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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감 얻으려 다양한 활동…“마음 움직이는 음악 하고파”

중앙선데이 2021.07.17 00:02 745호 19면 지면보기

[유주현의 비욘드 스테이지] 첼리스트 홍진호

첼리스트 홍진호는 JTBC 슈퍼밴드 우승팀 호피폴라의 멤버이기도 하다. 전민규 기자

첼리스트 홍진호는 JTBC 슈퍼밴드 우승팀 호피폴라의 멤버이기도 하다. 전민규 기자

첼리스트 홍진호(36)가 클래식 궁전을 벗어나 관객을 찾아 거친 세상에 몸을 던진 지 2년. JTBC 슈퍼밴드에서 ‘호피폴라’ 팀으로 우승을 거머쥔 뒤 폭넓은 활동으로 ‘첼로계 최고 티켓 파워’가 된 그가 ‘첼로 탄츠’라는 클래식 레퍼토리로 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오른다.
 

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공연
JTBC ‘슈퍼밴드’ 우승 뒤 스타덤
엉덩이에 피 날 정도 연습한 악바리

음악, 위로의 도구로도 쓸 수 있어
K팝·클래식 팬층 넓어져 더욱 조심

공연을 위해 지난 2월 진행한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은 오픈 당일에 목표 금액을 200% 달성했고, 티켓도 오픈과 동시에 1500석이 매진됐다. 초대권 뿌리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지 않았던 목표를 조기에 이룬 셈이다. 밴드로 떴지만 상반기 매달 진행한 온라인 유료 북 콘서트도 인기를 끌었고, 13일에는 첫 콘서트 실황 음반을 발매하는 등 개인 활동도 활발하다. 서울예고·서울대·독일 뷔르츠부르크 국립 음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그랑프리 뷔르투오조 국제 콩쿠르 우승 등 최고의 스펙을 갖춘 연주자로 클래식 궁전에만 머물렀다면 어땠을까.
 
“음악가로서 열심히 준비한 음악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건 당연하잖아요. 근데 클래식계 흐름을 보면 들어줄 사람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의문이 들더군요. 고민의 와중에 슈퍼밴드 오디션을 알게 됐고, 방송을 통해 제 첼로 소리를 꼭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창조적인 사람들과 협업 즐거워
 
하지만 방송이 아니라도 평범한 연주자에 머물진 않았을 터다. 무명시절 이미 초대권 없이 유료티켓 100장이 팔린 독주회를 열었을 만큼 ‘들어줄 사람 찾기’에 열심이었기 때문이다. “슈퍼밴드 전에도 팬이 20~30명 정도는 있었어요.(웃음) 작은 활동을 정말 많이 했거든요. 책방 같은 데서 연주하며 사람들도 만났고요. 슈퍼밴드에 안 나갔어도 팀을 결성해 재밌는 프로젝트를 했을 것 같아요. 삶의 루틴을 따라가기보다 창조적인 일을 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또 다른 창조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과 협업하는 것도 좋아하고요.”
 
뽀얀 얼굴의 샌님 같지만, 홍진호는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유튜브용 영상을 찍을 때도 스스럼없이 아이디어를 던졌고, 같이 사는 고양이를 위한 SNS계정 홍보까지 했다. 첼로를 늦게(초 5) 시작한 만큼 엉덩이에 피가 날 정도로 연습했다는 악바리 근성도 의외였다. 마냥 ‘순한 맛’이 아니라, 점점 더 궁금해지는 ‘묘한 맛’이랄까. “고등학교 때 너무 못했거든요. 기대치는 꼭대기에 있으니 무식하게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피부가 짓무르는 것도 몰랐는데, 엄마가 속옷 보시고 깜짝 놀라셨죠. 꽤 오래 치료를 받았는데, 어떻게든 잘하고 싶은 승부욕 이 컸던 것 같아요.”
 
13일 발매한 콘서트 실황 음반 ‘Purify’. [사진 크레디아]

13일 발매한 콘서트 실황 음반 ‘Purify’. [사진 크레디아]

크로스오버 활동을 하고 있지만 클래식계가 갑갑해서 탈출한 자유로운 영혼은 아니다. ‘코어 클래식을 하는 사람’이라는 중심이 확고했고, 클래식 음악에 대한 자부심도 단단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같은 드라마에서 비쳤던 음악가들의 콧대 높은 이미지나 보수적인 사제 관계도 편견일 뿐, 자신의 주변엔 따뜻하고 열린 사람들만 있단다. “드라마처럼 음대 교수들이 반인륜적 갑질을 하는 일은 없어요.(웃음) 오히려 학생들이 먼저 알아서 과하게 하는 면은 있죠. 저는 교수님을 진짜 좋아했어요. 첼로를 늦게 배워 안 좋은 습관이 많은 제게 활 긋기부터 다시 가르쳐 주셨죠. 외부에선 클래식에 대한 선입견이 있으니, 슈퍼밴드에서도 처음엔 저를 도도하고 차가운 캐릭터로 설정하더군요. 사실 저도 방송 나가면 교수님이 제자 취급도 안 할 줄 알았어요. 2년 전만 해도 독주회에서 앙코르곡으로 팝송 연주하면 욕먹는 분위기였고, 초기엔 악플도 많았으니까요. 오히려 스승님들이 ‘네가 큰 용기 냈다’면서, 다양한 사람들 만나 많이 경험하고 배우라고, 그들이 네 음악에 자양분이 될 거라고 격려해 주셨죠.”
 
