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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어떤가요, 나만의 스토리로 푸는 진짜 한국여행

중앙일보 2021.07.12 08:30
“여행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설레고 즐겁잖아요. 여행기획자는 사람들을 설레게 하고 삶을 즐겁게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의 로컬여행은 지금까지의 모습보다 앞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훨씬 커요. 저평가되었다고 할까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융합할 수 있는 지점들을 생각하다 보면 관광업계의 성장 가능성은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여행은 계속될 테니까요.”

자기주도진로 인터뷰 40
박소현 로컬콘텐츠랩 대표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19(코로나19)로 여행업이 직격탄을 맞았지만 박소현(37) 로컬콘텐츠랩 대표는 ‘로컬여행’ 전문가로서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굳히고 있습니다. 그는 2019년 12월 한국관광공사가 선발하는 예비관광벤처에 선정된 로컬콘텐츠랩을 운영하며 전국 지자체로부터 코로나19 이후를 대비하기 위한 강의와 컨설팅 요청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죠.
 
 
태국 시골마을에서 한 달 ‘나를 바꾼 여행’ 
2005년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한 소현씨는 여느 대학생처럼 친구들과 관광명소·유적지·박물관을 돌아보는 해외여행을 떠나곤 했습니다. 심지어 유럽에서는 15일 동안 12개국을 돌아보는 강행군을 했죠. 그저 일정을 소화하기 바빴고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도 없이 어떤 의미도 찾지 못했던 여행이었어요. 앞으로 뭘 하며 살까 고민 속에 사회복지에도 관심이 많았던 그는 2학년 때 태국으로 특별한 여행을 떠납니다. 태국의 시골 마을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봉사활동과 여행을 겸하는 일종의 해외봉사단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거죠. 이전 여행과는 달리 태국에서의 한 달은 경험 하나하나가 가슴에 남았습니다. 
대학 3학년이던 2007년 태국 뿌랏지와키리리칸이라는 시골마을에 간 소현씨는 한 달 동안 그들의 문화 속에 들어가 함께 숙식하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대학 3학년이던 2007년 태국 뿌랏지와키리리칸이라는 시골마을에 간 소현씨는 한 달 동안 그들의 문화 속에 들어가 함께 숙식하고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한 달간 뿌랏지와키리리칸이라는 마을에서 주민들과 숙식하며 그들의 문화 속에 깊이 들어가 봤어요. 남다른 여행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에 부모님께는 거짓말을 하고 강행했죠. 일주일에 한 번씩 태국 국왕의 상징색인 노란색 티셔츠를 입고 그들의 풍습에 참여하고, 절에 가서 스님을 만나고,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영어 가르치며 함께 놀았어요. 그들처럼 손으로 밥을 먹고 전통시장에서 봉지커피를 마시고 주말에는 박쥐가 나오는 동굴 여행을 하는 등 진짜 태국의 민낯을 볼 수 있었죠. 유럽여행에서는 박물관이 기억에 남았다면 태국여행에서는 함께한 ‘사람’들이 기억납니다.”
 
현지인과 깊이 교류하는 여행 후 ‘우리나라에는 왜 이런 여행이 없을까’ 의문이 든 그는 로컬여행의 필요성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어요. 한국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여행상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끝에 졸업 후 2010년 SM타운트래블(구 BT&I)라는 *MICE전문 여행사에 입사했죠. 이곳에서 기업체의 인센티브(포상) 여행이나 국제학회 참석을 목적으로 한국에 오는 외국인 VIP들의 관광을 관리했어요. 비즈니스 일정부터 포스트 투어(공식 일정 후 귀국 직전의 관광)까지 해외 VIP 일정을 담당하는 일은 24시간 대기를 해야 하는 ‘3D직종’이죠. VIP가 야시장에 가보고 싶다고 하면 한밤중에도 동대문 새벽시장에 가야 했습니다.  

2014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VIP를 위해 서울 경복궁 인근 도보여행을 진행한 박소현씨.

2014년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VIP를 위해 서울 경복궁 인근 도보여행을 진행한 박소현씨.

 
“막연히 생각만 했던 맞춤형 관광을 그때 경험했어요. 예를 들어 도자기를 좋아하는 외교관 부인의 경우 포스트 투어 때 둘이서 인사동을 돌아다니며 도자기만 보러 다녔죠. 또 한옥을 보고 싶다며 일할 땐 구두를 신는 저를 위해 특별히 운동화를 사주신 분도 있었어요. 그날 하루만큼은 함께 걸으며 한옥을 보여 달라는 뜻이었죠.”
 
