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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주 권익 지키는 ‘행동주의 투자’ 파수꾼, 경영자에겐 공포

중앙선데이 2021.07.17 00:20 745호 22면 지면보기

[월스트리트 리더십] 엘리엇 CEO 폴 싱어

코로나19 위기 이후 재계 및 투자업계의 최대 화두는 ‘ESG(환경·사회적책임·지배구조)’다. 이미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관심이 증대하고 있던 차에 맞닥뜨린 초유의 사태는 기업을 향한 ESG 잣대를 높이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자연 재해라고 할 바이러스의 공격에 속수무책인 우리 사회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환경과 사회를 중심에 둔 ESG 경영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버린 것이다.
 

부실기업 지분 매수 후 경영 관여
요구 관철 위해 의결권 다툼까지

부실채권 투자 성공한 게 밑거름
변호사 출신, 법적 싸움서 맹활약

평균 2년간 투자, 단기 실적 몰입
구조조정, 대량 해고 야기 논란도

이런 상황은 주주·고객·직원·지역사회 등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위상에도 큰 변화를 초래하고 있다. 특히 기업의 주인으로서 절대적 지위를 누리던 주주는 이제 여타 이해관계자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될 처지에 놓여있다. 지난 반세기를 풍미했던 ‘주주 자본주의’는 이렇게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에 주도권을 넘겨주고 있다.
 
미 공화당 최대 후원자, 정치적 영향력
 
폴 싱어

폴 싱어

자본주의의 방향 전환에 가장 비판적인 투자자가 폴 싱어 엘리엇 매니지먼트(엘리엇) CEO다. 주주의 위상이 약화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핵심인 재산권의 침해이며, 다른 이해관계자의 경영 관여는 결국 기업 가치의 훼손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주주로 일원화되어 있던 CEO와 이사회의 책임 대상이 분산되면 누구든 목소리 높여 압력을 행사하는 이해관계자의 영향력이 커질 수밖에 없고, 이는 기업의 효율성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대다수 금융회사가 ESG라는 사회적 요구에 호응하는 분위기에서 싱어는 그야말로 비난을 각오하고 소신 있는 주장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싱어의 신념은 엘리엇의 대표적 투자 전략인 ‘행동주의 투자’에서 잘 드러난다. 200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 전략은 부실 경영 탓에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기업의 지분을 매입한 후 주주로서 경영 활동에 적극적으로 관여해 기업 가치를 증대시켜 주주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대부분 투자자가 주가 움직임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며 주식을 사고파는 데 반해 싱어는 경영에 직접 개입함으로써 주가 상승을 끌어낸다. 주주 자본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동주의 투자를 실천하는 것이다.
 
폴 싱어 (Paul Singer)
엘리엇 매니지먼트 공동 CEO 겸 공동 CIO
출생연도 1944년 (77세)
최종 학력 하버드대 로스쿨(JD) (1969년 졸업)
개인 자산 43억 달러(2021년 7월 기준, 포브스)
미국 222위 세계 665위
싱어의 행동주의 투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먼저 주주의 권익을 지키는 최고의 파수꾼이라는 평가다. 이는 싱어의 투자에 대한 주주들의 긍정적인 반응에서 잘 나타난다. 싱어의 투자 리스트에 올랐다는 뉴스만으로도 그의 주주 활동에 대한 기대로 주가가 빠르게 상승한다. CEO에겐 자신의 직을 걸어야 할 전쟁의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다. 경영 개선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 여론전은 물론 의결권 다툼과 법적 분쟁까지 불사하는 싱어에게 대응하려면 대단한 각오와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싱어가 전 세계 CEO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투자가로 꼽히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반면 논란이 되는 것은 실행 방법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대량 해고와 지역 경제 침체를 동반하기도 한다. 미래를 위한 투자 대신 보유 자산을 매각하고,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늘리는 경향으로 인해 단기 실적에 몰입한다는 비난을 받는다. 이런 논란은 헤지펀드가 대체로 투자의 호흡이 길지 않다는 데서 출발한다. 실제 엘리엇의 평균 투자 기간은 2년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이 같은 비난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행동주의 투자를 포함해 싱어가 펼치는 투자 활동의 일관된 키워드는 ‘적극적 관여’다. 행동주의 투자가 주주 이익의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것처럼, 또 다른 주요 투자 전략인 부실채권 투자에선 온전한 원리금 회수를 목표로 삼고 적극 투자에 임한다. 이는 ‘운명을 스스로 개척한다’는 자신의 인생관과 맥을 같이 한다. 다른 사람이나 시장이 아닌 자기 자신이 투자 전반에 걸쳐 주도권과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투자 대상의 가치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싱어에게 적극적 관여란 곧 투자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한 최고의 방법을 의미하기도 한다.
 
