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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앱·인증 그게 뭐냐” 어르신들, 온라인 예약 못해 좌절

중앙선데이 2021.07.17 00:20 745호 5면 지면보기

코로나 속 디지털 소외 고령층 

최원규 (71·서울 중랑구)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예약하던 때만 떠올리면 아직도 식은땀이 흐른다. 지난 5월 사전 예약 대상자였던 최씨는 여러 차례 온라인 예약에 실패했다. 젊은 사람은 스마트폰이나 PC를 이용해 10분이면 예약할 수 있지만, 전화 통화만 주로 이용하는 최씨에겐 불가능한 일이다. 거동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주민센터를 두 번이나 방문했지만 헛걸음이었다. 처음에는 업무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고, 두 번째 찾았을 땐 예약 기간이 끝났다. 지방에 사는 40대 외동딸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웠다. 지난달 말 사회복지사 지원으로 ‘4수’ 만에 간신히 추가 예약에 성공한 최씨는 “콜센터는 전화를 받질 않고 버스 타고 가야 하는 구청은 너무 멀어 사실상 접종을 포기하고 있었다”며 “앱이고 인증이고 하나도 모르는데 사회복지사가 휴대전화로 뚝딱 예약하는 걸 보니 신기하면서도 허탈하더라”고 말했다.
 

독거노인, 백신 접종 예약 어려워
자녀·공무원 도움 못 구해 ‘쩔쩔’

55세 이상 정보화 수준 69% 불과
고령층 디지털 교육체계 고민해야

코로나19 백신 온라인 사전예약이 연일 폭주하고 있는 가운데 디지털 기기 이용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은 소외되고 있다. 이순옥(62·전북 고창군)씨는 최근 단체로 주민센터 현장 예약을 위해 25인승 버스 대절에 나섰다. 이씨는 “마을에서 가장 젊다는 이유로 마을 이장까지 맡고 있지만 나 역시 2G 휴대전화를 써서 인터넷을 잘 모른다”며 “면사무소에 백신 예약자가 한꺼번에 몰리다 보니 거기서도 1시간은 족히 기다렸다”고 전했다.
 
14일 중앙방역대책본부(방대본)에 따르면 국내 60~74세의 백신 1차 접종률은 80%를 웃돈다. 노인시설 입소자의 경우 94.9%, 75세 이상 고령층은 85.6%다. 수치상으로는 고령층의 백신 접종이 예약부터 접종까지 일사천리로 보인다. 하지만 실상을 살펴보면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온라인 사전예약을 하려면 홈페이지 또는 앱에서 휴대전화나 공인인증서를 통한 본인 인증이 필요한데 여기서부터 난제다. 작은 글씨로 빼곡히 적힌 의료기관명과 접종 시간표를 읽는 것조차 쉽지 않다. 겨우 인증을 통과하면 본경기가 남아있다. 서울 수유동에 사는 김하늘(29)씨는 “지난 12일 어머니 몫의 백신 예약에 실패해 14일 퇴근 후 PC로 ‘광클’했지만 내 앞 대기자만 23만7773명이 있었다”며 “젊은이인 나도 대학 수강 신청하는 마음으로 하는데 어떻게 어르신들이 혼자서 온라인 예약을 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백신 접종 증명서 발급도 고행길이다. 별도의 ‘COOV’ 앱을 내려받고 본인인증을 거쳐야 한다. 앱 대신 종이 인증서로 발급받으려면 의료기관에 별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노인세’라고 지적한다. 무료로 발급받으려면 주민센터를 따로 방문해야 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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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서 도움을 받기도 마땅치 않다. ARS콜센터(1339)는 전국 단위로 예약자가 몰리다 보니 먹통일 때가 많다. 읍·면·동 주민센터는 운영 시간 및 인력 제한으로 백신 접종 지원이 우선순위에서 밀려 있는 게 현실이다. 방역 당국은 지난 6일부터 지자체를 통한 75세 이상 어르신의 백신 접종 예약 지원 업무를 종료했다. 접종 대상자는 8일부터 본인 및 가족 책임으로 개별 예약해야 한다. 서울 중랑구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한모(32)씨는 “백신 접종이 의무사항이 아니다 보니 일일이 확인하지 않는 이상 예약하지 않은 어르신을 알 길이 없다”고 설명했다. 특히 고립 상황에 놓인 어르신이 온라인 기반 백신 접종에서 배제될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독거노인은 159만명이다. 전체 노인 인구 중 19.6%로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중장년층도 디지털 소외 현상의 예외는 아니다. 노인층보다 스마트폰 이용률이 높지만, 인터넷과 앱 이용에 어려움을 느끼는 건 마찬가지다. 방역 당국은 지난 12일 처음으로  50대 백신 접종을 시작했지만 사실상 자녀들의 ‘광클 대리전’으로 일단락됐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나영선(58)씨는 “평소 젊은 교사들과 PC로 업무도 하기 때문에 백신 예약에 자신 있었지만, 막상 접속하니 홈페이지는 접속이 되지 않고 인증에서 계속 장애가 생겨 당황했다”며 “결국 오전 5시에 서울에 사는 직장인 며느리에게 SOS를 쳤다”고 말했다.
 
고령층의 디지털 소화 능력은 여전히 낮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발표한 ‘2020 디지털 정보 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55세 이상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이 68.6%에 불과했다. 디지털 기기를 자유자재로 쓸 수 있는 능력치가 100이라고 할 때 고령층은 69 정도만 가능하다는 얘기다. 저소득층 (95.1%), 장애인(81.3%), 농어민 (77.3%) 등 4대 디지털 정보 취약계층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연령대별 디지털 격차가 심한 상황에서 바이러스 정보나 백신 접종이 온라인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인터넷이 노인들의 생과 사를 가르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황남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디지털 격차는 단순히 정보 격차 수준에서 머무는 게 아니라 사회 불평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주거, 임금 격차만큼이나 중요한 사회 현안”이라며 “고령층뿐 아니라 4050까지 아우를 수 있는 디지털 교육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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