‘다양한 사람들’에게서 그가 경험한 것은 ‘굉장히 불규칙한 생활’이었다. 처음엔 화가 날 정도였다고 했다. “무계획이 계획이랄까, 정해서 끝내면 되지 왜 저렇게 시간을 낭비할까 불만이었어요. 저는 빨리 끝내고 노는 스타일이니까요. 그런데 그게 음악을 대하는 방식의 차이더군요. 클래식하는 사람들은 곡을 정해서 악보를 구하고 콩쿠르나 공연까지 플랜을 짜는 식인데, 이들은 언제 영감이 올지 모르니 놀면서도 음악을 손에서 놓지 않더라고요. 쉴 때도 계속 기타를 치면서 영감을 찾아가는데, 시간 낭비가 아니라 음악 속에서 살아가는 ‘찐 음악인’이었던 거예요. 오히려 내 생활 방식이 나를 틀 안에 가둬왔던 것이고.”
 
온라인 북콘서트도 다양한 아티스트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했다. 직접 기획안을 만들어 소속사에 제안했고, ‘오방신’ 이희문, 라포엠의 카운터테너 최성훈 등 협업 아티스트 섭외까지 맡았다. “책을 통해 받은 영감을 음악으로 연결하는 프로젝트를 해보고 싶었거든요. 개성이 강한 분들을 만난 건 영감을 받고 싶은 욕심에서죠. 이희문 형님이 부르는 노들강변과 제가 연주하는 브람스 자장가가 하나로 엮이는 식의 작업을 한 건데, 그렇게 주고받으며 생긴 시너지가 좋았어요. 시즌2도 계속 하고 싶어요.”
 
첼리스트로서 가고자 하는 방향은 네오클래식이다. 현대음악처럼 도전으로 점철된 낯선 음악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하고 싶단다. “저도 작년에 공연 준비하며 네오클래식을 알게 됐어요. 도이치 그라모폰에서 음반도 많이 낸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호프나 막스 리히터 같은 분들이 대표 주자인데, 유럽에서 엄청 인기더군요. 클래식을 코어에 두면서도 메시지가 좀 수월하게 느껴지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이번 공연에 라벨의 파반느 등 춤곡에서 영감 받은 작품들로 레퍼토리를 짠 것도 그래서예요.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먼저 제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을 들여다보게 됐는데, 제가 이런 음악을 듣고 있더라고요.”
 
독일 유학 시절, 가족음악회에 감동
 
지난해 8월 첫 단독 콘서트 모습. [사진 크레디아]

지난해 8월 첫 단독 콘서트 모습. [사진 크레디아]

‘마음을 움직이는 음악’에 대한 로망은 독일 유학 시절 품게 됐다. 클래식 본고장에서 수업이 아니라 문화에 반한 것이다. “이미 한국이 클래식 강대국이라 교수법에 큰 차이는 없어요. 근데 독일인들은 대부분 음악을 업으로 접하지 않더군요.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다 악기를 연주하고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히 하면서, 영화 장면처럼 악기를 하나둘 가져와 벽난로 앞에서 가족음악회를 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어요. 한 번은 알고 지내던 신부님이 저를 수도원에 초대해 사제들과 함께 노래를 불러주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제가 집을 못 구해서 고생할 때였는데, 프로 음악인도 아닌 사람들이 프로인 나를 음악으로 위로할 수 있다니. 음악을 위로의 도구로 쓸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체험했죠.”
 
콘서트 실황 앨범을 낸 것도 ‘감동의 순간’ 때문이다. 코로나 공포가 절정이던 지난해 8월 첫 단독콘서트 때 관객과 주고받은 특별한 아이컨택을 잊고 싶지 않아서다. “희한한 타이밍에 거리 두기도 없이 매진됐는데, 너무 많은 분들이 방역수칙 지키면서 숨죽이고 들어주셨거든요. 아이컨택을 좋아해서 무대에서도 사람들 눈동자를 바라보는데, 울음 참는 분들이 많았어요. 첼로 소리가 아니라 힘들게 한자리에 모였다는 감격인 것 같았죠. 그 순간을 늘 기억하고 싶어요.”
 
호피폴라 노래 중 첼리스트로서 가장 아끼는 곡은 ‘아워송(Our Song)’이다. 노래의 감동에 클래식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란다.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4번이 들어가는 곡인데, 얼마 전 JTBC 뉴스룸 엔딩곡으로도 나왔어요. 첼로 파트로 시작해 기타와 보컬이 얹어지면서 확대되는 부분인데, 짜릿한 순간에 첼로가 중심에 있다는 데 자부심을 느끼죠.”
 
오전엔 독주회 연습을 하다가 오후엔 밴드 녹음을 하는 식으로 상반된 두 세계를 오가다 보니 방전될 때도 있다. 10대 K팝 팬부터 클래식 애호가까지 팬층이 넓어지니 고민거리도 많아졌다. “세대별로 원하는 방향이 달라 조심스럽다”는 것이다. “제가 사람한테 영향을 잘 받거든요. 좋아하는 연주자는 인격까지 닮고 싶은데, 저 또한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엄청난 팬덤은 아니지만, 몇 분이라도 좋은 영향을 드리고 싶어요. 연주는 물론 생활에서도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특히 어린 친구들에겐 어떻게 영향 줄 지 모르니 늘 조심하죠. 그런 조심성이 제게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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