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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남의 퍼스펙티브] AI 시대에 인성이 경쟁력이다

중앙일보 2021.07.12 00:34 종합 25면 지면보기

한국 사회의 문제 풀려면

오종남의 퍼스펙티브

오종남의 퍼스펙티브

세상에 갈등과 반목이 없는 곳은 없겠지만 요즘 우리나라의 상황은 해도 해도 너무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지도층 인사들에게서조차 대화를 통한 타협과 화해보다는 품격을 의심하게 하는 행동을 많이 본다. 우리 사회가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심히 안타깝다. 특히 “배운 사람이 더 하다”는 이야기마저 나올 정도다.
 

구글은 타인 의견 경청하는 지적 겸손 갖춘 사람을 중시
세계 명문대학들도 신입생 선발 때 중요한 평가 항목
인성 갖춰야 능력 잘 발휘하고 공동체와 어울릴 수 있어
경제 발전 과정에서 잃어버린 인성 함양에 힘써야 할 때

그러다 보니 요즘 ‘학력보다 인성’이라는 말로 인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높다. 기업이 직원을 뽑을 때도 그렇고, 학교에서 신입생을 선발할 때도 마찬가지다. 주요 선진국의 경우 이미 그러한 방향으로 정착되어 가고 있는 모습이다.
 
구글은 직원을 채용할 때 전문성 이외에 책임감 있고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며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아는 품성을 중점적으로 본다고 한다. ‘나도 틀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지적 겸손’을 중요한 평가 요소로 삼는다. 우수한 머리도 좋지만, 열린 마음으로 다른 사람과 협력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할 줄 아는 인재를 찾는 것이다.
 
세계 유수 대학들도 신입생을 선발할 때 수험생의 인성을 중요한 평가 대상으로 삼는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은 학업 성적 외에 인성 면접 결과를 중시하고, 프랑스는 대입 자격시험에 전공과 관계없이 철학 과목을 포함해 수험생의 철학·가치관·교양 등을 묻는다.
 
공감·배려가 인간의 비교우위
 
그렇다면 이렇듯 인성을 중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인간은 인성을 잘 갖추어야만 자신의 능력을 건전하게 발휘할 수 있고 다른 사람이나 공동체와 잘 어울릴 수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기업이든 대학이든 능력이 다소 미흡한 사람은 가르침을 통해 변화시킬 수 있지만, 인성이 잘못된 사람은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수 있다. 인성은 그 사람의 태도·품성·성격·가치관·신념 등 내면적인 부분으로서 쉽게 변화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또 바른 인성의 함양은 디지털 기술 중심의 미래 사회에 대비하는 중요한 방편이 될 것이다. 인류가 인공지능(AI)과 공존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공감이나 배려 같은 인성이 인류에게 비교우위를 갖다 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인적 자본의 개념도 재정립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아무리 우수한들 기술적으로 AI를 이기기는 쉽지 않을 것이므로 전문성이나 기술 이외에 바른 인성을 함양하는 일에 더욱 주력해야 한다. 앞서 기업의 채용이나 대학의 신입생 선발에서 보듯이 이제는 인성이 인간의 중요한 자산이 되어가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국민 개개인, 나아가 전 국민의 인성이 바르게 된다면 이는 국가 경쟁력과도 직결된다는 점이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일찍이 미래학자 아널드 토인비는 “인류 역사상 21개의 뛰어난 문명 가운데 19개는 밖으로부터의 정복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도덕적 쇠퇴로 인해 소멸했다”고 설파한 바 있다.
 
최고의 머리에서 최고의 가슴으로
 
그렇다면 우리나라 인성의 현주소는 어떤가? 우리나라는 세계가 주목할 만큼 경제 발전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했지만, 인성 발달은 그에 따르지 못한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빠른 경제 발전을 위해 가정보다 회사를 우선시하는 생활 방식에 익숙하다 보니 아버지들은 가장으로서 화목한 가정생활을 고민할 겨를이 없었다. 청소년들은 대학 입시에 필요한 내신 성적을 잘 받기 위해 친구들을 경쟁 관계로 인식하다 보니 협력이나 교우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못했다.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출세가 최고의 선으로 치부돼 우애·협력·염치·배려 같은 소중한 가치를 잃어버린 채 사회적 병리 현상을 불러온 셈이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 갈등과 반목이 만연하고 세계적으로 높은 자살률을 자초한 것은 아닐까?
 
