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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 원뜻은 ‘공정한 처우’…국민들이 폭넓게 지지해야 성공

중앙선데이 2021.07.17 00:21 745호 26면 지면보기

콩글리시 인문학

정부는 지난 14일 청와대에서 제4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를 열고 2025년까지 총사업비 220조원을 투입해 일자리 250만 개를 늘리겠다고 밝혔다. 딜(deal)은 포커 게임에서 카드를 섞어서 돌린다는 의미다. 뉴딜(new deal)은 새로 한 판을 시작한다는 뜻임으로 국면의 대전환이나 새로운 도약을 가리킨다.
 

‘한국형 뉴딜’ 거창한 구호 일관
대선 앞두고 편가르기 말아야

코로나 팬데믹으로 자영업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일반 국민의 삶이 피폐해지자 1년 전 정부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혁신 정책을 내놓았고 이를 한국판 뉴딜로 포장했다.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탄소의존 경제에서 저 탄소 경제로! 불평등 사회에서 포용사회로! 이런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혁신, 도약, 대전환 등 big word를 총동원했다.
 
비대면 수요가 늘어 디지털 경제로 빠르게 전환되면서 노동시장 구조가 변하고 있다. 한국판 뉴딜은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고 국민들의 삶은 앞으로 얼마나 나아지고 나라는 어떻게 반석 위에 서게 될런지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 그래서 실질적인 사업, 목표, 내용이 손에 와 닿지 않는다. 특히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과제, 곧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 만들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한국판 뉴딜은 거창한 구호, 그럴법한 용어, 추상적 표현으로 일관돼 있다.
 
1929년 검은 화요일 대공황은 1932년까지 지속적으로 나빠졌다. 이에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대규모 공공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만들어 대중의 구매력을 높이고 금융과 산업에 강력한 통제 정책을 실시했고 최저임금제 도입과 사회복지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테네시계곡 개발공사로 대표되는 공공사업은 고용창출에 기여하고 인위적인 수요창출을 해낸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당시 국가가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한다고 해서 뉴딜은 좌우에서 비판을 받았다. 공황을 생산 감소가 아닌 수요 부족으로 파악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적극적 투자 그리고 수요창출 정책을 추진했다. 이른바 케인스주의(keynesianism) 정책이었다.
 
지난 번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기념관을 찾아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자신의 롤 모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국판 뉴딜은 루스벨트 시대와는 여러 면에서 판연(判然)히 다르다. 그 때에 비하면 경제 구조가 다르고 국제관계가 다르고 사람들의 욕구가 다르다.
 
New Deal이란 용어는 루스벨트 덕에 ‘대도약’이나 ‘180도의 전환’을 의미하게 됐지만 원 뜻은 공정한 처우 fair deal을 말한다. 뉴딜 정책은 소외된 노동자층과 이민자들에 대한 포용정책으로 실업자 구호, 경제회복, 사회보장제도 정착 등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공정하게 대우함으로써 성공한 케이스다. 보다 중요한 점은 국민들의 폭넓은 지지가 뉴딜정책의 성공 요인이었다는 사실이다.
 
소위 노변정담(爐邊情談, fireside chats)이 그것이다. 라디오방송을 통해서 화롯가에 앉아서 국민들과 정담을 나누듯 정부정책을 자세히 설명하고 동의를 구한 루스벨트 대통령은 소통의 달인이었다. 네 편 내 편 가르기에 익숙한 지금 정부는 공정 대우 square deal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deal은 원래 카드 돌리는 일을 뜻하지만 때로 마약의 밀거래를 의미한다. 그래서 dealer는 마약상이다. 한국판 뉴딜이 대선(大選)을 앞두고 covid-19 수렁에 빠진 우리 경제빙하기(氷河期)에 한 방의 마약주사로 끝날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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