주주 가치 침해하는 ESG 경영 비난도
 
1980년대 후반 부실채권 투자에 뛰어든 것은 오늘날의 싱어와 엘리엇을 있게 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1977년 엘리엇을 설립한 후 10년 동안 오로지 전환사채(CB) 차익거래에만 집중하던 싱어가 새로운 투자 대상으로 발굴한 것이 부실채권이었다. 1987년의 블랙먼데이와 뒤이은 경기침체는 부실채권을 양산했고, 싱어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이전 경력과 개인적 성향이 부실채권 투자가 필요로 하는 조건과 잘 맞아떨어졌다. 월가 변호사 출신으로서 사법 시스템을 활용하는 능력이 뛰어났고, 치열한 법적 다툼에서 특유의 냉철함과 끈기를 발휘하며 온갖 험한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 결과 최악의 소송 전으로 이어진 TWA, 유로터널, 리먼브라더즈 등에 대한 투자에서도 높은 수익을 거두며 근성 있는 투자가라는 명성을 쌓을 수 있었다. 부실채권 투자의 정점은 그 유명한 페루와 아르헨티나 국채 투자였다. 부도 사태에 봉착한 두 나라의 국채를 헐값에 매수한 싱어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며 원리금 전액을 성공적으로 회수했다.
 
한편 싱어의 영향력은 월가를 넘어 워싱턴 D.C까지 미치고 있다. 전통적 보수주의자인 싱어는 주요 선거마다 공화당의 최대 후원자로 이름을 올리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싱어의 후원을 받는 다양한 미디어와 싱크탱크는 그를 측면에서 지원한다. 결국 투자에서와 마찬가지로 공적 부문에서도 적극적 관여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그런데 싱어의 적극적 관여가 통하지 않는 대상이 하나 있다. 바로 미 연준(Fed)이다. 싱어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연준을 거세게 비난한다. 연준의 무책임한 통화정책이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동반 위기를 초래했다고 주장하면서다.
 
엘리엇 매니지먼트(Elliott Management Corporation)
설립연도 1977년
설립자 폴 싱어
업종 투자운용업(헤지펀드 운용)
운용 규모 418억 달러 (2021년 1월 기준)
직원 수 468명(2021년 1월 기준)
지난 금융위기 이후 시행한 극단적 완화 정책을 제때 정상화하지 못한 것이 양극화를 심화시켰고, 그 틈을 포퓰리즘이 파고들었다는 것이다. 싱어가 가장 중시하는 주주의 지위가 흔들리는 것도 결국 연준의 잘못이라는 얘기다. 연준이 조장한 왜곡된 성장 탓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 부담이 가중되고 그만큼 주주 가치는 하락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싱어는 어떤 대상이나 상황이든 적극적으로 관여해 주도권을 쥐고 통제하고자 한다. 그리고 거기엔 자신의 일관된 원칙이 깔려있다. 자본주의를 대하는 자세도 그렇다. 주주 가치 제고로 연결되지 않는 ESG 경영은 용납하지 않는다. 싱어가 기업에 요구하는 배당과 자사주 매입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검증되지 않은 ESG에 투자할 돈을 차라리 주주에게 돌려주는 게 낫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행동주의 투자자 싱어는 ESG 경영이 주주 가치를 침해하지 않는지 매의 눈으로 감시할 것이다.
 
손정의 회장, 싱어의 지배구조 개선안 수용해 기사회생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손정의(사진) 소프트뱅크 회장이 기사회생했다. 지난 3월 마감 회계연도 기준 5조 엔(약 51조원)이라는 일본 기업 역대 최고 이익을 기록하면서다. 위워크 상장 실패로 큰 손실을 기록하며 위기설에 시달리던 1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이렇게 짧은 시간에 소프트뱅크를 턴어라운드시킨 숨은 조력자가 바로 싱어다.
 
2019년 여름부터 소프트뱅크 주식을 매수하기 시작한 싱어는 3%까지 지분을 늘린 후 위기에 빠진 손 회장에게 경영 개선안을 제시했다. 싱어가 진단한 소프트뱅크의 문제점은 ‘낭비적인 투자’에 있었다. 이는 소프트뱅크의 시가총액이 투자한 기업 지분 총평가액의 40%에 불과한 데서 잘 드러났다. 손 회장이 알리바바와 같은 성공 투자에서 거둔 이익을 위워크처럼 잘못된 투자처에 투입할 것이라는 시장의 부정적 기대가 반영된 결과였다.
 
강한 성격의 두 사람이 충돌할지도 모른다는 주변의 우려와 달리 손 회장은 싱어의 제안을 대부분 수용했다. 시장의 부정적 기대를 불식시키기 위해 알리바바 지분을 포함한 보유 자산을 대거 매각하고 배당과 자사주 매입을 늘렸다. 싱어의 영향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싱어가 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소프트뱅크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혔던 손 회장의 독단적인 투자 결정을 가로 막은 것이다. 이 덕에 소프트뱅크도 위기설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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