 
경력단절여성의 일 찾기…로컬여행 호스트 주목
결혼·출산으로 일을 할 수 없었던 소현씨는 영어로 외국인을 응대해본 경력을 살려 이화여대에서 한국어교원 자격증을 땄습니다. 온·오프라인 강의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과 만나면서 젊은층이 주도하는 여행에 대한 새로운 트렌드를 감지할 수 있었죠. “온라인으로 저에게 한국어를 배우는 이들은 K-팝 스타·한국 드라마·한국 요리 등을 더 잘 알고 싶어서 한국에 여행을 오고 싶다고 해요. 또 학원에 다닌 외국인들의 패턴을 보면 (관광비자로) 3개월 정도 한국에 살면서 아침에는 한국어를 배우고 오후에는 여행·댄스아카데미·요리강습 같은 활동을 해요. 그저 명소를 돌아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거주하면서 한국의 문화를 폭넓게 경험하는 형태로 한국 관광 트렌드가 완전히 바뀐 거죠.”
2018년 이화여대를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 스트리트 투어' 맞춤 여행프로그램을 1년 남짓 진행하며 다양한 배경의 외국인 관광객 250여 명을 만났다.

2018년 이화여대를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 스트리트 투어' 맞춤 여행프로그램을 1년 남짓 진행하며 다양한 배경의 외국인 관광객 250여 명을 만났다.

 
2015년 즈음 누구나 여행프로그램을 만들어 선보일 수 있는 ‘에어비앤비 익스피어리언스’ 같은 시스템이 생겨났습니다. 세계적으로 여행 트렌드가 온라인(OTA여행사 중심) 개별관광으로 바뀌면서 지역 콘텐트를 잘 소개할 수 있는 호스트라면 직접 만든 프로그램으로 온라인 모객을 할 수 있게 된 거죠. 전문용어로는 SIT(Special Interest Tourism), 특수목적관광이라고 하며 관광객들이 보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 알고 싶은 것들을 제공합니다. 소현씨도 주변 자원을 활용해 자신만의 로컬여행을 만들었어요.
 
“제가 결혼·출산을 겪은 한국의 여성이기도 하고 이화여대에서 5분 거리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지역적 특수성을 고려해 ‘페미니즘 스트리트 투어(Feminism Street with yummy School Food)’를 만들었죠. 2시간짜리 1인당 3만8000원 여행상품인데 과연 외국인들이 신청할까 반신반의했어요. 그런데 신기하게도 1년 남짓한 기간 250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참가했어요. 관심 분야도 그 수만큼 다양했던 그들과 함께 한국 여성의 과거와 현재, 일본군 '위안부' 평화의 소녀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한국 여대생이 가는 맛집에도 갔죠.”  
2018년 이화여대를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 스트리트 투어' 맞춤 여행프로그램을 1년 남짓 진행하며 다양한 배경의 외국인 관광객 250여 명을 만났다.

2018년 이화여대를 중심으로 한 ‘페미니즘 스트리트 투어' 맞춤 여행프로그램을 1년 남짓 진행하며 다양한 배경의 외국인 관광객 250여 명을 만났다.

 
이를 통해 소현씨는 단체 패키지, 만들어진 여행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여행을 좇는 여행업계의 트렌드를 현장에서 확인했습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VIP가 된 거죠. 둘째 아이 출산 후 새 길을 모색하던 소현씨는 동종업계에서 일하던 남편과 공동대표로 2019년 12월 로컬콘텐츠랩을 설립, 한국관광공사 예비관광벤처에 선정됐어요. 창업 아이템은 소현씨처럼 자신만의 스토리로 관광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호스트(관광활동가)를 많이 배출해 외국인들을 맞이하도록 하겠다는 거였습니다.
 
 
호스트가 스토리텔링 하는 맞춤 로컬 체험
“창업하자마자 코로나19가 터졌어요. 3개월 동안은 진짜 막막했죠. 그러다 한국관광공사에서 각 지역의 관광 관련 리더들을 교육하는 자리에 특강을 할 기회가 생겼어요. 국내 로컬관광 분야에서도 ‘코로나 이후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 고민이 많았던 거죠. 전국에서 온 리더들에게 제가 서울에서 느꼈던 관광 트렌드의 변화에 대해 알려줬습니다. 그때부터 안동·상주·경주·홍천 등지로 강의를 나갔죠.”
로컬콘텐츠랩 창업 이후 2020년 3월 전국 각 지역의 관광 관련 리더들을 대상으로 '로컬여행 기획'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로컬콘텐츠랩 창업 이후 2020년 3월 전국 각 지역의 관광 관련 리더들을 대상으로 '로컬여행 기획'에 대한 강의를 진행했다.

 
패키지 관광이 사라지고 개별 관광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한 지자체로부터 협업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지자체로부터 용역사업을 발주받아 호스트 대상 강의는 물론 그들의 콘텐트를 고도화하는 컨설팅, 지역 스토리를 발굴해 매거진 제작까지 ‘로컬관광의 뿌리부터 체질을 바꾸는 힘든 작업’을 시작한 거죠.
 
