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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사람과 친숙했던 너구리, 어쩌다 천덕꾸러기 됐을까

중앙일보 2021.07.14 13:00

[더,오래] 신남식의 야생동물 세상보기(35)

일상생활에 속에 자주 등장하는 동물 중에 너구리가 있다. 능청스러운 사람을 비유도 하고 하찮은 존재를 빗대기도 한다. 생태와 관련된 ‘너구리 굴’에 관한 속담이 많이 있을 만큼 친숙한 동물이라 할 수 있다.
 
개과 너구리속의 단일종인 너구리는 동아시아에 주로 분포하는 토착종이다. [사진 pxfuel]

개과 너구리속의 단일종인 너구리는 동아시아에 주로 분포하는 토착종이다. [사진 pxfuel]

 
너구리는 시베리아 남동쪽에서 베트남 북부까지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에 분포하는 토착종이다. 러시아 서쪽과 유럽에도 널리 퍼져있으나 이는 1920년대 후반부터 1950년대까지 동아시아 지역에서 도입된 것이다. 너구리는 개과 너구리속의 단일종으로 지역에 따라 5개아종으로 나뉜다. 한반도에 서식하는 아종은 한국너구리(Korean raccoon dog, Nyctereutes procyonoides koreensis)로 불린다. 영문명 ‘raccoon dog’는 북미지역에 서식하는 라쿤과 비슷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학명 ‘Nyctereutes procyonoides’도 ‘밤에 돌아다니는 라쿤 비슷한 것’이란 뜻이다. 외형은 비슷하지만 라쿤은 아메리카너구리과에 속하며 계통적으로 거리가 멀다.
 
너구리는 산림지역과 강이나 개울 부근의 수풀이 많은 곳을 좋아한다. 인근의 바위틈이나 굴을 만들어 지내고 여우나 오소리가 만든 굴을 이용하기도 한다. 야행성이지만 낮에 활동할 때도 있다. 몸길이는 50~70cm이고 꼬리는 짧은 편으로 몸길이의 3분의 1 정도다. 체중은 계절에 따라 변해 봄에는 4~6kg, 초겨울에는 6~10kg이 된다.
 
너구리는 개과 동물 중 유일하게 동면을 하나 한반도에서는 추위가 혹독할 때 선택적으로 한다. 초겨울에 피하지방은 20%, 내장지방은 5% 정도 늘어난다. 이만큼 살을 찌우지 못하면 겨울을 넘기기 어렵다. 겨울털은 길고 두텁다. 속털이 빽빽하게 나고 성긴 겉털은 12cm 정도로 길어 영하 20~25℃의 추위에도 견딜 수 있다.
 
너구리는 식육목에 속하지만 잡식성이다. 잡식성인 탓에 개과동물 중에서 송곳니가 작은 편이고 창자의 길이는 다른 개과동물에 비해 1.5~2배 길다. 곤충, 설치류, 파충류, 어류, 양서류, 조류, 연체동물, 동물사체, 과일 열매, 뿌리 곡식 등 주변의 먹을 것은 가리지 않는다. 계절에 따라 쉽게 얻을 수 있는 먹이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 가을과 겨울에는 주로 설치류와 동물 사체를 먹고 봄에는 과일·곤충·양서류, 여름에는 조류·과일·곡류·채소를 주로 먹는다. 두꺼비를 먹을 때는 엄청난 양의 침을 분비해 두꺼비의 피부에서 나오는 독을 희석시킨다.
 
너구리의 가장 큰 천적은 늑대다. 늑대가 서식하는 지역에서는 너구리 사망원인의 50% 이상을 차지한다. 국내에는 야생에 늑대가 없기 때문에 육상의 천적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붉은여우와 오소리는 먹이를 두고 다투는 사이이나 너구리 새끼를 잡아먹을 수 있다. 공중에서는 검독수리, 흰꼬리수리, 수리부엉이 등 대형 맹금류가 너구리를 사냥하는 천적이 된다.
 
생후 10개월이면 번식에 참여할 수 있다. 짝짓기는 지역에 따라 1월부터 4월 사이에 일어난다. 일부일처제로 수컷과 암컷 쌍은 늦은 가을에 짝을 이룬다. 수컷은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다투지만 치명상을 입히지는 않는다. 임신기간은 보통 60~65일이며 평균 6~8마리의 새끼를 낳지만 19마리를 출산한 기록도 있다. 새끼를 기르는 데는 수컷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1928년 유럽에 처음 소개될 때는 임신한 암컷만 들여왔는데 새끼의 양육에 실패가 많았다. 이후 암수를 쌍으로 수입한 결과 성공률이 높아졌는데, 이는 새끼 양육에 수컷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을 시사한다.
 
