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영남 "군대서 미남 노주현 만나…양주 퍼마시다 엽기사건"

중앙일보 2021.07.17 00:10

[조영남 남기고 싶은 이야기] 예스터데이 〈20〉 군대 생활 3년

와우아파트 타령이라는 노래를 딱 한 번 불러 서울시를 우롱했다는 죄로 나는 엉뚱하게도 군대에 끌려왔고 꼬박 3년을 꼼짝없이 군 복무하게 된다. 오늘은 나의 군대 얘기다. 신병훈련소부터 얘기는 시작된다. 사람들은 보통 훈련소 하면 논산을 댄다. 그러나 나는 논산이 아닌 조치원 훈련소 출신이다.
 

조치원 훈련소 6개월, 졸음과 전쟁
서울음대 동기 덕에 육군합창대 배속
고교 동창이 육본 중대장 맡아 놀라

‘장성 파티’ 단골 가수로 연일 노래
합창단 멤버로 TV에 출연하기도
상병 땐 100만 집회서 성가 불러

나는 타고난 적응력으로 훈련소 생활을 비교적 잘 꾸려나갔다. 우선 머리부터 짧게 깎고 훈련복을 배당받았는데 한눈에 봐도 먼저 다녀간 선배들이 입었던 빈티지 훈련복이었다. 그런대로 참아줄 만했다. 틈만 나면 앞에 나와 노래 부르라는 것은 벌써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에 요령껏 잘 견뎌낼 수 있었다.
 
조영남씨의 군대 훈련소 시절. 당시 현역병 복무 기간은 36개월이었다. [사진 조영남]

조영남씨의 군대 훈련소 시절. 당시 현역병 복무 기간은 36개월이었다. [사진 조영남]

남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훈련소 하면 나에게 가장 크게 떠오르는 생각은 훈련 6개월간 나의 고질병인 졸음과의 정면대결이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왜 그렇게 시도 때도 없이 졸음이 침공해 왔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조교가 무슨 얘기만 하면 잠이 쏟아져 왔고 나는 크게 작심을 하고 계획을 세운다. 곧 오게 되는 휴식 시간 5분을 딱 한 번만이라도 수면으로 이어가 보자, 크게 계획을 세우고 눈감은 채 기다리지만 정작 ‘휴식’이라는 신호만 들리면 언제 그랬더냐 싶게 정신이 번쩍 들고 두 눈이 말똥말똥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 생애 통틀어 가장 신체가 건강하던 때였다.
 
그러면 요즘은 어떤가. 그토록 무지막지하게 밀려오던 잠은 어디로 가고 요즘은 어서옵쇼 어서옵쇼 해도 잠은 안 온다. 수면제 반알을 털어먹어야 올락 말락 이다. 젠장! 늙었다는 뜻이다.
 
훈련 동기들, 소총 들어주는 등 도와줘
 
고된 훈련이 오후 늦게 끝나면 식판을 들고 줄을 선다. 이때를 잘 처리해야 한다. 다른 중대의 기간병들이 조영남을 보기 위해 습격해 오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야! 조영남 워딨지?” 머리를 빡빡 깎았기 때문에 비슷비슷해 보이는 모양이다. 심지어는 나한테 와서 조영남을 찾는 일도 있어 나는 천연덕스럽게 “요 근처에 있었는디 워디 갔지?” 대답했을 정도다. 동료들도 나를 숨겨주는 요령이 생겨났다. 정말 훈련소 동료들은 나를 눈물 나게 감싸고 돌았다. 완전 군장에 M1 소총까지 들고 행군 훈련을 할 때면 으레 막판에 나는 숨이 차 허덕인다. 그때마다 군장을 대신 받아주고, 소총을 대신 들어주는 말 그대로 뜨거운 전우애로 나는 훈련을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늦었지만 50년 만에 내 조치원 훈련병 동기들께 고마움을 전한다.
 
훈련 생활이 마냥 힘든 것만은 아니다. 취침 전 나는 팬한테서 온 편지, 특히 이태영 어머니가 보내준 편지를 읽고 답장을 쓸 때 달이 훤히 떴을 때는 괜히 멜랑콜리해지기도 한다.
 
참 놀라운 일이다. 이태영 어머니와 주고받은 편지를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여의도 이태영 법률상담소에 잘 간직하셨다가 몇 년 전 내 쪽으로 고스란히 돌려줬다. 대충 훑어봐도 꼭 화가 반 고흐와 그의 동생 테오가 주고받은 서한문과 매우 흡사하다.
 
나는 잠시 편지 내용을 일부 공개하느냐를 고심하다가 지면을 너무 많이 차지한다는 우려 때문에 이번에는 그냥 패스하고 내년쯤 나의 중앙SUNDAY 연재를 단행본으로 출간할 때 그때 전부 펼쳐 보인다는 잠정 계획을 세웠다.
 
