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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의 '더 모닝'] 정상회담 줄다리기, 올림픽 정신 위반입니다

중앙일보 2021.07.12 08:22
지난 8일에 열린 도쿄 올림픽 출전 한국 선수단 결단식. [중앙포토]

지난 8일에 열린 도쿄 올림픽 출전 한국 선수단 결단식. [중앙포토]

 안녕하세요? 오늘은 문재인 대통령의 도쿄 올림픽 개막식 참석 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고, 국경을 초월한 평화의 제전이며, 순수한 스포츠 정신이 빛나는 인류의 향연. 이처럼 허황된 거짓말도 드뭅니다. 현실은 메달에 의의가 있고, 철저히 국가주의적이고, 그 어떤 것보다 상업적입니다. 팬데믹 상황 속에서의 도쿄 올림픽 강행, 결국 돈 때문이라는 것을 누구나 짐작합니다. 중계권료와 후원사의 협찬금 반환하면 올림픽 조직위원회(IOC)가 파산할 수도 있습니다.
 
거짓인 줄 알면서도 손뼉 치고 환호하는 것은 판타지의 순간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손에 손잡고 벽을 넘는다고 노래하다 보면 언젠가 그런 날이 올 거라는 희망을 접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올림픽은 정치적이지 않은 것처럼, 우호 친선의 정신이 가득한 것처럼 보여야 합니다. 그것이 이 동화의 무대를 만드는 사람들의 의무입니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도쿄 올림픽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일본은 문재인 대통령의 개막식 참석을 바랍니다. 참석 의사를 밝힌 국가 정상이 얼마 되지 않는데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의 정상마저 오지 않으면 체면이 깎입니다. 그렇다고 한국 정부가 원하는 것을 수용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치적 부담이 큽니다.
 
한국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 조건으로 일본의 ‘성의’ 표시를 요구합니다. 일제 강제동원이나 위안부 피해자 문제 협상의 진전을 바랍니다. 개막식 참석과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의 형식적 만남이 전부면 “뭐하러 거기까지 갔느냐”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일본 올림픽 조직위원회가 만든 성화봉송 지도에 독도를 그려 넣는 바람에 도교 올림픽을 바라보는 한국인의 시선이 싸늘합니다.  
 
한ㆍ일 외교는 편안한 날이 없지만 최근 수년간은 최악의 국면입니다. 올림픽을 현안 해결의 기회로 삼으려는 것을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정부가 올림픽은 정치를 초월한다는 판타지를 깨는 스포일러가 되면 국민이 부끄러워집니다. 타진을 해도 조용히 티 안 나게 해야죠.
 
1994년 영ㆍ불 해저터널이 완성됐을 때 마침 영국에 있었습니다. 영국인들은 시큰둥했습니다. 터널 건설 자체를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유럽 대륙에 속하지 않는다는 영국의 정체성이 손상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영국을 유럽연합(EU)에서 나오게 한 ‘브렉시트’ 정서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1986년에 마거릿 대처 총리가 반대를 무릅쓰고 프랑스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았다면 터널 공사는 한참 미뤄졌을 것입니다.
 
해저터널 개통식 날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그 터널을 통과한 기차를 타고 영국의 포크스턴으로 왔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은 포크스턴의 역에서 기차 타고 국경을 넘은 미테랑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이 영국 여왕을 알현하러 온 모양새가 됐습니다. 하지만 제 눈 비친 그 날의 주인공은 미테랑 대통령이었습니다. 서서히 멈춰 선 기차에서 내린 그가 플랫폼에 발을 딛는 역사적 장면이 TV 생중계의 하이라이트가 됐습니다. 프랑스 철도가 영국까지 진출한 것으로 보이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프랑스에 “그쪽에서 와야지 왜 우리가 갔느냐”고 따지는 여론이 있다는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외교의 역사에서는 통 크게 손 내미는 쪽이 승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올림픽 개막을 축하하고, 우리 선수들 격려하는 것만으로도 방일의 의미는 있습니다.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평창 올림픽 개막식 참석에 대한 답례도 됩니다. 공자께서 군자는 의(義)에 머물고, 소인은 이(利)에 머문다고 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강제동원ㆍ위안부 피해, 일본의 수출 규제, 원전 오염수 방류 중 최소 한 가지 사안에 대한 협의를 하겠다고 약속해야 문재인 대통령의 개막식 참석이 가능하다고 일본 측에 통보했다고 합니다. 관련 기사를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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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 현안 셋 중 하나는 테이블 올려야 올림픽 참석”
 청와대가 11일 문재인 대통령의 도쿄 올림픽 참석 여부를 놓고 일본 측에 사실상의 ‘최후통첩’을 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청와대의 최종 입장은 일본과 풀어야 할 3대 현안 중 최소한 하나에 대해서는 성의 있는 논의가 이뤄져야 문 대통령의 방일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일본 측이 끝까지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경우 문 대통령의 개막식 불참을 선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후통첩의 ‘데드라인’으로 “이번 주 초반”을 제시했다. 청와대가 제시한 3대 현안은 위안부·강제징용 노동자 문제, 핵심 부품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후쿠시마(福島) 원전 오염수 방류 문제 등이다. 이 관계자는 “모두 정상회담 한 번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사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서도 “한국의 입장은 한·일 정상이 시급한 현안에 대해 최소한 협의라도 시작해야 미래를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의 이런 입장은 당초 핵심 현안 전부를 테이블 위에 꺼내놓고 정상들이 ‘원샷 담판’을 해야 한다고 했던 초기 제안보다 상당히 후퇴한 내용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방일의 조건으로 제시했던 ‘성과’의 의미와 관련해서도 당초에는 ‘의미 있는 결과’를 내세워왔지만, 일본 측의 사정을 고려해 ‘협의의 시작’도 성과로 수용할 수 있다고 ‘눈높이’를 낮춘 것”이라며 “이러한 청와대의 제안에 대해 이제는 일본 정부가 성의 있게 답을 줘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입장 변화의 배경은 청와대가 한·일 관계 개선을 그만큼 시급한 현안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한·일 샅바 싸움은 씨름을 하기 위한 것”이라며 “씨름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샅바 싸움은 없다”고 적었다. 현재 한·일 양국의 입장 조율이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기 싸움’이라는 점을 강조한 말로 해석된다.
 
청와대는 일본과의 물밑 조율을 통해 “최소 1시간의 회담 시간은 확보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의 교도통신은 이날 일본 정부 인사의 말을 인용해 “스가 총리는 각국 주요 인사와 만나는 일정을 고려해 1인당 원칙적으로 15분 정도의 회담을 고려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통신은 특히 “일본은 역사 문제에서 양보하면서까지 문 대통령이 오면 좋겠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외무성 간부의 말까지 전했다.
 
외교가에선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이 결국 최소한의 명분을 만들어 일본을 방문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정부의 한 고위 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올림픽 개막 직전 한·미·일 외교차관 회동이 이뤄지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달 3국의 외교장관들이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주요 사안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할 것”이라며 “문 대통령의 방일 역시 미국이 대중·대북 정책의 전제로 요구하고 있는 핵심동맹의 복원이라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문 대통령의 방일은 남은 임기 문재인 정부가 전력을 다할 것으로 예상되는 북한 문제와도 직접 연관돼 있다는 뜻이다. 청와대가 문 대통령의 방일을 성사시키기 위해 당초 제시했던 조건을 대폭 낮춰 대일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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