새끼는 체중이 60~90g이고 10일 후에 눈을 뜬다. 2달간 어미의 젖을 먹지만 생후 25~30일이 되면 어미가 먹이를 가져다주고 이를 먹기 시작한다. 생후 4~5개월이 되면 다 자라 어미를 떠나 독립해 새로운 쌍을 이룬다. 야생에서 수명은 7~8년이고 보호상태에서는 11년이 기록이다.
 
너구리가 러시아와 유럽에 소개될 때는 주로 모피를 얻을 목적이었다. 그러나 점차 활용도가 떨어지고 육상조류와 농작물의 피해가 증가하면서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최근에는 몇몇의 인수공통질병 매개체로도 지목되고 있어 일부 국가에서는 적극적인 포획으로 제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국내의 사정도 만만치 않아 너구리를 보는 눈이 따뜻하지 못하다. 서식밀도는 1km²당 4마리 정도로 추정되어 개체수가 풍부한 편이다. 번식이 왕성한 반면 천적인 늑대가 없고, 먹이 경쟁상대인 오소리의 개체수가 훨씬 적기 때문이다. 개체수의 감소 요인이 거의 없다. 피부의 가려움증 각질화 탈모를 일으키는 외부기생충병인 개선충증이 위협적인 질병이 된다.

 

개선충증에 심하게 감염되어 구조된 너구리. 전신에 탈모와 각질화가 되어 있다. [사진 충북야생동물센터]

 
인수공통전염병 중에서 광견병(Rabies)은 사람과 대부분의 동물에 치명적이다. 최근 국내에 발생보고는 없지만 8년 전까지 가축에 발생했었고 1999년부터 2004년까지는 사람에도 발생했다. 광견병의 주요 매개동물로는 너구리를 1순위로 꼽는다. 북한과 인접한 DMZ 접경지역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광견병은 경기·강원지역의 한강 경계까지 확산되었으나 2014년 이후 발생보고가 없다.
 
최근 광견병 발생이 없어진 것은 효율적인 방법을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적용한 것이 주효한 것으로 본다. 개와 고양이는 백신을 주사로 접종해 예방하지만 야생동물에게는 개개의 주사가 불가능하다. 일명 미끼예방약이라는 경구용 백신을 들여와 발생지역과 주변에 집중적으로 살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경구용 백신은 너구리의 식성에 맞춰 닭고기와 생선을 가공하고 그 속에 광견병백신을 넣은 제품이다. 이를 먹이로 알고 섭취할 때 속에 있는 백신도 함께 먹게 되어 접종의 효과를 보는 것이다. 매년 봄 가을 2차례 항공기와 인력을 동원해 경구용 백신을 살포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한 번에 4만개의 백신이 소요된다.

 

광견병 경구용 백신. 너구리의 식성에 맞게 닭고기나 생선을 가공해 그 속에 백신을 넣은 제품이다. 매년 봄 가을 2차례 광견병 발생지역과 주변에 살포한다. [사진 신남식]

너구리가 살포된 경구용 백신을 섭취하고 있다. [사진 신남식]

너구리가 살포된 경구용 백신을 섭취하고 있다. [사진 신남식]

 
너구리는 산야 지대뿐만 아니라 도심의 산책로에서도 맞닥뜨릴 수 있다. 너구리를 비롯한 야생동물과 접촉은 금물이다. 다쳤거나 병약한 동물을 발견하면 관할 시·군·구청에 신고해 적절한 처치를 받도록 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거나 인간생활에 불편을 주는 야생동물도 자연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구성원이다. 동물과 인간이 공존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지만 동물에 대한 배려는 인간의 책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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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남식 신남식 서울대 명예교수·(주)이레본 기술고문 필진

[신남식의 반려동물 세상보기] 동물원장과 수의과대학 교수를 지냈다. 반려동물인구가 1000만이 넘고, 동물복지에 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진 시대에 반려동물 보호자는 물론 일반인들에게도 동물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새로운 시각이 요구된다. 동물의 선택, 보호자의 자격, 예절교육, 식사, 위생관리, 건강관리 등 입양에서 이별까지의 과정에 보호자가 해야 할 일을 알아보고 사람 삶의 질을 높여주는 반려동물의 세계를 구석구석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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