6개월간의 훈련 끝날에는 훈련받은 신병들이 어느 지역, 어느 부대로 배치되는가가 초미의 관심을 끌게 된다. 훈련소장님의 격려 말씀 다음에 전국 각지에서 온 차출 장교 중에 제일 먼저 서울 육군본부사령부에서 내려온 차출 장교가 단상에 올랐는데 어라! 저 친구! 나의 서울음대 성악과 동기 동창생 최흥기가 아닌가. 그는 학군사관(ROTC)을 거쳐 새로 창설한 육군합창대 지휘를 맡게 됐고 나를 차출해가기 위해 여기까지 내려오게 된 거다. 최흥기 대위는 나를 비롯 유명 골프선수, 컴퓨터 기술자, 암산왕 등을 인솔해 그날 밤 기차로 서울 용산 소재 육군본부까지 올라온다.
 
다음 날 아침부터 나는 배호 선배의 노래 ‘돌아가는 삼각지’, 바로 그 용산 삼각지 근처 육군본부 사령실에서 테이블 하나를 배정받아 행정 군무를 시작하게 된다. 이때의 얘기, 조영남을 보러 오는 구경꾼이 너무 많아 차라리 밖에 나가 있다가 저녁 점호시간에 돌아오라는 새로운 지시를 받고 미술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지난 5월 14회에 자세히 써놨다.
 
용산에서 이태원으로 빠지는 큰 길가 본부 건물에 있던 식당으로 가 저녁을 먹고 곧장 다시 큰길을 건너 본부사령실 건물에 붙어 있던 합창연습실로 돌아와 합창 연습을 마치고 내무반으로 가서 취침에 들어가는 것이 나의 일과다.
 
오아시스레코드사의 71년 앨범. [사진 성승모]

오아시스레코드사의 71년 앨범. [사진 성승모]

육군본부에 배속받은 지 몇 달 후쯤의 일이다.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일이 또 생긴다. 어느 날 동료 사병이 나더러 “조 일병! 새로 오신 중대장님이 찾으셔. 빨리 가봐” 해서 달려가 경례를 하고 차려자세로 위를 바라봤다. 높은 장교의 눈을 보는 건 실례다. 신임 중대장이 말했다. “야! 조 일병. 앞을 똑바로 봐.” 나는 앞을 봤다. “어! 너 박치호!” 그는 용문고등학교 나와 같은 반 동창 녀석이었다. 무슨 간부 학교인가를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되어 공교롭게도 육본사령부 중대장으로 부임해 온 것이다. TV 프로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수 있을 만큼 희한한 확률. 합창대장 최흥기 대위가 대학동창. 육본 중대장이 고교동창. 나는 지금 내 얘기를 읽고 계신 중앙SUNDAY 독자님들이 이런 사실을 알면 그대로 믿어주실까 심히 의심이 된다(박치호는 제대 후 금방 병으로 죽었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특이한 군대생활을 했다. 러시아에는 알렉산드로프 앙상블(The Alexandrov Red Army Choir), 즉 러시아 군대 합창단이 있다. 엄청 유명하다. 합창단 중에는 단연 세계 최정상급이다. 한국 육군합창단 역시 러시아를 롤 모델로 창설되었다. 조영남이 속해 있으니 충분히 유명해졌다. TV 방송에도 종종 출연했다.
 
그러나 나 조영남에겐 그보다 더 중요한 임무가 따로 있었다. 육군본부와 바로 붙어 있는 국방부에는 별들이 넘쳐난다. 별을 단 장성들이 많다는 얘기다. 전쟁 중이 아니므로 장성 파티가 많이 열린다. 장성 파티에 행여 가수를 초청할 경우 큰 비용이 소요된다. 당시 ‘딜라일라’를 부른 최정상의 가수 조영남이 육군 현역병으로 왔으니 우습게 들리겠지만 장성 파티엔 안성맞춤이 아닌가.
 
장성 파티 단골 가수로 근무하면서 두 가지가 생각난다. 첫째는 문물을 익혀야 한다고 깨달은 점이다. 우선 영어를 배워둬야 한다. 바로 그것이다. 가령 한국 장성과 미국 장성의 부부동반 스탠딩 파티가 열렸을 경우 처음에는 그런대로 잘 섞여 있다. 그러나 내 노래 두 곡이나 세 곡쯤 지날 때면 희한하게 분리된다. 한복 입은 장성 부인들이 한쪽 구석으로 몰려간다. 원인은 간단하다. 언어가 안 통하기 때문에 슬금슬금 말이 통하는 한복끼리 모이게 된다는 얘기다. 그런 광경을 내려다보며 나는 어떤 경우에도 영어를 익혀둬야 한다는 결심이 서게 됐던 거다.  
 