바른 인성은 교통법규와도 같아 그것을 무시하게 되면 자신은 물론 타인마저 불행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자유주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 앞서 출간한 『도덕감정론』에서 ‘공존과 공감대’를 강조했다. “최고의 머리에서 최고의 가슴으로(the best head to the best heart)”라는 말을 남긴 그는 “자유에 따르는 가장 큰 위험은 도덕적 의미를 망각하는 것”이라며 사람들이 이타적인 참된 감정에 기초한 도덕성 배양에 힘쓸 것을 촉구했다. 시장의 자유는 자칫 인간의 이기심만 조장할 수 있는 만큼 배려와 존중, 그리고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실천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부터 본이 되는 행동 보여야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이제 경제 발전 과정에서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를 회복하는 인성 함양에 힘써야 할 때다. 학습과 습관으로 인성을 기르는 일이 쉬운 일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인성 교육은 가정이나 학교라는 특정한 공간이나 특정 교과에 국한할 일이 아니다. 삶이 이어지는 모든 시간과 삶이 펼쳐지는 모든 공간을 망라해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과제다.
 
특히 21세기엔 사람들이 남에게서 ‘듣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하는 행동을 ‘보고’ 배우는 만큼 부모로서, 선배로서, 상사로서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점이 더욱 어렵다. 나만이라도, 나부터라도 본이 되는 행동을 보임으로써 이 사회의 갈등과 반목을 줄이고 타협과 화해가 늘어나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바른 인성 함양이 국민 개개인은 물론 국가 차원의 경쟁력 배양으로 이어져 우리나라가 세계 속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으로 발돋움하기를 꿈꾼다.
 
충고 아닌 솔선수범이 인성 교육에 효과적
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1962~66)을 시작할 무렵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매년 5~6월이면 가을에 수확한 쌀은 바닥났는데 보리는 아직 여물지 않아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던 보릿고개가 있었다. 73년에야 1인당 국민소득이 하루 1달러를 돌파하여 빈곤선을 넘겼다. 77년에 1000달러를 넘어서고 1994년에 1만 달러를 넘고 2017년에는 3만 달러 수준에 이르러 이제는 다이어트에 신경 쓸 정도가 되었다.
 
이 같은 밝은 면의 뒤안길에는 안타까운 현실도 있다. 2003년 이후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25명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특히 노인 자살률은 인구 10만 명당 58명 수준으로 세계 최악이다.
 
노인 자살의 동기는 첫째가 경제적 이유, 둘째가 건강상 이유다. 그렇다면 과연 그 노인들이 누구인가? 이 나라의 가난을 극복하게 한 주역이 아닌가? 자식 뒷바라지로 본인의 노후 준비에 소홀했고 휴가도 없이 일에 몰두하느라 건강을 해친 결과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 할 수 없다. 경제를 나아지게 만드느라 우리의 소중한 가치를 저버린 소치다.
 
이제는 다음 세대에게 전문적 지식과 함께 인성을 가르칠 때다. 과거 우리가 소중하게 여기던 효도·우애·염치·배려 같은 가치를 회복하자. 그렇게 해야만 물질 만능의 사고에서 탈피하고 건강한 시장경제를 꿈꿀 수 있다.
 
나는 65세가 되어 서울특별시 어르신 교통카드를 받을 때 이 사회에 ‘짐 되는 노인이 아니라 도움 주는 어르신’이 되라는 충고로 해석했다. 오죽하면 영국에서 발간되는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꼰대(kkondae)’라는 우리말을 소개하면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젊은이의 옷차림이나 애정 생활에 청하지도 않은 충고를 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했겠는가? 어른의 솔선수범이 최선의 인성 교육이다. 자식에게 효도를 가르치고 싶으면 부모에게 효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우애를 가르치려면 자신부터 형제자매와 잘 지내면 된다.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고 싶다면 지도층 인사부터 경우에 어긋나거나 염치없는 처신을 삼가면 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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