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올림픽 됐고 오타니 달라"···지금 일본 관심은 오직 이 남자

중앙일보 2021.07.17 05:00
도쿄올림픽 개막을 일주일 앞둔 16일, 일본은 무섭게 고요합니다. 거리에도 방송에도 "자, 축제가 시작된다!"라는 느낌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네요. '대목을 맞은' 스포츠신문들조차 애써 올림픽에서 눈을 돌리는 분위깁니다. 오히려 며칠째 일본 스포츠신문의 1면은 이 사람으로 채워지고 있죠. 미국 메이저리그 로스앤젤러스 에인절즈의 투수 겸 타자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27) 선수입니다. 
 

[도쿄B화]
코로나 속 열리는 '상처뿐인 올림픽'
국민 마음 위로하는 오타니 쇼헤이

메이저리그에서 투수와 타자 모두 발군의 활약을 보이는 오타니. [로이터=연합뉴스]

메이저리그에서 투수와 타자 모두 발군의 활약을 보이는 오타니.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2018년 경기 중 타석에 등장하며 헬맷을 쓰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 선수. [AP=연합뉴스]

지난 2018년 경기 중 타석에 등장하며 헬맷을 쓰고 있는 오타니 쇼헤이 선수. [AP=연합뉴스]

 
일본 정부는 올림픽으로 국민들의 자긍심을 고취하고 싶어했지만, 일본인들에게 올림픽은 이미 피해갈 수 없는 상처로 인식된 듯합니다. 그저 흉터나 크지 않길 기대하며 빨리 지나길 바라는 마음같습니다. 무거운 분위기 속에 사람들을 웃게 하는 단 하나의 존재가 바로 오타니입니다. 
 
오타니는 메이저리그 4년 차인 이번 시즌 상반기에만 아메리카·내셔널리그 최다 기록인 33개의 홈런을 치고 투수로서도 4승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13일(현지시간) 열린 올스타전에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선발투수인 동시에 1번 타자로 출전했죠.
 

'야구만화'에서 튀어나온 천재

마쓰이 히데키(松井秀喜)·스즈키 이치로(鈴木一朗)·다르빗슈 유(ダルビッシュ有) 등 메이저리그에서 큰 성과를 거둔 일본인 선수는 꽤 많습니다. 하지만 오타니는 그들과는 '레벨이 다른' 느낌입니다. 야구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외모에 재능, 인성까지 갖춘 '완벽남'이죠. 
 
무엇보다 공을 던지기도 치기도 잘하는 '이도류(二刀流) 천재'라는 사실이 새로운 '아우라'를 선사합니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이도류로 주목받은 선수는 무려 한 세기 전 야구 스타 베이브 루스(1895~1948)가 유일하다고 하니까요.
 
13일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등장한 오타니 쇼헤이 애니메이션 영상. 베이브 루스가 오타니 쇼헤이를 지켜보는 장면이다. [유튜브 캡처]

13일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등장한 오타니 쇼헤이 애니메이션 영상. 베이브 루스가 오타니 쇼헤이를 지켜보는 장면이다. [유튜브 캡처]

 
현실감 없는 영웅의 등장에 어리둥절해 하는 분위기까지 엿보입니다. 일본에서는 요즘, '오타니, 얼마나 대단한가?'를 다른 영역에 비유해 표현하는 놀이가 한창인데요. 도쿄신문에 따르면 문학계에선 "고전 시조와 현대시를 자유자재로 오고가는 대문호"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쪽이 조금 더 설득력 있네요. "같은 해에 아카데미상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고, 그래미상에서 최우수 앨범상을 받은 격이라 할까요."
 

미야모토 무사시·오타니 '평행이론' 

오타니의 등장으로 다시 주목받는 역사 속 인물도 있습니다. '이도류'는 원래 일본 검술에서 오른손과 왼손에 각각 검을 들고 싸우는 기술을 뜻하죠. 이 이도류를 창시한 사람이 바로 에도(江戶)시대 초기 전설적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藏·1582~1645)입니다. 
 
미야모토 무사시의 일생을 그린 만화 '배가본드' 30권 표지. [고단샤]

미야모토 무사시의 일생을 그린 만화 '배가본드' 30권 표지. [고단샤]

 
과장됐다는 설도 있습니다만 미야모토 무사시는 13살의 나이에 검을 들고 전투에 나가 평생 60차례 결투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양손에 검을 들고 '귀신의 검술'을 보여줬다는 그의 이야기는 일본 문화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죠.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대하소설 『미야모토 무사시』와 '슬램덩크'를 그린 만화가 이노우에 다케히코(井上雄彦)가 이 소설을 원작으로 그린 만화 『배가본드』가 유명하죠. 
 
수행과 정진으로 검술을 철학으로 끌어올린 미야모토 무사시처럼, 오타니 역시 야구를 통해 도를 닦는 듯한 모습으로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볼넷으로 1루에 출루하던 오타니가 갑자기 운동장에 떨어진 쓰레기를 주워 주머니에 넣는 모습이 포착됐습니다. 오타니는 쓰레기를 자꾸 줍는 행동에 대해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말했죠.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운(運)을 줍는 겁니다."  
 

올림픽과 오타니 경기 겹치면?

올스타전이 끝나도 메이저리그는 이어지기 때문에 오타니는 도쿄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습니다. 그러자, 일본 방송사들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올림픽 중계방송과 오타니 선수의 경기가 겹칠 경우,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하는가입니다.  
 
오타니 쇼헤이 관련 뉴스로 1면을 채운 16일자 일본 스포츠신문들. [이영희 기자]

오타니 쇼헤이 관련 뉴스로 1면을 채운 16일자 일본 스포츠신문들. [이영희 기자]

 
올림픽 때문에 오타니의 경기를 보여주지 않으면 시청자들의 불만이 폭발할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NHK 측은 "올림픽과 패럴림픽, 오타니 중계를 둘 다 방송할 수 있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면서 일단 시청자들을 안심시켰습니다. 
 
16일 도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감염자 수는 1271명으로 폭증했고,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총리는 올림픽 D-7 각료회의에서 "안전·안심 올림픽"을 다시 읊었네요. 
 
하지만 그보다 오타니의 올스타전 유니폼이 경매 하루 만에 1200만엔(약 1억 2400만원)을 돌파했다는 뉴스를 훨씬 많은 사람이 봅니다. "오타니 없었으면 어떻게 이 시기를 견뎠을까"라는 댓글이 쏟아지니, 이 광풍은 꽤 오래 갈 것 같습니다. 
 

[도쿄B화] 더 보기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