또 하나는 장성 파티 공연 중간에 술을 얻어 마신 것이다. 장성 파티에서 노래를 부르게 되면 재밌는 일들이 발생하곤 한다. 짓궂은 장성이 “조 일병! 쭉 불러” 소리친다. 무슨 소리냐 하면 내가 노래 한두 곡을 부르고 나서 어물어물 서 있으면 계속 노래를 이어 부르라는 명령(?)이다. 별과 밥풀때기 두 개의 일등병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이다. 별을 단 상관이 쭉 부르라는데 이유를 달 수가 없다. 쭉 아는 노래를 다 불러야 한다. 그런 때에 누군가 점잖은 목소리 우아하게 권위가 실린 목소리로 “조 일병! 노래 그만하고 이리 와. 술 한 잔 마시고 노래해!” 하며 친절하게 술을 친히 따라주시고 먹을 것을 챙겨주곤 했다.
 
내 군대생활의 하이라이트는 상병(밥풀때기 3개) 때의 일이다. 나는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 그레이엄의 여의도 집회 때(100만 명 이상의 세계 최대 부흥회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단다) 군복 차림으로 특별 성가를 부르게 된다. 육본 교회에 가끔 초빙되셨던 수원중앙침례교회 김장환 목사님이 어느 날 “조 상병! 빌리 그레이엄 전도 집회가 곧 열리는데 아마 내가 통역할꺼여. 그때 내가 조 상병 특송을 하게 만들꺼여”, ‘수원 사투리’로 알려주었는데 실제로 그 일이 성사되었다. 김옥길 이화여대 총장님, 법정대학장 이태영님이 힘을 써주었다는 얘기도 들었다.
 
실제로 나는 세계적인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난 후 그쪽 음악담당 클리프 배로우 목사님의 요청을 받게 된다. “제대 후 우리가 미국에서 요청을 하면 미국에 올 의향이 있는가.” 이런 요청에 나는 영어로 대답한다. “예스(Yes).” 그런 연유로 당시엔 미국 건너가기가 쉽지 않을 때였는데 나는 제대 후 도미하게 된다.
 
술에 취해 김영옥씨 방에 들어가 벌렁
 
제대 말년엔 군대생활이 더욱 수월해졌다. 유신 시대에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던 강창성 장군이 이끄는 보안사에 파견 근무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건 행운이 넝쿨째 굴러온 셈이다. 무엇보다 영외, 즉 집에서 출근할 수 있고 사복 근무도 가능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유신이 무엇인지 잘 모르지만 박정희 당시 대통령이 유신을 발표하면서 유신 선전 연극단을 보안사령부에서 결성했기 때문에 그 영향권에 있었다. 연극 제목은 ‘학당골’. 전방에서 근무하던 남자 탤런트 미남 노주현과 육본에서 근무하던 추남 조영남을 끌어내어 남자 주인공을 시켰다. 여자 쪽에서는 TV에 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던 한혜숙, 박원숙, 강부자, 김영옥, 고인이 된 사람은 여운계와 추송웅, 강계식 등이다.
 
초청받은 군부대나 일반 극장에서도 공연이 가능했다. 워낙 초호화 캐스팅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막강한 보안사 소속 연극단이기 때문에 어딜 가나 대접이 융숭했다. 그때는 엄청 귀하던 양주가 연극단장 황 소령 앞으로 넉넉히 들어왔다. 노주현과 나는 그때 너무 젊었기 때문에 한도 끝도 없이 양주를 퍼마셨다. 그때 평생 잊지 못하는 일명 ‘똥과자’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매일 공연이 이어지던 때였는데 양주에 만땅 취한 내가 기억하는 건 급하게 화장실을 다녀온 것뿐이고 내가 방문을 열었더니 여자 탤런트 김영옥씨가 기겁을 하고 뛰쳐나가는 것이었다.
 
다음날 김영옥씨로부터 듣게 된 얘긴데, 한밤에 조영남이 히죽히죽 웃으며 자기 방에 쳐들어와 기겁을 하고 도망쳐 나왔다는 것이다. 그때는 한겨울이었다. 나는 술에 취해 김영옥씨 방을 내방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거기서 그냥 쓰러져 잤던 것이다. 다음날 곯아떨어진 채 버스에 실려 다음 낮 공연장을 향해 갔다. 공연장에 도착, 졸린 눈을 비비며 옷을 갈아입기 위해 군복 바지를 벗었다. 어! 그런데 옷이 벗겨지질 않는 것이다. 엉덩이 쪽에 손을 넣어보았다. 딱딱한 과자(센베이) 같은 게 붙어 있었다. 꺼내 보니 어젯밤 화장실 갔던 잔재가 남아 하룻밤 새 뜨거운 장판방에서 그렇게 변해 버린 것이다. 내 인생 최대의 엽기적인 사건이었다.  〈계속〉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