새벽 에어컨 켜지기 직전 들어와" 

쿨루프 프로젝트. [중앙포토]

쿨루프 프로젝트. [중앙포토]

고시원과 옥탑방에 거주하는 이들도 폭염을 피할 방법을 찾고 있다. 서울 중구의 한 고시원에 거주하는 대학생 황모(28)씨는 매일 어디서 더위를 피할지 고민한다. 황씨는 "고시원이 중앙 통제 냉방이라 아침에 나갔다가 에어컨이 켜지는 새벽 1시 전에 들어온다"면서 "주로 카페나 도서관에서 더위를 피한다. 올해 폭염은 심상치가 않다"고 말했다. 황씨는 "매일 아침 나가며 이 공간을 어떻게 벗어날지 고민하고 자극받고 꿈꾼다"고 했다. 
 
옥탑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 온도를 낮추는 캠페인을 벌이는 십년후 연구소 송성희 대표는 "폭염은 1~2도 차이로 인명피해가 발생하기 때문에 옥탑에 사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등을 대상으로 온도를 낮추는 흰색 페인트를 칠해주고 있다"면서 "폭염이란 국가적 재난은 약자들부터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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