“컨설팅 때 제일 중요하게 보는 건 호스트, 즉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사람입니다. 개별 관광객들은 그 지역의 누구를 만나는지, 왜 이걸 해야 하는지 등 가치를 따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호스트가 관광객들을 위해 옷을 갖춰 입고 대본을 준비하면 조금 비싸더라도 기꺼이 참여해요.”
 
코로나19로 인해 해외여행이 막힌 지금, 로컬여행 수요는 급증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지역에서 자신들의 가치 있는 여행상품을 소개할 호스트, 즉 지역 거주 관광활동가가 더 많아져야 하죠. 이를 위해 소현씨는 지난 1년 6개월간 전국에서 200명 이상 활동가를 만나 교육하고 변화를 도왔어요.  
2020년 6월부터 한 달간 서대문 여성인력지원센터의 'K-컬처 로컬체험호스트 양성 프로그램'의 운영을 담당했다.

2020년 6월부터 한 달간 서대문 여성인력지원센터의 'K-컬처 로컬체험호스트 양성 프로그램'의 운영을 담당했다.

 
“그동안 제가 했던 일의 성과를 말한다면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정말 힘듭니다. 더군다나 지역에서 수십 년간 자신만의 방식대로 살아온 분들을 변화시키려니 힘들 수밖에 없죠. 그렇지만 한두 사람이 변화하고 여행에 적용하는 것을 확인할 때는 무척 뿌듯해요. 얼마 전에도 강원도 홍천에서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는 여행상품을 개발한 분이 있어요. 홍천의 쑥·쌀·꿀·잣으로 ‘홍천의 쑥개떡 만들기 프로그램’을 기획해 최근 시범투어를 진행했죠.”
 
소현씨는 전문가들이 코로나19 유행이 사라져도 해외여행 수요가 빠르게 풀릴 것으로 전망하지 않는 지금이야말로 관광업계의 전환기라고 말합니다. 국내관광, 즉 로컬여행 수요는 계속 확대될 것으로 보고 로컬콘텐츠랩은 국내 거주 외국인 대상으로 문화를 더 깊게 볼 수 있는 특수관광여행(B2C) 비즈니스를 준비 중이죠. 이후 해외여행 빗장이 풀리면 해외 관광객들에게도 적용할 계획이에요. 이를 위해 석 달 전부터 중국의 여행사와 접촉하며 중국의 여행 트렌드도 바뀌고 있음을 알게 됐죠. 그들 역시 서울·제주 빼고 VIP여행을 하고 싶다고 요구했거든요.
 
2020년 11월 경북 안동지역 여행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로컬콘텐츠 기획'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2020년 11월 경북 안동지역 여행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로컬콘텐츠 기획'에 대해 강의하고 있다.

“유럽이나 일본의 경우 호스트, 즉 경험 많은 관광활동가들이 충분히 많기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들이 원하는 로컬여행을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역에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진 호스트들이 많아진다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저를 신뢰하고 찾아온 외국 관광객들을 이분들과 연결해 서울·부산만이 아닌 남해·영양·공주·논산·여수 등 전국 어디든 교통·언어의 장벽 없이 여행할 수 있는 상품을 만들 계획입니다.”
 
여행업계에서 일하는 꿈을 지닌 청소년들에게 조언도 잊지 않았습니다.
 
“관광업은 살아 움직이는 산업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서도 보았듯이 관광업은 다른 산업군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문화·경제 트렌드도 꾸준히 학습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업계에서 성장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글=김은혜 객원기자 sojoong@joongang.co.kr

  
*MICE 산업(産業)
마이스 산업은 1990년대 후반 싱가포르·홍콩·말레이시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가 컨벤션 사업을 계기로 경제 도약의 전기를 맞이하면서 등장했다.  MICE는 기업회의(Meeting), 인센티브 관광(Incentive tour), 국제회의(Convention), 전시(Exhibition)를 의미하는 영어 단어의 첫머리를 딴 것으로 각 분야는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해 부가가치가 높은 전시·관광 산업으로 인식된다.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중심적인 전략산업으로도 꼽히며 정부에서 법률을 제정해 이를 지원하는 우리나라는 이 분야 점유율 세계 2위(2019년 기준)를 기록하고 있다.
 
※’자기주도진로’ 인터뷰는 '무엇이 되겠다(what to be)'는 결과 지향적인 진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겠다(how to live)'는 과정 중심의 진로 개척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틀에 박힌 진로가 아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진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현재의 성공 여부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서 행복을 찾고, 남들이 뭐라 하든 스스로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는 멋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길’을 점검해 보시기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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